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전통을 지키는 솥뚜껑 운전

by 다현

제사가 너무 싫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여자는 부엌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데 남자는 제사상 앞에서 근엄하게 술잔을 올리는 꼴이 못마땅했다. 문장 어미가 과거형인 이유는 작년 추석을 기점으로 지긋지긋한 제사가 우리 집에서 마침내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제사 중단 소식은 "이번 추석부터 제사 안 지내기로 했다.”라는 아빠의 전화 한 통으로 전해졌다. 수십 년을 지내야 한다는 이유로 지내온 제사인데 어떻게 말 한마디로 끝날 수 있지? 나는 몇 번이고 “진짜”냐고 되물었다.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이 자리 잡은 이래 작년까지 매년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제사였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큰엄마와 엄마가 부엌에서 부산한 소음을 만들어내고 나는 그 소음으로 완성된 고소한 전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는 걸 알람 삼아 잠에서 깨는 걸 반복했다. 만 18세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제사 준비에 합류해 두 분을 거들었다. 참고로, 언니도 십수 년을 나와 함께 했지만 다른 집안의 며느리가 되면서 김 씨 집안의 제사 노동에서 탈출했다. 형부의 집안은 독실한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천운이 따로 없다.


‘피치 못할 사정’이나 ‘일신상의 이유’로는 매년 돌아오는 우리 집 ‘뫼비우스의 제사’를 막을 순 없었다. 그해 제사를 거르거나 아예 중단하려면 하늘이 두 쪽 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아빠가 제사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내비쳤을 땐 의아함이 먼저였다. 그리고 이내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아! 드디어 우리 집도 구시대적 폐습에 불과한 제사를 역사에 묻고 변화에 합류하는구나, 우리 큰아빠와 아빠가 그렇게 꽉 막힌 가부장들은 아니구나, 하고 내심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김 씨 집안의 제사가 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배경엔 나의 예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유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상 제사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한 제사상 만들기의 핵심 노동자인 큰엄마에게 발생한 질병이 진짜 이유였기 때문이다. 큰엄마는 몇 해 전부터 허리와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척추관 협착증’ 질환을 앓고 있다. 증상이 심해 수술도 했지만 잠깐 사라진 통증은 다시 시작됐고, 특히 장시간 서 있거나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자세는 통증의 강도를 더욱 높이는 탓에 평범한 일상생활도 영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까 황당하게도, 나의 큰아빠와 아빠는 제사상을 만드는 사람이 통증 때문에 부엌일을 하기 힘드니 더는 제사를 하지 않겠다는 당신들 나름의 큰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제사상을 만드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가? 조상을 기리고 대대손손 자손들의 평화와 안녕을 염원하는 ‘그렇게’ 중요한 제사라면 왜 제사상 만드는 사람을 교체해서라도 지속하지 않는가? 왜 제사 노동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 중단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가?


놀라운 건 이런 사례가 우리 집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사회 구조와 가치관의 변화로 차례를 비롯한 제사 의식 자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고, 이런 변화가 각 가정에 스며들어 실제로 과정을 간소화하거나 더 이상 지내지 않는 쾌거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제사 노동을 하는 며느리들의 고령화와 혼인율 급감으로 인한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을 그다음 세대 며느리들의 부재가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 확신한다. 인구 고령화와 혼인 감소에도 순기능은 존재한다.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고독사 10명 중 5명은 50~60대 남성이라고 한다. 그다음으로는 40대 남성이 가장 많고, 그다음 역시 70대 남성이다. 모든 연령에 걸쳐 여성보다 남성의 고독사가 압도적으로 높은 이 충격적인 결과에 많은 전문가들이 원인을 추측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가운데 가장 현실에 맞닿은 분석이라는 평가를 받은 내용 중 일부엔 대한민국 남성들이 ‘건강관리’와 ‘가사노동’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가사노동에 미숙해 고독사 한다는 말은 제사상 만드는 사람이 아파서 더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말과 아주 많이 닮아있다. 밥을 할 사람이 없으니 삶을 포기하고, 밥을 할 사람이 아프니 제사를 포기하는 남성들.


여성들이 부엌에서 조리하는 행위는 사회에서 부불 노동으로 강요하고 착취하는 가사노동의 일종이다. 하지만 남성들은 이 가사노동의 부재로 인해 유구한 전통의 제사 의식을 하루아침에 접고 심지어 삶까지 뒤로한다. 여성의 집안일 그중에서도 부엌 살림은 ‘솥뚜껑 운전’이라며 하찮게 폄하되기 일쑤인데 말이다. ‘고작’ 부엌살림을 하지 못해서 또는 하지 않아서 벌어진 실제적 피해가 이 정도라니 변화가 시급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중장년 남성들에게 권하고 싶다. 남자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가부장제의 전통을 유지하려면, 행복한 삶을 오래 건강하게 지속하고 싶다면 스스로를 먹이는 살림이란 걸 시작해 보는 게 어떨지. 솥뚜껑 운전으로 나도 지키고 전통도 지킬 수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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