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밤잠이 많은 편이기는 했으나 현재 근무 중인 회사에 들어온 뒤부터는 본의 아니게 아침형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까 남들은 모두 퇴근 후의 시간이 아쉬워 뭐라도 해보려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잠에 드는 반면 나는 저녁 9시면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 10시 전후로 잠에 드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시선을 보내는데,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밤 10시에 잠들어 아침 6시에 깨어나는, 곧 죽어도 ‘8시 수면’을 반드시 지켜야 하루가 원활히 돌아가는 나의 바이오리듬은 지난여름 한 아이돌 멤버에게 이른바 ‘덕통사고’를 당하며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덕통사고의 가해자는 최근 몇 년 사이 K-pop을 넘어 전 세계 음악 시장에 다시없을 새 역사를 쓰며 매번 그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우는 ‘방탄소년단’ 그중에서도 ‘정국’이다.
2017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방탄소년단을 향한 반응이 뜨거울 무렵 나는 이들에게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아이돌 그룹은 2000년대 후반 ‘샤이니’를 끝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고, 이름도 ‘방탄소년단’이라니……. 뭐랄까, 너무 대놓고 아이돌스럽지 않은가? (아이돌에 아니꼬운 시선을 가지고 있던 지난날을 사죄합니다)
대체 얼마나 핫하길래 저러나, 하고 사진을 찾아보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이는 없었기에 그렇게 간간이 언론에 오르내리던 음악을 듣는 것으로 내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그러던 2021년 여름,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방탄소년단 게시물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클릭했는데, 그 순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소위 ‘치이고 말았다’. 정국에게!
뭐지, 이 잘생기고 까리한 멤버는? 바로 포털 사이트에 ‘방탄소년단’을 검색하여 내가 본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을 가진 멤버를 찾았다. 이름은 ‘정국’이며 그의 나이는 무려 97년생이라고 한다. 97년생… 97년생?!!!!!!! 하하……. 97년생이라니, 97년생이라니! 나와 그의 나이차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대체 왜 계산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10살을 넘기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내가 대학생 때 얘는…?’이라는 나이 어린 상대를 만났을 때 흔히 하곤 하는 뻔한 가정을 세우며 10살 이상의 나이차는 아니어도 어려도 너무 어린 이 남자답고 섹시하며 잘생긴, 종종 귀여움을 뽐내는 아이돌 멤버를 향한 내 마음을 부정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속으로 밀어내려 해도 덕통사고의 파장은 컸고, <유튜브>에 접속하여 검색창에 정국의 이름을 친 순간… 나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직캠의 홍수 속에서 마음껏 유영하며 지난 몇 년 동안 소녀팬들이 방탄소년단을 향해 난리를 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시간에 참회라도 하듯 보고, 또 봤다. 뒤늦게 합류한 덕질의 여파는 곧바로 나의 일상을 잠식했다.
취침을 위해 침대에 누우면 최소 2~3시간은 정국의 영상을 보다 잠들었다. 밤 10시에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도 태블릿 속 정국의 자태를 감상하다 보면 새벽 1-2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였고, 만면에 미소 가득한 얼굴로 더 보고 싶지만 다음날을 생각해 정국에게 아쉬운 이별을 고하는 식이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트위터’에 접속해 밤사이 특별한 ‘떡밥’은 없었는지 확인하고 출근길에는 그의 노래로 꽉꽉 채운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일하는 중간중간 트위터에 접속해 하트를 누르고 리트윗을 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렇게 딴에는 ‘밤을 지새우는’ 덕질이 한동안 계속됐고, 입덕 초기보다는 덜 하나 정국 덕질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덕통사고를 당한 직후에는 불씨가 화르르 타오르듯 그야말로 불사르듯이 앓았다면 지금은 적정 거리를 둔 채 이른바 과몰입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논란성 발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정국이 방탄소년단에 소속돼 있을 때보다 홀로 무대에 섰을 때 더 빛을 발할 실력을 가진 가수라고 믿고 있다. 하여 그때까지 그의 덕질을 하려면 속도 조절은 필수라는 판단을 내렸다. 밤새 사진과 영상으로 앓는 시간을 미래로 기약하며 조금 먼발치에서 그의 활약을 응원하고 있다. 황금 막내가 아닌 황금 가수로서의 정국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