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로즈와일리전' 후기
예술의 전당은 왜 올 겨울을 나고 봄을 기다리는 전시로 로즈 와일리전을 선택했을까.
로즈 와일리의 그림은 전반적으로 따뜻했다. 길어진 얼굴이나 허리, 팔다리 혹은 빅토리아 시대 엉덩이를 크게 부풀린 옷차림. 어느 한 부분이 과장된 듯한 인물들의 모습은 오즈의 마법사 세상에서 튀어나온 듯 어딘가 어릴 적 보던 동화 속 삽화를 연상시킨다.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빨강, 분홍, 노랑, 연두 등 따뜻한 봄의 색을 사용한 그림들 앞에 더 오래 머물렀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녀의 삶의 태도다. 일상에서 포착한 순간, 영화 속 어느 한 장면, 남편과 함께 보던 축구경기까지. (손흥민 그림도 있다!) 그녀의 화폭에 담긴 대상들은 멀리 있지도 않고 거창하지도 않다.
캔버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덧칠한 물감이 유독 두껍고 거칠게 쌓였거나, 조각보 마냥 캔버스를 스테이플러 건으로 덧댄 흔적도 있다. 로즈 와일리는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강아지 두 마리를 그린 그림에서 한 마리의 몸집이 유독 큰데, 작게 그리려다가 잘 안되어서 그냥 다시 그리다보니까 커졌다고 한다. 실수를 애써 감추거나 뒤엎지 않는다. 그냥 ‘이게 나야’, ‘이게 내 그림이야’ 하고 내놓는 게 로즈 와일리 그림에서 내가 느낀 힘이었다.
지난 한 해는 우리에게 큰 상흔을 남겼다. 작년을 돌아보며 이야기하다보면 도무지 계획대로 굴러갔다는 사람이 없다. 물론 그게 한탄으로 끝나기도 하고, 그 안에서 배운 걸 이야기하며 올해를 다짐하는 사람도,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바꿨는지 신나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세 부류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너무나 다르다.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도, 나는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다. 흐트러질 수 있고, 발걸음이 꼬일 수 있고 손이 떨릴 수도 있다. 사람의 여유와 온기는 계획을 얼마나 잘 세우고 수행하느냐가 아니라, 계획이 엇나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서 비롯한다. 애초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내 시간이지만, ‘이것도 나야’라며 변수도 끌어안는 자세. 로즈 와일리의 그림이 뿜어내는 온기는 그래서 위로가 된다.
마지막 사진은 가장 좋았던 그림 앞에서. I Will I Win.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3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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