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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필 Sep 11. 2023

PART2. 죽이고 싶은 가족관계 증명서

'박이숙'의 가족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상세)

등록기준지 강원도 행복 군 가왕면 하면리

본인 '박이숙' 1969년 05월 01일 690501-*******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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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항

부 박남일 사망

모 최영월 1939년 03월 01일 390301-*******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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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이영재 1968년 01월 01일 680101-*******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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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이은혜' 1990년 09월 20일 900920-******* 여

자녀 '이은주' 1992년 12월 10일 921210-******* 여


사실이 아닌 소설 속 내용입니다.


PART2. 죽이고 싶은 가족관계 증명서

'박이숙'의 가족관계증명서


나의 엄마, '박이숙'은 누구보다 밝은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항상 우리 집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엄마가 이렇게 밝은 것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보살핌과 아빠의 노력이 숨어 있다.


1970년대, 엄마는 아직 어린 소녀였다. 할머니가 말하길, 엄마는 항상 약한 체질이었다고 한다. 호흡기 질환을 앓았던 엄마는 작은 추위에도 쉽게 기침을 하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크게 걱정했던 사람은 바로 할머니였다. 그 당시 한국의 의료기술은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호흡기 질환과 같은 병에 대한 치료법도 제한적이었다. 할머니는 3살 때 천사가 된 아주 작은 소녀 첫째딸 로 인해 세 번째 딸인 엄마를 항상 걱정하며 그때 처럼 또 다시 엄마를 잃게 될까 전전긍긍 하셨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 때문 인지 엄마는 밝고 씩씩하게 자라왔다. 


그렇게 할머니의 보호아래 학창시절을 보내던 말괄량이 같았던 그녀는 시골 세상 밖의 흥미진진한 세상이 궁금했다. 그녀는 동네의 다른 아이들이 하는 아르바이트에도 관심을 가졌다. 할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시골 밖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힘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어느 날, 그녀는 결심했다. "할머니 몰래 아르바이트를 해보자!" 그녀는 시골을 나와 도시의 작은 재봉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공장에서의 첫날, 그녀는 서툴고 떨렸다. 그리고 호흡기 질환자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더욱 재봉 공장에서의 일이 생각보다 고되고 힘이 들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다른친구들과 재봉공장에서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래서 이것 저것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 오다가 한 가게에서 남편 '영재'를 만났다. '영재'는 우연히 이숙의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녀의 외모에 끌려 한눈에 반하게 되었다. '영재'는 이숙에게 세상의 넓은 시야와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주었고, '이숙'은 '영재'에게 따뜻한 품과 진심으로 듣는 귀를 선물해주었다.


재봉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친구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곳을 나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악세사리 가게에서 악세사리를 판매하고 정리하는 일, 그리고 꽃가게에서 꽃을 팔며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작은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영재'를 만났다. '영재'는 그 가게의 단골이었고, 젊은 나이에 매일 군복을 입고 책을 사갔다. 그녀는 매일 책을 읽는 '영재'의 모습이 신기하고 궁금 했다. 그리고 반대로 '영재'는 첫 눈에 '이숙' 예쁘고 밝은 미소의 얼굴에 반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 손님과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나 다양한 문화와 여행 경험을 대화해 가며 연애를 하게 되었고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따뜻한 마음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선물해주었다. 그녀의 순박하고 따뜻한 성격은 영재의 마음 속에 깊게 자리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배경과 삶의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둘 사이의 관계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둘 사이의 연애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어느 날, 영재는 이숙에게 큰 결심을 내비쳤다. 그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반짝이는 반지를 내밀며 결혼을 제안했다. 이숙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할머니의 그 투명한 눈빛 뒤에는 엄마를 걱정하는 깊은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할머니는 늘 우리 집안의 큰 나무처럼 모든 가족을 감싸안아 주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결혼 소식을 듣고 나서도 처음에는 단호하게 반대하셨다.


사위로 받아들이기
너무 싫었던 아이


할머니의 가장 큰 우려는 엄마의 약한 체질 때문이었다. 그 약한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셨다. 물론, 사랑하는 아빠와의 삶을 누리게 되는 엄마의 행복도 소중하게 여기셨지만, 그것보다 먼저 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걱정이 훨씬 컸다.


하지만, 아빠는 그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원했다. 그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능력과 미래에 대한 계획을 솔직하게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엄마의 건강을 우선시하며 결혼을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서 결국 엄마는 결혼식은 못 올리고 아빠와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는 날까지 아빠를 만나 보지 않으셨고 그때는 아빠가 너무 미웠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걱정은 굉장히 진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당시 군인이었던 '영재'는 자주 부임을 옮겨야 했고, 군사훈련 및 장기적인 외박의 가능성도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약한 체질의 '이숙'이 힘들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또한 군인의 직업 특성상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쉬웠다. 이 모든 이유로 할머니는 결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런 할머니 앞에서 영재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보였다. 그는 할머니에게 진정한 사랑과 인생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어머님, 어머님을 위해, 그리고 저희 둘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할머니에게 단호한 눈빛으로 위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도 처음에는 여전히 불안해했다. 그래서 엄마'박이숙'이 자식들을 낳기 전 까지 할머니는 우리 가족들을 한번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할머니는 "만약 엄마가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면, 엄마는 아마 이세상에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조용하고 고요한 지지와 사랑을 표현 하신다.


내가 어렸을 때, 7살부터 9살 사이에도 엄마의 기억은 나에게 아련했다. 그때의 엄마는 병원 침대에서 힘겹게 호흡하며 치료를 받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해외에서 신기술과 치료제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알아보고, 필요한 자금도 마련했다. 그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엄마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빠의 노력이 없었다면 엄마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신다.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에 기록된 자식들 중에서 엄마는 가장 돋보인다. 항상 웃음이 넘치고, 그 웃음 속에서 풍겨나오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엄마의 밝은 모습 뒤에는 할머니와 아빠의 무한한 사랑과 지지가 있었다.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아빠의 끝없는 헌신이 합쳐져, 지금의 엄마를 만들어 내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쓰러진 이후, 엄마와 아빠는 병원에서 그녀를 돌봐주고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 자식들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사실은 상처로 다가왔다. 특히 엄마는 그 상황에서 아빠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엄마는 처음에는 할머니가 결혼을 반대하셨을 때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아빠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아빠는 약속을 꼭 지키려고 했다. 결혼 전 할머니가 엄마에게 심하게 반대하셨을 때, 아빠는 할머니에게 "어머님, 꼭 지켜봐 주세요. 남아있는 자식이 누구고 제일 잘한 사위가 누구였는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큰삼촌 '박일섭'이 연락을 피하고 도망갔을 때, 아빠는 엄마에게 할머니를 모시자고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 엄마는 미안함과 함께 그 결정을 쉽게 허락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가 쓰러지시고 난 후 2달 동안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 자식들의 행동으로 엄마는 할머니 모시는 것을 쉽게 결정 짓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것이 아니 였는데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 자식들의 부재로 모든 병원비를 부담한 아빠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엄마 '박이숙' 그녀도 건강이 좋지 않아 대부분 할머니를 케어 해 드려야 하는 것은 딸들 이라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요양원에 모실 비용도 없어 우리도 할머니를 버리지 않는 이상 모실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이상 나와 아빠는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 했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것이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릴적 할머니의 모습만을 떠올리며 함께 사는 것이 왜 그리 고민될 일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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