굶고, 빼고, 운동하라

by 다현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처럼 매일 군만두만 먹어야 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삼시 세끼 김치찌개만 먹어도 물리는 게 사람인데 그는 작은 방안에 갇혀 장장 15년을 군만두만 먹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자의로 선택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동일한 맛과 냄새만 제공되는 감각의 억압은 분명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유발했으리라. 영화 속 가상의 캐릭터에 이렇게 몰입하는 이유는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감금된 상태로 군만두를 배급받은 오대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매일 같은 음식만 먹는 지난하고 괴로운 감각에 대해선 얼마쯤 알고 있다. ‘15년’을 ‘일주일’로, 군만두를 ‘사과’로 대체하면 내 경험의 한 줄 소개가 완성된다. 이름하여 ‘일주일 사과 다이어트’.

방법은 간단하다. 이름 그대로 일주일 동안 사과만 먹고 다이어트 마지막 날엔 부드러운 미음을 섭취해 비어 있는 속을 달래주면 끝이다. 고기를 마음껏 먹는 황제 다이어트, 일주일 동안 액체만 마시는 액체 다이어트, 맛없는 양배추만 먹는 양배추 다이어트 등 지금 보면 괴이하기 짝이 없는 다종다양한 원푸드 다이어트 중 비용과 맛, 건강을 고려할 때 2007년 당시 대학교 1학년 생이던 나에겐 사과 다이어트만 한 게 없었다. 실제로 다이어트 시작 후 이틀까지는 이렇게 쉬워도 되나 했다. 하지만 사흘이 되고 나흘이 지나니 상큼한 사과가 역하게 느껴졌고 차라리 굶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점심시간에는 과 동기들이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식판에 받아 맛있게 먹을 때 영혼 없는 눈빛으로 주섬주섬 빠알간 사과를 꺼내 입에 물었다. 활기찬 ‘냠냠’ ‘쩝쩝’ 소음의 한가운데 내 입에선 ‘아삭아삭’ 소리가 외롭게 울려 퍼졌다.


일주일간 미식 라이프와 소셜 라이프까지 포기한 결과는 어땠을까. 비교적 신체 건강하고 신진대사가 활발한 20대 초반의 나이 덕분이었는지 7일 만에 4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똥배’의 존재감이 옅어졌고 통통한 볼살에 숨어 있던 턱선이 도드라졌다. 거울을 보며 너무 좋아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여기서 더 빼야지.’ 그렇게 고3 수험생 시절 1년간 차곡차곡 몸에 저장한 10kg의 살을 두 달 만에 모두 처분했다. 초절식 다이어트의 결과로 옷 사이즈는 M에서 XS로 바뀌었고 주변 반응도 달라졌다. “왜 이렇게 말랐어?” “바람 불면 날아가겠다.” “손님은 그냥 제일 작은 사이즈 입으면 맞아요.” 이상했다. 칭찬이 아닌 마른 몸에 대한 평가였을뿐인데 묘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XS 사이즈를 입는 스스로에 대해, 딱 붙는 옷을 입었을 때 드러나는 군살 없이 깡마른 몸에 대해.


타인이 아무 생각 없이 건네는 ‘몸평’에서 길어올린 기형적 우월감은 곧 나를 음식 강박으로 이끌었다. 어떤 음식이든 입에 넣기 전에 칼로리부터 확인했고 스스로 제한을 둔 일일 칼로리 섭취량을 초과하면 큰일이라도 날까 수저를 내려놨다. 야식으로 치킨이 먹고 싶을 땐 밤에 시켜놨다 아침에 먹었다. 일어나자마자 입에 넣는 눅눅한 치킨이 맛있을 리 없었고 몇 점 먹지도 못하고 버리기 일쑤였다. 잠에서 깨자마자 체중계에 올랐을 때 500g이라도 줄어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고 500g이나 늘어 있으면 세상이 무너진 듯 우울했다. 그야말로 숫자에 잠식된 삶이었다.


