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생각도 없는 비혼이 하객 수를 떠올릴 때마다 우울했던 이유
‘지인’이라고 부를 만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태생부터 좁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서른 다섯 명 안팎인 급우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었으며, 소위 ‘나댄다’라는 표현을 갖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리 나쁘지 않은 인맥(그 나이대 아이들에게도 인맥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다면)을 자랑하곤 했다.
아는 사람의 범위가 좁아진 건 추측건대 고등학교 때부터 인 것 같다. 잘 지내오던 친구들과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이유로 하나둘 멀어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이어가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놀랍다. 대학교 이후에 맺은 관계를 제외하면 현재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 연락을 지속하는 친구가 1명에 수렴하니 말이다. 이 한 명마저도 생일, 명절이 아니면 좀처럼 안부를 묻지 않는,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하고 아는 사람의 영역에 넣자니 조금 매정하게 느껴지는 그런 사이에 놓여있다.
철저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는 관계에 그다지 많은 비중을 두지 않는 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중한 관계를 지속하고 더 두텁게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던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정도랄까.
여기에 더해 조금이라도 나의 비위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거나, 약간 무자비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에게 하등 이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가차 없이 쳐내는 편이다. 지인, 친구 같은 사회적 관계를 통한 행복감을 추구하기보다는 그런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가 아까워 아예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고 회피한다고 볼 수 있겠다.
아는 사람이 많고 적고 따위로 한 사람의 가치를 매길 순 없겠지만 사회가 아는 사람이 더 많고 이른바 발이 넓은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건 사실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특히 한국 사회가 20-30대 개인의 삶을 ‘결혼’으로 귀결 지으려 하는 분위기가 강했던(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만약 내가 결혼을 한다면 몇 명이나 하객으로 와줄까를 생각하며 손가락을 꼽아보다 이내 우울감에 휩싸이곤 했다. 손가락을 몇 번 접지도 않았는데 더는 접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고자 모임에도 나가보고 새로운 ‘아는 사람’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한정된 자원과 에너지를 고루 배분하는 건 기질적으로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었다. 피상적인 관계를 맺고 몇 번 되지 않지만 의미 없는 만남을 이어오다 그 끝에서 마주하는 건 늘 ‘허무함’ ‘공허함’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세상의 모든 관계가 꼭 목적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뼛속까지 실속을 추구하고 효율을 부르짖는 내 성정에는 도무지 관계를 위한 관계를 지속할 의지를 만드려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런 고민과 헛된(?) 노력의 시간을 지나 나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관계를 유지하는 데 주력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 마음은 훨씬 편하다.
물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섣불리 ‘그렇다’라고 대답하긴 힘들겠지만 아주 드물게 주변 친구들에게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기우는 걸 보면 그래도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아예 회의적인 것 같진 않다, 나도. 그러니까 오늘의 결론은 ‘친구들에게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