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습의 단련일기
주변에 채식을 하는 지인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자주 만나는 지인이 몇 안 되는데 대체로 채식을 하거나 채식 지향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나도 채식에 익숙해졌다. 과도기에는 주위에 같이 고기를 먹을 사람이 없어서 집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게 되는 지경에 이른 적도 있지만, 채식인의 친구 생활 n년차 요즘은 대체로 혼자서도 채식을 즐긴다.
가장 자주 해 먹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된장국이다. 옆집에 사는 친구 황집중이 채식을 시작하고, 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평소 국을 끓일 때 습관적으로 내던 육수를 생략했다. 처음엔 멸치 대신 다시마 육수를 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육수 없이 국을 끓이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해서 그냥 채소만 넣어 먹을 때가 많다. 콩나물이 있으면 콩나물을 넣고, 무가 있으면 무를 넣는 식이다. 육수와 건더기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할까, 무엇을 먹을 수 있고 무엇을 먹을 수 없는지에 대해서 좀 더 편하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트위터리안 정수련에게 브로콜리 국물이 시원하다는 이야길 전해 듣고, 나의 된장국에 최신 트위터 레시피를 반영해서 브로콜리를 데친 물에 무를 넣고 된장국을 끓였는데 무척 시원했다.
그리하여 내가 이번 주에 만든 된장국은 이렇다.
1. 지난주에 산 양배추랑 브로콜리가 시들한 것 같아서 일단 데쳤다.
2. 양배추와 브로콜리를 데친 물에 집에 있던 양배추, 버섯, 두부를 넣었다.
3. 된장을 한 스푼 듬뿍 퍼서 풀어준다.
4. 적당히 끓인다.
레시피를 쓰기도 민망한 된장국 완성이다. 된장국을 끓일 때 무나 브로콜리를 넣으면 건더기도 생기고 국물이 시원하고 달다. 심심하다면 고추나 고춧가루를 넣어도 좋다. 가끔 고추장도 넣는다. 아무튼 이날 끓인 된장국은 날이 따뜻해져서 그런지 맛이 슴슴해서 그런지 다음 날 점심에 데우지 않고 먹는 게 더 맛있었다.
나의 된장국은 계속 진화 중이다.
끝 !
ㅡ 이지만 이번에 글을 짧게 쓰자고 해놓고 길게 쓴 친구들 덕분에 몇 자 더 보탠다. 된장국만큼 자주 해 먹는 것이 미역국인데 미역국을 끓일 때도 해산물이나 고기가 안 들어가도 충분히 맛있다. 나는 미역국만큼은 소고기파였지만(해산물이 들어간 미역국을 잘 못 먹는다), 황집중이 미역만 넣고 끓여도 맛있다고 해서 해보았는데 오래 끓이면 다 맛있는 거였다. 들깻가루를 넣어도 맛있고 두부나 무를 넣어도 맛있다. 소고기 없이 단순한 방법으로 미역국을 끓일 수 있게 되면서 좋아하는 미역국을 전보다 자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황집중이 비건을 선언(?)하고 얼마 안 가 정수련이 채식 지향을 선언(?)하면서 나의 생활에도 즐거운 변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