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무서운 것..
정확히는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면서부터였을까... 페이스북에 언론보다 한 박자씩 빠르게 각종 정보들이 올라오면서 그 글들을 모조리 챙겨보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글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온갖 주제에 대해 잘난 듯이 내 의견을 적어댔다.
어느샌가 난 페이스북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원래 글 쓸 때 한번 글을 적기 시작하면 2~3시간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글만 적었는데, 페이스북 중독이 되니 그게 불가능해졌다. 어느 정도 글에 집중이 되는 순간에 페이스북 알람이 떠서 그걸 확인하는 사이에 집중이 깨져 버린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읽고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내 의견이라도 적을라치면 시간이 나도 모르게 훌쩍 지나가 있다. 이미 처음 생각하던 글 내용은 기억도 안 난다.
처음엔 단순히 박근혜 관련 글에만 그러다가 점점 그 범위가 넓어졌다. 젠더 문제, 기술 이야기, 온갖 잡다한 것들.... 페이스북에서 사용자들이 올리는 주제들은 끊임이 없었다. 마치 쉼 없이 몰아치는 파도 위에서 서핑하듯이 매 주제마다 자료를 찾고 확인 작업을 계속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공부도 많이 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역시 얕은 지식일 뿐이다. 가뜩이나 게을러진 마당에 하나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면 정말 아무 결과물도 내놓지 못하고 인생의 낭비만 할게 뻔했다. 자유롭고 재미있게 살자가 내 인생의 모토지만 그게 인생을 낭비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건 그냥 키보드 워리어의 삶이지 않은가...
스스로 페이스북에 중독된 것 같다는 자각이 있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을 정해놓고 페북은 절대로 안 봐야지라고 혼자 결심한들... 어느 순간 난 페북을 쳐다보고 분노하고, 공부하고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어느 날...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페북만 들여다보다가 하루가 지났다. 그날 혼자 생각해둔 작업 분량이 있었는데, 단 1% 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분노와 실망이 느껴졌다.
다음날 정말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그날은 작업 분량을 정해두지 않았다. 어차피 페북 하다 시간 날리나 명상하다가 시간 날리나 똑같다고 생각하고... 그냥 명상을 했다. 쉽지 않았다. 정말 내가 중독이구나 싶었다.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이런저런 생각들이 솟아났다. 어제 댓글로 싸우던 익명의 누군가가 뭐라고 답변을 달았을까... 난 거기에 어떤 논리로 맞서야 하나 따위의 생각도 나면서 지금 당장이라도 페북을 확인하고 싶어 졌다. 명상이 아니라 망상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내 의지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애초에 난 의지력이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다.
메모장을 열고 기억할 수 없는 임의의 문자열을 입력해서 그 문자열을 복사했다. 그리곤 페북 계정 설정에 들어가서 패스워드를 그 문자열로 바꾸고, 모든 기기에서 로그아웃을 시켰다. 이게 정말 효과가 좋았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페북을 열어보려는 타이밍이 모조리 인지되었다. 그리고 정말 패스워드를 기억하지도 못하기에 페북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한 이틀 정도 페북을 안 하니 페북 중독 현상이 많이 개선되었다. 계속 페북을 안 할 수는 없었는데, 지금 쓰는 브런치를 비롯해서 다양한 서비스들을 죄다 페이스북 로그인 연동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페이스북 패스워드를 복원하면서 걱정이 많았다. 간신히 중독 현상이 좀 개선된 것 같은데 다시 중독으로 빠지면 어떻게 하나.... 일단은 혼자 페이스북 묵언수행으로 명명된 행위를 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꾹 참는 거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긴 하지만 그에 대한 글을 적기 시작하면 다시 페이스북 중독으로 빠질 우려가 많았다. SNS의 기본은 소통 이잖은가.. 의견이 서로 오가기 시작하면 난 다시 중독으로 빠질 것 같았다.(... 높은 확률로.. )
지금 글들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엄청나게 많지만 꾹꾹 참고 있다.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해준다......
그나저나... 이딴 걸 보고 있노라니..
내가 이 꼴 보려고 페이스북 패스워드를 복원했나 자괴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