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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아 Apr 16. 2023

대책없음

어린시절 내가 여섯 번의 전학을 군소리없이 버틴 건 우리집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 희망의 기준을 교회의 크기, 신도의 수, 사택의 크기.. 이런걸로 생각했다는 걸 이번에야 알게됐다. 이제 우리 가족은 그런 교회 조건에 종속된 희망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게됐다. 엄마와 아빠가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성인이고, 부모의 집을 떠났고, 스스로 선택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런 희망을 품고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아빠 목회의 규모나 영향력이 더 커지리라는, 그리고 그게 내 눈에 보일 거라는 헛된 희망.


여섯번째 전학이 결정되던 날, 나는 처음으로 반항했다. 겨우 마음을 나눈 친구들이 곁에 있었고 나는 그들과 또 멀어져야 했다. 포항 적응은 필리핀 적응만큼 어려웠다. 그런 나를 위로했던 건 엄청나게 큰 교회건물의 규모, 처음으로 화장실 두개 있는 집, 지금까지 가져본 방 중에 제일 넓은 방, 큰 강대상에서 양복입고 말씀 전하는 아빠의 모습. 난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나님이 내 슬픔과 맞바꾸신 것들이라 생각했다.


최근 아빠의 목회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 다양한 일들을 보며 들었던 첫번째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배신감. 하나님 이때는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개입해주셨잖아요, 아빠 목회에 있어서 이런 응답들을 주셨잖아요, 근데 지금은 왜 아닌가요? 책임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도 모르게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내가 이런 기도에 머물러 있을 때 엄마아빠는 교회라는 공간을 떠나 목회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왜 더 나은 환경의 목회 자리를 왜 주지 않냐며, 하나님에게 책임전가하는데 빠져있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고의 흐름이었다. 교회를 떠날거라는 엄마아빠의 말에, 하나님이 그러래? 계획은 있어? 부끄럽지만 이게 내 첫 반응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대책이 없고 이번에도 역시나 대책이 없다. (그래서 나라도 대책을 미리미리 마련해놓는 어른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도 그들과 똑같아지고 있다.) 엄마아빠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행동할 뿐이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 어차피 삶이란 대책이 없고, 당신들은 그 대책없음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걸. 어쩌면 나만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새 아빠의 마지막 출근 날이 정해졌고 그게 내일로 다가왔다. 그래도 하나님이 뭔가를 준비해놓고 계시지 않을까? 그런 마음도 있었는데, 어느덧 내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로 증명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그 세계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걸, 부끄럽지만 나는 이번에야 조금 깨달은 것 같다. 교회의 크기, 신도의 수, 교회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그 지역에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그간 그런 식으로 교회의 명성에 기대어있는 사람들을 비판해왔는데.. 어쩌면 나는 우리아빠는 그런 목사가 되었으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목사의 딸로 태어나는 동의하고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목회하는 아빠의 마음을 100% 이해할 없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지 않는 하나님이 밉고, 좋은 것은 커녕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음 스텝을 결정한 아빠의 선택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용기를 얻는다. 지금까지 손에 잡히는 것 그 무엇도 모으거나 마련해놓지 않고도, 불쑥 새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부모를 보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저런 선택이 가능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게 나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고, 앞으로 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리고 교회는 다니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되어야 하는 그 자체라 했던 그 부담스러웠던 설교의 의미가 나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교회의 중심되신 예수님께 맡겨드리고 싶다고, 그런 용기를 달라는 기도의 내용으로도 바뀌고 있다.


하나님이 그러래? 계획은 있어? 라는 내 물음에 엄마는 그저 웃을 뿐이었지만, 나는 나만의 답을 찾았다. 하나님은 이걸 하라 저걸 하라고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고, 그게 하나님과 가까워보이는 목사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엄마아빠는 계획을 세워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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