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아프다. 사람들은 그래서 마음에 자꾸 울타리나 벽을 만든다. 누구도 아프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의 마음은 소중하니까.
스무 살 때 가장 큰 고민은 울타리를 어디까지 세워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마음에 울타리를 만들지 않으면 아무나 내 마음에 들어올 것 같고, 또 그러다 떠나거나 생채기를 내면 너무 아프니까 울타리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울타리가 너무 많으면 누구도 들어오지 못해 너무 외로울 것 같았다. 어디까지, 얼마나 울타리를 세워야 내 마음이 안전할까 하는 것이 그때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것 같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달랐다. 지금은 선택 과목이 많아져서 고등학생들도 몇몇 과목을 빼면 대부분의 수업을 다 다르게 듣지만 우리 때는 고등학교 시간표는 고정되어 있었고 한 학급에 있는 친구들과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0교시가 있었으니 8시간의 수업을 같이 듣고,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고 야자를 또 같이 했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수업을 선택해서 듣고, 같은 과 친구들도 노력하지 않으면 만나기가 어려웠다. 누구와 점심 약속을 잡아야 하는가 하는 것은 그 날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1학년 전공 수업으로 교육심리학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상담을 받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이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용기를 내어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고 사범대 벤치에서 교수님을 만났다. 무척 화창한 날이었고, 따뜻한 선생님의 음성과 햇빛과 바람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이제는 20년 가까이 되어서 교수님이 어떤 워딩으로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교수님은 내 이야기를 아주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한참을 들으시다가 누군가 들어와도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던 것 같다. 누가 들어와서 다칠까 봐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전에 누가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들어오게 해 주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때 '한 번 마음을 열어보자'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울타리를 치우니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학과에서 누구나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까탈스러운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선후배들과도 친구들과도 잘 지내게 되었다. 교회와 동아리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서로에게 하는 말들이 꼭 부드럽지만은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모임에서 대장 역할을 하느라 모든 사람에게 연락하고, 시간을 맞추고, 못 온다는 말을 듣고 하는 일들을 몇 년 동안 했더니 꽤 지치기도 했던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울타리 없는 마음에 살짝 들어와서 예쁘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렇기 때문에 찌르고, 또 찌르고 하는 사람도 있다. 투명한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좋은 것만 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배신감도 느끼고 많이 아프고, 슬펐다.
누군가 상처를 주고, 혹은 아픈 말을 남기고 떠나는 일들이 반복되어도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덜 아프게 지나가지는 않았다. 통증은 적응되지 않는다. 오히려 학습되기 때문에 때때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도 이미 아프게 다가올 때도 있다. 울타리를 세우면 좀 나을까? 그때마다 항상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런 질문을 했다.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속마음 감추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마음의 문을 닫고 검증된 사람들만 내 마음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수없이 반복해 보아도 역시 그것은 나다운 것은 아니라고 결론짓게 되었다.
누군가 내게 상처를 주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투명하고, 솔직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타리를 세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러니 상처를 받기로 결심하자고.
얼마 전에 선배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다. 잠깐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상처들과 갖가지 방어기제가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걸 숨기고 사느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느라 참 고생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그 사람이 좋았던 것 같다. 저 많은 울타리들을 좀 치우면 좋을 텐데... 그 많은 가면들 중에 몇 개는 벗어도 조금 편안할 텐데...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그를 몹시 당황시킨 것 같다. 그는 나처럼 솔직한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고, 너무 낯선 것도 같고, 몹시 부담스러운 것도 같았다. 대체 왜 그렇게 솔직한 것인지 몹시 당황스러워하였다. 그는 나를 관찰한 것들을 가지고 몇 가지 태도나 표현을 지적하기도 하였는데 그것들에 대해서도 방어하지 않고 전부 받아들였다. 이런 부분은 내가 좀 잘못한 것 같고, 이런 것은 이렇게 고쳐보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에게는 더욱더 견딜 수 없는 부분이었던 것 같았다. 아마도 '쟤는 진짜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리고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연락을 하지 않기에 이 만남에는 마침표를 찍었다.
나도 마음을 숨기거나 감출 수 있다. 실은 마음을 내보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훨씬 쉽다. 나는 수많은 사람을 대하고, 관찰하는 직업을 가졌고, 게다가 연기를 배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마음을 감추거나 다른 캐릭터의 사람인 것처럼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가 않다. 마음을 숨기고 타인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국은 나의 진짜 마음을 점점 외면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면 마음이 아파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내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움을 받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연기를 하면서 살아간다.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은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은 안전한 일이다. 안전하지만 무척 외로운 일은 아닐까?
마음을 숨기는 것은 유리한 일이다. 그런데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면 무엇에 좋은 것일까?
사랑받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나의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 받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가장 나다운 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