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쥬필 Sep 08. 2023

PART1.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 발급

상상도 못 했던 할머니의 증명서 발급

가족관계증명 란?

법률 ‘가족 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개인의 정보를 기재한 증명 서류. 부모, 배우자, 자녀의 인적 사항 등 기재 범위가 3대로 제한된다. 보통 친자관계를 증명할 때 사용되며 형제자매는 표시가 안 되므로 형제자매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본인의 인적 사항이 기재된 기본 증명서와 배우자의 인적 사항과 혼인 및 이혼에 관한 사항 등이 기재된 혼인 관계 증명서, 그리고 입양과 관련된 사항이 기재된 입양 관계 증명서가 있다.




PART1.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 발급


상상도 못 했던 할머니의 증명서 발급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퇴근 후, 가족 넷이 모여 테이블을 둘러앉았다. 가을의 저녁 햇살이 어두워져 가는 창문 밖을 스치며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더욱 아늑하게 비춰주었다. 아빠는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리모컨을 집어 들며 TV 채널을 돌렸다. 아빠가 항상 보던 뉴스에서는 쉴 새 없이 '영케어러'라는 주제로 방송이 이어졌다. 영화 같은 현실, 현실 같은 영화라는 뉴스 캐스터의 말투에도 가족들의 관심은 사라져 있었다. 이런 소식들은 우리의 일상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 뉴스였다.


영케어러
장애, 질병, 정신질환, 약물, 알코올 등 문제를 가진
가족이나 친척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 청년


하나뿐인 나의 여동생 은주는 "으~ 재미없어. 그렇지 언니~ 다른 거 보자" 하며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엄마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아빠는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화면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바꾸었다. 화면 속에서는 코미디언들이 활기찬 음악과 함께 웃음을 선사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별다른 대화 없이, 그저 화면 속의 웃음소리에 함께 '하하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던 중, 집 안의 웃음을 갑자기 깨뜨리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흔히 듣던 소리지만, 오늘은 왠지 평소와는 다른 무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먼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목소리에는 긴장된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네, 여보세요? ……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짧은 통화 후 엄마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아빠에게 눈치를 주며,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왜? 무슨 일인데, 자기야" 엄마는 손을 파르르 떨며 "어.. 엄마가.. 응급실 이래.."하고 말했다. 아빠는 조용히 일어나며, "잠시만 엄마하고 나갔다 올게. 밥 먹고 있어." 하고 말했다. 어두워진 밖으로 나가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은주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 속에서는 많은 질문과 궁금증, 그리고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뭐지? 갑자기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은주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이 나간 뒤의 집안은 묘한 무게감으로 가득 찼다. TV 화면 속 웃음소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웃게 만들지 못했다. 대신, '영케어러'와 관련된 뉴스의 소식들이 떠올랐다. 그 뉴스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 어쩌면 큰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주와 나는 서로 말없이 눈빛만 주고받았다. 그 눈빛 속에서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단순히 어떤 불안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만 생각했던 나는 이 사건이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 발급'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병원의 응급실은 언제나 그랬듯이 시끄럽고 긴장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냉기가 부는 에어컨 아래,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와 의사들의 행동이 그 안을 더더욱 긴장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환자들의 신음 소리, 간호사와 의사들의 대화 소리가 뒤섞여있었다. 정신없는 공간에서 서툴게 들어선 엄마와 아빠는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간호사를 찾았다. 두 사람은 할머니의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그저 할머니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락받고 왔습니다. 혹시 '최영월'씨 어디 계신가요?" 간호사는 차트들을 살펴보곤 "최영월 보호자 되시나요?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요. 이틀 동안 쓰러져서 계셔서 지금 위독하신 상태입니다." 엄마와 아빠는 그 말에 얼어붙었다. 한참 후에 아빠가 물었다. "상황이 어떻게..." 간호사는 대답했다. "이웃에 계신 할머니께서 발견하셨다고 하네요. 119 구급차로 왔어요." 엄마의 표정은 하얗게 변했다. "핸드폰에 적힌 순서대로 전화드렸는데 형제들이 모두 전화를 안 받는데요." 간호사가 말했다. "가족들과 연락하셔서 모두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엄마는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신속히 행동해야 했다. 빠르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삼촌의 전화는 계속해서 통화음 노래만 들리고 받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빠르게 다음 번호로 넘어갔다. 이모들의 전화에는 바로 통화 표시가 떴다. "언니, 엄마 쓰러졌어. 지금 병원에 와줘야 해." 끊어진 전화 뒤, 응급실 안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대기실의 시계는 지나치게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모든 시간이 무겁게 느껴졌고, 각자의 휴대폰 화면과 대기실 내부를 번갈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몇 시간이 흐른 후, 이모들이 병원으로 서둘러 왔다. 허둥대며 온 이모들은 바로 엄마와 아빠에게 다가와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결국 그날 삼촌들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어떤 사유로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 병원 대기실에 모인 가족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함께 할머니를 위해 기도했다.




