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두울 땐

일곱 번째 어떤 날

by 박공원



브런치 앱으로 글을 수정하다가 실수로 휴지통 버튼이 눌려서 다시 올린다. 브런치에 이미 발행한 글을 삭제하면 전혀 1도 복구가 안 된다는 걸 지금 알았다. 다행히 컴퓨터에 글이 삭제되기 전에 켜 둔 창이 띄워져 있어서 글을 살릴 수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면 포기했을 텐데 진짜 다행. 휴,,,, 긴 글을 쓸 땐 다른 데다 쓰고 옮기 던 지 해야...




어두울 땐

가장 가까운 불부터


한 때 유튜브로 비정상회담을 많이 봤다. 당시에 나는 뭔가 회피하고 싶으면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하염없이 보곤 했는데 (이미 종영된 프로인 비정상회담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클립이 넘쳐났으므로 한동안 즐겨 봤다) 그 시간이 내게 준 의외의 수확 중 하나는 이 문장을 알게 된 것이다.


하루는 인스타그램에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분의 그림일기를 봤다. 어느 날 밤 너무 힘이 들어 자살예방 상담에 전화를 걸었는데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어서 결국 가족과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겨우 잠들 수 있었다고. 언제 이 시간이 끝날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일기였다. 실은 나도 오래전에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던 적이 있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죽을 것 같아서 무서웠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떨면서 새벽까지 깨어있던 적이 많았다. 그날은 평소보다 더 큰 공포와 불안이 몸을 덮쳤다.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애인이 있었지만 그전에도 몇 번인가 깨운 적이 있어서 조용히 다른 방으로 가서 몸을 떨면서 번호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카드였던, 잘 때조차 고단한 신음을 내뱉는 아빠의 잠을 깨우는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고 조그만 방 안이 푸르스름하고 하얗게 밝아질 때쯤 안정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분의 일기를 보고 그날 밤의 일이 떠올랐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지금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견딜만해지는 날이 올 거예요. 응원하겠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말을 소개하면서 “어두운 땐 가장 가까운 불부터 켜보면 어떨까요?”라고 말을 건네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만화를 그렸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해봐요, 저렇게 해봐요."라고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만한 말을, 아니 방법을 찾으려 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내 모습을 보려 하기 때문에 거리두기가 잘 되지 않는다. 공감보다 내가 했던 시행착오가 떠올라 말이 길어지고 나의 방식을 강요하는 꼴이 된다. 그리고 마치 내가 그 시절을 졸업한 것처럼 말하게 되는 것 같아 앞으로는 조심하기로 했다. 대신 사람들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말을 찾게 될 거라고. 그 말들이 주인을 찾아올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랬다. 내게 필요했던 말들은 내가 찾을 때 내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의 힘든 시기와 정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엇갈리기 때문에 서로를 도울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비록 나는 적당한 선을 찾지 못해 무관심과 오지랖의 양극을 오가고 있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고 만화를 올리게 돼서 좋은 것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때에 해놓으면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세상에 참견하고 싶을 때 글을 쓰고 참견이 필요한 누군가는 읽겠지 생각하는 것이 일방적인 조언을 하는 것보다 서로에게 좋은 일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몸이든 정신이든 아픔은 그의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문제 해결의 의지만큼 문제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게으른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당사자에게서 찾는다. 가장 쉽고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관리가 부족했다.'라는 식으로 말하거나 생각한다. 아마 이것이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일 테고, 실제로도 그 말은 마치 모호한 점괘처럼 일부분 맞는 말이 섞여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만 생각하면 아픔은 죄가 된다. 그리고 같은 일이 본인에게 닥쳤을 때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신음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진다. 그냥 사람은 언제든 아플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나 역시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어렵지만 사람은 노력하는 동안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니 희망을 갖고 노력해 본다. 원인을 찾지 않는 게 어렵다면 '운이 나빴고, 인생이 그에게 가혹했다.' 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비정상회담 몇 화였는지 기억이 안 나서 떠오르는 대로 그렸는데 알렉스는 누굴까요. (찾아보니 스위스 대표 분이네요, 얼굴을 이상하게 그려서 죄송합니다) 아마 호주 다니엘? 아버지가 하신 말씀 같기도 한데 아시는 분 있으면 제보 바랍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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