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골을 때렸고 남자는 골때렸다
로마의 8월은 골을 때린다.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살은 두피를 뚫고 들어와 뇌까지 쑤셔댄다. 그 아래 십 분만 서 있어도 아찔해진다. 2009년 8월 대낮의 로마에서, 두 시간 넘게 연신 떠들던 프랑스 남자는 무너진 돌기둥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안경을 찾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세 시간째 서 있었다. 햇살은 골을 때렸고, 남자는 골때렸다.
로마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맞는 여름방학이었다. 이전 언어학교에서 만난 에두아르에게 전화가 왔다. 로마에 여행 왔다고 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싶었지만 예의상 반가운 척했다.
스페인 광장에 있는 바르카차 분수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일 년 전에 만났던 에두아르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알아봐야 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멀리서 책이 잔뜩 든 비닐봉지를 들고 열심히 걸어오는 백인 남자가 보였다. 에두아르인 게 분명했다. 언어학교에서 처음 본 날도 그는 책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등장했었다. 언어학교 친구들은 에두아르를 ‘프랑스에서 온 비닐봉다리’라고 부르곤 했다.
이미 로마 현지인이었던 나는 관광객인 그가 가고 싶다는 곳에 동행하기로 했다. 에두아르가 택한 로마 여행의 첫 코스는 고대 로마의 중심지 ‘포로 로마노’였다.
“설마, 아직 안 가봤어?”
로마에 처음 온 것도 아닌 에두아르가 포로 로마노에 가고 싶다는 게 좀 이상했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를 찾는 모든 관광객이 반드시 거치는 곳이다.
“가봤지, 아주 여러 번. 그런데 그곳은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이야.”
햇살이 작열하는 한여름 대낮에는 특히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그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포로 로마노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에두아르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라틴어로 외쳤다.
뭐라는 건지 모르지만 왠지 멋있어 보였다. 모든 말이 못 알아들을 땐 그게 뭔소리든 멋있게 느껴지는 법이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내려와 포로 로마노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갑자기 연극 무대에 올라간 배우처럼 외쳤다.
영어까지 못 알아들으면 쪽팔릴 것 같았다. 난처했다. 에두아르는 계속해서 연극배우처럼 문장을 읊었다.
아,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대사구나.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걸 몹시 티내고 싶었다. “브루투스, 너마저도?”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대사를 라틴어로 읊었다. 나의 무식함을 감추기 위한 수작이었다. 에두아르는 신이 났다. 곧바로 카이사르에 대한 끝없는 장광설이 펼쳐졌다.
눈치가 상당히 없는 에두아르도 내가 썩 내켜 하지 않는 걸 알아챈 듯했다. 그는 두 시간째 이어지던 역사 강의를 멈추며 말했다.
“눈을 감고 상상해봐. 예전 이곳에서의 함성을.”
그가 시키는 대로 나는 눈을 감고 상상했다.
우와~ 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의 마차 소리와 그를 환영하는 로마인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 옛날 ‘포룸 로마눔’의 개선식에 참여해 로마인들과 함께 함성을 질렀다. 이상했다. 심장이 뛰었다. 이전에도 포로 로마노에 여러 차례 가봤지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에두아르에게 들은 역사 이야기들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
그때까지 나는 포로 로마노를 눈으로만 봐왔다. 단 몇 줄의 문장으로 그곳을 설명하는 가이드북을 생각 없이 들여다본 적은 있지만,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여기 어디선가 카틸리나는 음흉한 눈빛으로 음모를 꾸몄을 테고, 키케로는 그런 그를 도끼눈을 뜨고 째려봤겠지.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도 이곳을 활보했겠지? 그런 곳에 내가 지금 서 있는 것이다! 에두아르가 여러 번 가봤을 그곳에 왜 다시 가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역사속의 사건과 인물을 바로 그 현장에서 상상해보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몰랐던 나는 그동안 놓쳤을 수많은 감동이 아까워 억울하기까지 했다.
역사는 가장 극적인 드라마다. 결론을 이미 알고 있는 드라마지만 전혀 싱겁지 않다. 결론을 절대 고칠 수 없는 실화이기 때문이다. 역사란 가장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해피엔딩은 ‘그땐 그랬군’ 하면서 흐뭇해진다. 새드엔딩이라 해도 크게 속상하지 않다.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마무리되었으니까. 인류의 지나간 이야기, 역사에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를 때는 역사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모두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진즉에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면 학창시절 역사 점수가 그따위는 아니었을 텐데.
* 이 글은 <여행선언문>의 일부 글입니다.
'한국의 빌 브라이슨' 이주영이
'프랑스 책벌레' 라틴어 선생과 함께 한 10년간의 여행,
여행 과로사 직전에 외친 '여행선언문'
이주영의 여행인문 에세이 《여행선언문》이 2022년 4월 6일 출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