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습의 단련일기
“니가 달리기를 한다고?”
몇 년 전에 내가 마라톤 참가해서 10km를 완주했다고 했을 때 아빠가 처음 한 말이다. 그 후로도 "이야~ 박연습 니가 달리기를 한다고?" 하면서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집에서 오이처럼 누워있는 모습만 보았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스스로도 잘 믿기지 않아서 처음 마라톤을 다녀왔을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마라톤 갔다 왔어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나는 아직도 '내가 달리기를 하게 될 줄이야'하고 놀라곤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전반적으로 모든 운동에 재능이 없었지만, 특히 달리기를 싫어했다. 학교에서 빨리 달리기 시험을 치를 때면 빨리 달리진 않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달리기를 하면 심장은 쿵쾅거리고 짧디짧은 몇십초의 시간이 참 더디게 흘렀다. 사십몇 명 중 끝에서 두 번째인 기록을 확인하고 든 생각은 ‘역시 나는 못 해’. 그 후로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의 목록에는 항상 달리기가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생사를 넘나들며 도망치는 장면을 볼 때면 ‘나는 시작하자마자 죽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부디 도망칠 일이 없는 인생을 살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그런 내가 오랜 시간이 흘러 달리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달리기를 할 때마다 그만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달리기를 마쳤을 때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가장 즐거운 것을 보면 아무래도 달리기가 즐거운 건 아닌 것 같은데, 달리고 싶은 이유보다 달리고 싶지 않은 이유를 더 많이 알고 있는데, 왜 달리는 거지, 나는.
처음 마라톤을 신청하게 된 것은 '10km 마라톤은 걸어도 완주할 수 있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말이 씨가 됐는지 실제로 두 번째로 참가한 마라톤에서 더위를 먹고 달리기를 포기한 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들어온 적이 있다. 그때 나의 기록은 km당 9분 3초. 그리고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년 즈음 되었을 때 나의 최고 기록은 km당 7분 4초였다. 최고 기록을 경신한 날, 나는 달리기 일지에 이렇게 썼다.
걸으나 달리나 2분밖에 차이가 안 난다. 근데 그게 열 번이 되면 20분이 된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여전히 달리기를 안 좋아하고, 달리는 속도 역시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달리는 동안 나는 뭔가 변한 것 같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달리기를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지금 막 도착한 버스를 달려가서 탄 일이 생각났다. 조금 먼 거리였는데 평소와 달리 왠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순간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떠나려고 하는 버스를 달려가서 잡는 일, 영화에서 쫓기는 장면을 볼 때 이전과는 달리 '도망칠 수 있을지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변했다.
그렇게 조금씩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늘어났다. 시작은 달리기였다. 할 수 있다는 작은 실감을 쌓고, 작은 차이를 차곡차곡 모으면 큰 차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달리기를 통해 배웠다. 아마도 이게 내가 달리기를 싫어하면서도 달리는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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