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계획적이며 주도면밀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오늘 하루 해치워야 할 일과를 TO DO LIST 메모장에 열거해놓고 마치 퀘스트를 하나씩 완수해 나가는 것처럼 항목 하나를 끝냈을 때 그 위로 줄을 긋고 보람과 쾌감을 느낀다. 내가 예상한 목표와 정확히 일치하는 실제 목표들, 그리고 그것을 완벽히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란!
예측할 수 있어서 준비할 수 있고, 준비 과정에서 가동한 머릿속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토대로 아무 착오도 실수도 없이 무탈히 마치는 게 좋다. 다르게 말하면, 예측할 수 없음이 싫다. 나는 대비할 수 없음에 저항한다.
2015년 고교 시절부터 꿈꿔온 방송작가라는 직업에서 완전히 발을 뺐다. '백세시대' 담론이 더는 특별하지 않은 요즘이야 직업 하나 관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지만 당시만 해도 커리어패스를 변경하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과감히 방송작가를 '때려치운' 이유엔 나름의 타당한 배경들이 존재하고, 그 배경들을 서로 이어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나타난다. 바로 '불확실성'이다.
다음날 출근 시간을 알 수 없고 자연히 언제 퇴근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싫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감각을 '당연하게' 공유하는 방송국 문화에 염세를 느꼈다. 그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연쇄적인 건강 문제를 차치하고, 단지 그 '불확실함'이 싫었다. 녹화날 어떤 돌발상황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더 나아가 현재 몸담고 있는 프로그램 종영 후 그 다음 거취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듯한 느낌이 싫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런 정신적 스트레스가 3년차 풋내기 '막내작가'의 과한 걱정과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10년 차 이상의 선배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함께 일하는 '언니들'에게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그날로 바로 방송작가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그때의 선택에 후회는 없느냐고 묻는다면 답하길 주저할 것이다. 방송 아카데미 동기들 중에 아직도 방송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미처 끝까지 가보지 못한 길을 향한 아쉬움 내지 궁금함이 남는다. '과연, 그때 방송작가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했다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됐을까?' 따위의 상상들. 그러나 이 순수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상상은 언제나 그때가 아니었을뿐 언제든 다시 관두었을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을 끝으로 휘발된다. 오랫동안 꿈꿔온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뤄내기엔 나의 불확실성 거부감이 이를 압도하기에.
이 글을 마치고 나면 나는 어김없이 오늘 해야 할 일을 적을 것이다. 오늘 해야 하는 항목은 어제와 다르지 않고 내일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침 독서, 영어 수업, 필사하기, 달리기, 온라인 강의 듣기 같은 너무 소소해서 굳이 적을 필요가 있나 근본적인 물음을 가져오는 것들.
내가 이다지도 불확실성을 기피하고 확실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쩌면 확실함이 부재한 세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깥에서 내 손으로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음을 감각하고, 집에 와 무력감에 빠지는 삶. 매일 해야 할 일을 적고 그 위에 밑줄을 치며 나만의 은밀한 성취감에 도취되는 행위는 스스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세상의 이치이자 공식에 소심하게나마 저항하는 것이다. 내가 통제하고 관리하는 하루하루가 쌓여 내 인생이 되고, 그러니까 내 인생은 결국 내 손바닥에 위에 있는 거다. 합리화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통제할 수 있음이, 확실함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