취업 후에도 몇 년을 스스로에게 ‘먹어도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살았지만 음식 강박은 허무하게도 한국 땅을 떠나 해외 생활을 하며 자연히 치유됐다. 그곳엔 일일이 칼로리 계산을 하면서 먹기엔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 많았고 입고 싶은 옷을 자유롭게 입고 다니는 다양한 신체 사이즈의 여성들이 있었다. 왜 나는 그동안 옷을 나에게 맞추지 않고 나를 옷에 맞췄는지, 마른 몸을 대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먹는 행복을 포기하고 살았는지 괜히 분하고 억울했다. 각성한(?) 후엔 음식을 멀리해야 했던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열심히 먹고 대신 운동 삼아 부단히 걸어 다녔다. 당시 일기에 나는 ‘나를 놔버렸’다고 썼지만 나를 놔버림으로써 다시 찾을 수 있었고 마른 몸과 극단적 식이 요법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훨씬 건강해진 상태로 한국에 돌아왔다. 때마침 국내에선 여성들을 중심으로 ‘탈코르셋’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오호라, 사회가 여성에게만 주입한 온갖 치장 행위를 거부하는 운동이라니… 가슴이 벅찼다. 탈코르셋 운동과 함께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마른 몸보다는 잔근육이 돋보이는 튼튼한 육체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며 무조건 굶거나 한 가지 음식만 먹는 극단적 형태의 다이어트가 횡행하는 일도 눈에 띄게 줄었다. 더 이상 불건강한 다이어트 방법이 그럴듯한 ‘생활정보’로 포장돼 공유되거나 하루에 밥 반 공기를 세 번 나눠 먹었다는 여자 연예인의 다이어트 후일담이 ‘꿀팁’으로 찬양받는 문화는 사라지겠구나 생각했다.


재취업에 성공한 후 얼마 뒤 나는 거금을 들여 PT(퍼스널 트레이닝) 수업을 등록했다. 소셜미디어 피드에 뜨는 지인들의 근력 운동 사진과 탐스러운 복근, 팔근육 등을 자랑하는 여러 여자 연예인들을 보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조급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시작되는 변화의 틈새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극단적으로 마른 몸을 추구하던 구시대를 지나 근육을 패션처럼 장착하는 탄탄하게 마른 몸을 추구하는 새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탄탄하게 마른 몸은 깡마른 몸보다 만들기 더 어렵다. 후자야 누구처럼 무식하게 사과만 먹으면서 쫄쫄 굶으면 되지만 전자는 식이요법과 더불어 근력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차라리 안 먹고 안 움직이는 게 낫지 덜먹고 더 움직이려니 죽을 맛이었다.


팔자에 없는 근육을 키우겠다고 호기롭게 등록한 PT 수업은 한 달도 채 안 돼서 다른 회원에게 양도했다. 힘들고 지루해서. 그 후로 필라테스, 클라이밍, 플라잉요가 등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운동 이것저것을 시도해봤지만 흐릿한 뱃살에 숨어있던 복근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어차피 옷에 가려지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관뒀다. 사과 다이어트로 시작된 음식 강박이 모습만 달리해서 운동 강박으로 되찾아온 기분이었다. 아니, 운동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보다 근원적인 물음에서, 몸을 꼭 만들어야 하나?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방송인 박나래가 체중 감량에 성공한 모습을 공개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60kg에 가까웠던 몸무게를 아담한 신장에 적정한 40kg대로 줄였고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복근, 전완근, 광배근 등 멋스러운 근육도 키웠다. 얼핏 봐도 한층 슬림해진 몸매로 여러 옷가게를 드나들며 XS 사이즈를 입는 기쁨을 만끽했다. “너무 말랐다”며 안쓰러워하는 친구의 말에 뿌듯한 표정도 지어 보였다. 박나래는 보디프로필 촬영을 목표로 ‘팜유’ 멤버인 전현무, 이장우와 함께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셋 중 유일하게 완벽한 성공을 이뤘다. 달라진 몸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일한 멤버 역시 박나래였다. 이 에피소드의 실질적 주인공이 여성인 것은 단지 우연일까.


다이어트에 실패한 배우 이장우가 볼록 튀어나온 배를 가린 채 부끄럽다는 듯 ‘허허’ 웃을 때 다이어트에 성공한 박나래는 핼쑥해진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이 나에겐 몸과 다이어트의 무게가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 같았다. 2007년엔 사과 다이어트에 성공해 기쁨의 눈물을 흘린 내가 있고, 2024년엔 다이어트로 ‘리즈 시절’을 되찾아 기쁨의 눈물을 흘린 박나래가 있다. 2007년에도 2024년에도 여자는 다이어트 때문에 운다. 고작 다이어트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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