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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Lyn Aug 14. 2020

전세가 폭등과 상도덕 사이

갑자기 집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불가피하게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상도(道)가 없는 사람들을 가끔씩 만나게 된다.

 




지난 주말, 집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운을 떼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서 직감적으로 전세가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아차렸다.


"요즘 거기 전세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나도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어제 부동산에서 전화가 와서 요즘 시세가 OO이상이라고 재계약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내가 OO 씨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닌 데다 내가 또 얼마 전에 한 이야기도 있고 해서 좀 미안하기도 한데, 그래도 전세 가격이 시세랑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니까..."


아주머니는 서로 간의 형식적인 안부인사가 끝나자마자 본인이 하고픈 말을 쉬지 않고 쏟아냈다. 그리고 본인은 관심이 없었는데 부동산에서 재계약을 부추겼다는 둥, 내 사정을 감안한다는 둥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말들을 서둘러 꺼냈다. 아마도 전세가는 올려 받고 싶지만 나쁜 집주인으로 비치기는 싫었던 것 같다.


상대편의 말을 조용히 듣던 나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다가 이내 내용을 다 듣고서는 그야말로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이미 3개월 전에 내게 전화를 걸어 곧 만료될 전세계약을 2년 더 유지할 것인지를 물어보았고 서로 간에 유지하기로 구두 합의를 한 상태였다.


"아직도 아파트 단지에 공실이 있나요?"
"별일 없으면 그냥 계시면 되죠 뭐."


당시만 해도 아파트 단지 내에 여전히 세입자가 없는 공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형식상으로는 내게 아파트 단지 내 사정을 물어보는 어투였지만 이미 그녀는 전세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파트 공실 여부에는 관심도 없었거니와 이사하는 게 귀찮아서 계약금액만 유지된다면 계속해서 거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서로가 만족할만한 수준에서 짧게 구두합의를 이뤄냈다.


이후 나는 전세 가격이나 집 걱정에 대한 생각을 아예 잊고 지냈다. 그리고 최근 부동산 가격이 날뛰고 전세대란이란 뉴스가 여기저기에서 자주 들렸지만 내가 당장 염려해야 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여겼다. 나는 이미 전세계약을 연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아주머니의 전화 한 통으로 갑자기 나는 연일 뉴스에서 보도하던 전세가 폭등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들어서게 되었다.  






전세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임대인이 전세가를 올려 받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세계약 만료 1주일을 앞두고서 이미 석 달 전에 합의한 전세계약 연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수천만원의 금액을 갑자기 올려달라고 하는 것은 상거래의 기본인 상도덕이 완전히 상실된 것 같다.


나는 일단 침착하게 아주머니가 원하는 금액을 물어본 후 생각해보고 답변을 주기로 하고서 통화를 마무리했다. 물론 나는 여러 사실관계(수개월 전 갱신 합의, 증액을 요구한 시점)를 비롯하여 임대 3 법에 따른 계약갱신청구권도 사용할 수 있어 집주인에게 법적으로 대항할 수 있었기에 그녀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해도 무방했다. 게다가 집주인이 증액을 요구하는 금액 역시 전월세 상한제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금액이었다.  


하지만 아주머니 역시 그러한 상황을 알고서도 굳이 내게 계약가를 수천만원 올려달라고 전화를 했을 때에는 그 의지가 높다고 판단되었기에 향후 서로 간에 실랑이를 벌일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했다. 그리고 실랑이 끝에 연장을 한다한들 거주하는 동안 불가피하게 서로 연락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도 스트레스였다.


당연한 일의 당연함을 굳이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피로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주인과 이미 신의 관계가 깨진 상황에서 굳이 이 집에 계속 거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장 새로운 집을 알아보러 다녀야 하는 수고로움과 이사비용 및 중개 수수료 등 여러 비용이 지출되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는 분명 집주인이 얻고자 하는 이익의 반대급부로 내가 부담해야 할 손해였다.


때문에 나는 집주인에 이사비용 및 중개 수수료와 관련해서는 실비에 준하는 금액의 지급이 필요함을 전했다. 처음에는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집주인도 이윽고 그 비용은 본인이 부담하겠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물론 집을 구하러 다니는 수고로움과 기타 여러 신경 쓸거리로 인한 나의 시간 비용 및 노동력까지 보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법적 분쟁까지 가지 않고 원만하게 합의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집을 옮기 되었다.  




*커버출처: https://blog.naver.com/happykeeping/222014694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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