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비하'라는 미덕

by 다현

가벼운 립서비스 형식의 칭찬을 건네도 극구 아니라며 자신을 비하하는 동료가 있었다. 내가 “J 씨는 정말 친절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하하, 아니에요. 비즈니스예요, 비즈니스.”라던가 “머릿결이 엄청 부드러워서 좋겠어요.”라고 부러움을 표하면 “다른 게 별로니 머릿결이라도 좋아야죠, 허허.”라며 칭찬한 사람을 살짝 무안하게 만드는 식이었다.


J의 이런 태도에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되니 남이 칭찬하는 게 싫은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왜 저렇게 자기 자신을 못 깎아내려서 안달일까 순수한 궁금증이 솟아났다.


동료 J가 칭찬을 건넨 사람에게 굳이 그런 식의 반응을 보인 건 자기 딴에는 ‘겸손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남을 존중하되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은 유독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미덕으로 통한다. 생각해보라. 칭찬을 받은 사람이 “당연하죠.” “제가 원래 그래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라고 답하면 열에 아홉은, 아니 한국인이라면 열에 열은 ‘재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문화에 대해 박학한 편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아시아권은 자신보다 타인을 중시하는 이타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아도 진심으로 기뻐하기보다 그 답변을 듣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골몰하며 대답을 고르고 고르다 보니 칭찬을 부정하는(또 부정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사회적 분위기가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내가 즐겨 찾는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회사에서 상사가 자신을 칭찬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배경을 미국이나 유럽으로 바꿔 생각해 보면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타인보다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문화권에서는 립서비스 칭찬에 기분 좋음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일반적일 테니.


서구 문화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측면에 있어서만큼은 부러울 때가 많다. 지적과 비판에는 즉각적으로 “네!” “시정하겠습니다!”라며 상대의 말을 바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왜 칭찬에는 한 발짝 물러나 주변 눈치를 살피며 사람 좋은 미소로 ‘헤헤’ 웃어야 하는지…….


앞선 언급한 일화 속 동료 J는 어쩌면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든 가장 안타까운 사례일지 모르겠다. J는 종종 ‘자존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자존감과 과도한 겸손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을 존중할 수 없으니 타인의 칭찬에 거부 반응부터 나타났을 테고 급기야 칭찬을 부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기 자신을 헐뜯고 비하했던 건 아닐까.


칭찬에 필터를 거치지 않은 순도 100%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J가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물론 나도 그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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