 할머니의 건강검진과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다들 아침까지 대기를 하고 있었다. 해가 뜨기 시작했을 때의 병원은 새로운 시작의 공기로 가득 찼지만 그중에서도 응급실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게 느껴졌다. 병원 복도에는 가족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돌아다녔다.


아침이 완전히 밝아오자, 의사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검사 결과 할머니는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연세가 많아서 이틀 동안 쓰러져 있던 것으로 인해 기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모두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그렇지만, 의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검사 결과는 문제가 없으셔서 바로 퇴원하시고 요양원에서 관리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모두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때, 큰삼촌 '박일섭'이 병원으로 서둘러 왔다. 큰삼촌은 정장 차림의 자다 일어난 흐린 표정으로 모두를 훑어보고는 엄마에게 할머니의 상황을 물었다. 엄마는 삼촌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해주었다. 삼촌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럼 바로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내가 예약을 해둘게."라고 말했고 이내 출근을 해야 한다며 그 자리를 급하게 떠나갔다.


막내 이모 '박삼숙'도 일이 있어 급하게 병원을 떠나야 했고 결국 엄마와 큰 이모 '박일숙'이 남게 되어 그들은 할머니의 병상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장사를 하는 아빠는 엄마가 걱정되어 일하러 가지 못한 채 함께 그 자리를 지켰다.


오후가 되자, 큰삼촌 '박일섭'이 전화로 요양병원을 예약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병원 복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북적였고 할머니를 위한 병원 구급차를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할머니의 상태를 놓고 볼 때, 걷지 못하는 그녀를 안전하게 옮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이였기 때문에 아빠는 병원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고 한참 동안 함께 구급차 준비를 알아보았다. 할머니는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엄마와 큰 이모 '박일숙'은 할머니의 두 팔을 꼭 붙잡고 그녀를 서게 했다. 할머니의 눈에는 힘겹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한 불꽃이 빛나고 있었다.


구급차가 병원 앞에 도착하자, 여러 직원들이 손을 내미며 할머니를 도와줬다. 그들의 움직임은 빠르고 전문적이었다. 산소마스크와 여러 기기가 연결된 할머니의 침대는 조심스레 구급차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을 빠져나온 구급차는 요양병원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 안에서 할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연한 손을 꼭 잡고 있는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요양병원에 도착하자, 여러 요양사와 의사들이 구급차를 맞았다. 할머니를 다시 안전하게 병원 침대로 옮겨주었다. 병원의 분위기는 조용했으나,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전문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병실로 가려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보호자는 단 한 명 만 가능하며 코로나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해 주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큰 이모 '박일숙'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의 어깨는 무겁게 느껴졌다. 병원의 대기실에서 가족들은 한줄기 빛을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나누었다.


누가 할머니와 함께 요양병원에 머무를 것인가?


엄마의 호흡이 어렵게 턱턱 막혀오는 소리가 공기 속에 퍼져 나갔다. 엄마는 호흡질환 천식을 앓고 있어 힘들게 숨을 쉬었다. 그래서 장기간 병원에서 지내는 것은 엄마와 할머니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명확했다. 아빠 역시 장모님을 여자병동에서 모셔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부분과 외벌이로 장사를 생각하면, 요양병원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큰 이모 '박일숙'은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내가 엄마랑 함께 있을게요. 걱정하지 마."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고민 따위 없이 누구보다 먼저 결정을 내렸다. 엄마와 아빠는 그녀를 향해 고마운 눈빛을 보냈다. 그녀의 결정에 감동과 동시에 그녀에 대한 걱정이 깊어졌다.


큰 이모 '박일숙'과 할머니는 병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의 검사실로 향했다. 긴 줄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모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의 손은 차가웠지만, 그 속에서도 뜨거운 가족의 정이 느껴졌다. 검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병원의 복도를 따라 병실로 이동했다. 


병실의 창문 밖으로는 푸른 나무들이 보였고, 그 사이로 가끔 햇살이 새어 들었다. "여기가 '최영월'님이 지내실 방이에요."병원 직원은 친절하게 안내하며 말했다. 병실에는 깨끗한 환자용 침대와 TV, 그리고 책상이 있었다. 큰 이모는 할머니를 병상에 앉히며 자세히 방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 차 있었지만, 동시에 그녀는 당당하게 할머니를 보살피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그렇게 요양병원의 첫날, 그리고 그 뒤로도 큰 이모 '박일숙'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눈빛이 오고 갔고 그들의 그 눈빛은 가족의 사랑을,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하는 결속을 의미할 것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