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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Feb 04. 2022

지붕 없는 학교에 가다

feat. 2018 서울사대부고 '역사가 지리네'팀 

  2002년 역사교육과에 입학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봄과 가을마다 학술 답사를 다녔던 일이었습니다. 날씨가 좋은 때에 정규 수업으로 교수님들과 함께 역사 유적지를 밟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듣고, 또 그 수업을 위해 미리 학생들끼리 모여 세미나를 하고, 글을 썼던 일은 가장 재미있는 공부였습니다.


  처음 교직에 들어왔을 때부터 저는 학생들을 데리고 답사를 다녔습니다. 아주 멀리 가지는 못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한여름에 인천 개항장 유적지를 가기도 했지요. 마침 인천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온 날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함께 다니니 인천 방송에 출연하게 되기도 하였답니다.


      2016년, 서울사대부고에 와서는 더욱 재미있는 일을 꾸몄습니다. 10년 전 처음 교직에 나온 때 같은 학교에서 교직을 함께 시작했던 대학 동기 박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역사와 지리 답사를 함께 하는 수업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곳을 가도 지리학적으로는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수업이었답니다. 저도 새로운 수업을 만들면서 참 재미있었지요. 학생들도 콧바람을 쐬면서 공부를 하니 교실에서보다 훨씬 활기찼답니다. 6월 하순의 무더운 날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돌아다니는데도 그저 신이 났지요. 그나마 여학생들은 치마를 입었는데 남학생들은 왕의 복장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경복궁을 둘러보았답니다. 더위를 담지 않은 사진은 더욱 멋지게 나왔지요.


  2018년에는 성북구청의 동교동락 사업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성북구청의 지원으로 마을 주민들과 학교 학생들이 만나 마을이 학교가 되고, 학생들이 마을 어른들로부터 공부하고, 마을의 좋은 전통과 역사를 배우는 우리 마을 역사 문화 탐방 프로그램을 학생들과 함께 기획하였지요. 이 멋진 프로그램을 용호, 진형, 일선, 윤종, 원빈 등 3학년 학생들이 주도했다는 것이 더욱 멋지게 느껴집니다.


   1차 답사는 6월 16일 토요일에 다녀왔습니다. 성북동의 길상사에 가서 자료집에 담긴 백석의 문학 작품을 읽고, 백석과 자야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어요. 짧은 반바지를 입은 친구들은 앞에 있는 치마를 두르고 길상사를 둘러보았답니다. 우리는 문화재를 감상하는 매너에 대해서도 배운 셈이지요!


  한참 땀을 흘리고는 길상사 옆에 있는 동병상련을 갔답니다. 동병상련은 중요 무형문화재 38호 궁중음식 전수자 박경미 선생님의 공방 겸 카페인데 박경미 선생님은 오지 못 하셨지만 수제자인 김영민 브랜드 총괄 매니저님의 한국 전통 음식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온고지신의 정신을 강조한 강의가 참 인상 깊었지요. 하지만 더욱 인상 깊은 것은 새콤달콤 시원한 오미자차와 건강한 맛의 팥빙수였지만요. 아, 김영민 매니저님은 작년에 우리 학교에서 바오담 CEO로 오셔서 강의를 한 적이 있으시대요. 그래서 우리에게 떡과 퓨전 한과도 아주 많이 주셔서 너무 맛있었어요. 오미자차로 더위를 식히고는 최순우 옛집과 이태준 생가에 들러 문화재와 문학 작품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우장을 들렀지요. 우리는 한용운 님은 어떤 곳에 살았나 슬쩍 들렀다가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마침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이 1944년 6월 29일이어서 2주간 뮤지컬 ‘심우’가 하는 시간에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관객이 너무 없어 뜨거운 태양볕에도 우리 학생들이 앉았답니다. 조금 있다가 몰래 나갈까 하는 마음을 서로 가지고 있었는데 웬걸 우리 모두 눈물을 흘리며 집중하고 말았어요. 맨 앞에 앉은 제게는 한용운 선생님 역할을 맡은 배우가 “100년 뒤의 조국은 평안한가?”하고 물으셨는데 울컥 목이 메고 말았어요. 정말 감사하다고, 선생님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계셨기에 우리 후손들은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목이 메어 그저 “네.”라고 겨우 대답했답니다. 뒤를 돌아보니 학생들이 다 같이 울고 있었어요. 이런 수업을 교실에서는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차 답사는 ‘성북구의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주제로 성북 선잠 박물관, 우리 옛돌 박물관, 간송미술관 등 성북구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답사했습니다. 1, 2차 성북동 답사 코스를 자세히 알고 싶으면 유튜브에서 ‘동교동락 서울사대부고’를 검색하면 진찬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3학년 학생들이 만든 성북동 투어 동영상을 볼 수 있을 거예요.


  3차 답사는 ‘성북구의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주제로 세계문화유산인 의릉과 한국예술종합학교, 구 중앙정보부 강당, 장위 전통시장 등 석관동과 장위동 일대에서 했지요. 장위 전통시장에서는 시장 상인 분들과 재개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4차 답사는 ‘시가 흐르는 정릉동’이라는 주제로 정릉, 정릉동 청소년 휴카페, 자오나학교의 공방 까페인 엘브로떼, 정릉동 개울장 등 정릉동 일대를 돌아보았답니다. 엘브로떼에서는 자오나학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개울장에는 너무나 사고 싶은 물건들을 많이 만날 수가 있었지요. 신경림 시인의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를 읽으며 돌아보니 정릉동은 더욱 정겨운 동네였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종암동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우리 동네라 잘 알 것 같지만 그래서 더욱 잘 지나치게 되는 것도 많거든요. 2019년에는 종암동에 이육사 문학관이 개관할 예정입니다. 이육사 시인이 ‘청포도’를 종암동에서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학교와 가까우니 이육사 문학관에는 꼭 가보길 바랍니다. 배움은 반드시 책에만 있거나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늘 겸손하게 배움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어느 곳이나 여러분이 있는 모든 곳이 학교가 되고 모든 것이 여러분의 스승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과 답사를 가는 것은 교실 수업보다 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지만 언제나 설레는 일입니다. 학생들이 지붕 없는 학교에서도 더 깊이 있게 역사를 체험하고 생각이 커지는 것을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지요. 때때로 공부가 너무 힘든 날, 가까운 궁궐을 산책하거나 성북구에 있는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며 우리가 배우는 역사가 실은 ‘바로 오늘’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하늘 구경도 함께 하구요. 옛 건물의 지붕에 걸린 하늘이야말로 참 멋지거든요!



2018년 학교 교지에 실었던 글인데 코로나 이전의 답사 체험형 수업이 그리워져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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