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많이 좋지 않은 편이다. 렌즈나 안경을 착용하지 않으면 지척에 있는 글자는 고사하고 사람의 표정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예전에는 시력 교정 겸 미용 목적으로 컬러렌즈를 착용했는데, 나이가 들자 렌즈를 착용했을 때의 뻑뻑함, 건조함을 견디기 어려워 지금은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이 아니면 렌즈는 착용하지 않는다. 출퇴근만 하는 평일에는 주로 사무실 자리에 앉아 근무할 때만 안경을 착용한다.
렌즈를 끼고 다니던 시절에는 거리에 즐비한 간판에 시선을 던지곤 했다. 보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화려한 색깔, 튀는 폰트, 자극적인 문구로 소리 없는 소음을 뽐내던 간판들. 걸을 때 주변을 구경하는 게 좋아서 간판 구경 역시 그런 재미 중 하나였는데 렌즈를 끼지 않는 요즘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앞이 흐릿하고 뿌연 상태에서 간판은 무슨...... 지하철 전광판에 뜬 다음 열차 정보도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에 비춰 확대할 지경이니, 길거리 간판 구경은 언감생심이다.
이렇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생활을 몇 년 해보니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눈에 들어온다고 하여 모두 눈길을 줄 필요가 없는 것들이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고, 이런 것들은 때때로 눈길을 주지 않는 편이 심신안정에 득이 된다는 것이다.
거리에 설치된 모객용 간판 속 자극적인 문구에 기분이 상한다거나,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의 깜짝 할인 소식에 괜히 마음이 동해 지갑을 열곤 하는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상태에서 길을 걷는 게 누구는 위험하지 않냐, 어지럽지 않냐며 걱정 섞인 이상한 눈길을 보내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만족이다.
인생에서는 렌즈나 안경을 써 유심히 잘 보아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흐릿한 상태로 눈길을 굳이 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도 많다. 가령, 오랜 친구의 연봉 정보나 학창시절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멀어진 동창의 주식 투자 성공 소식 같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 진정한 축하를 해줄 수 없는 나 같은 '소인배'들은 렌즈나 안경을 쓰기보다는 맨 눈으로 흐릿한 편이 낫다. 그게 안구도 덜 건조하게 만들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나만의 비법 아닌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