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은 의지
대학 때 친구랑 벤치에 앉아서 매주 '사랑'에 대해 토론했다. 2학년 때 벨 훅스 <All about love>로 강의하는 교수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만 듣고 나면 누구에게라도 열변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주요 강의 주제는 사랑과 섹스, 진화심리학의 비판과 페미니즘이었다. 그 수업은 나의 눈과 귀를 열고 생각을 전환시켰다. 그래서 우리 토론의 결과는, 그리고 수업의 결론은, 사랑은 의지라는 거였다. 사랑이 감정으로 촉발될 수 있지만 결국 남는 건 의지라고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난 그 교수의 수업을 잘 들었다. 난 지금까지 늘 차이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그 말을 하니 분위기가 좀 싸해지던데, 아마 듣는 사람들이 이걸 자학개그라 생각했던 것 같다. 오히려 반대의 의미였다. 끝까지 사랑할 자신이 있다는 자랑이었다. 감정이 끝난다 해도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동력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의지를 포함하니까. 난 거기까지도 사랑이라 믿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아마도 그때 친구랑 토론을 하고나서부터 인 것 같다.
2. 다양한 형태의 사랑
그간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경험했다. 그중엔 로맨스보다 로맨스 아닌 것이 더 많다. 그 경험들을 통해 나는 내가 충분히 사랑받는 사람임을 알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주는데 집중하고 싶다. 당분간은 내가 준만큼 되돌려받지 않아도 견딜 수 있을거 같다.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처럼 말이다. 상대의 애정도를 구태어 재지 않고, 상대방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에 흔들리지 않고, 그냥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며 나의 길을 가는 것. 그게 무슨 비효율적인 사랑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런 사랑이야말로 나를 키울 거라고 확신한다.
3. 사랑은 구원이 아니다
요며칠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에 집중하고 있어서, 아주 크게 착각했던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드라마는 현실과 다르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원하고 바라온 로맨스는 다분히 k-드라마의 문법에 입각한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다. 지금까지의 로코 공식은 이렇다. 여남 주인공에 결핍을 심어놓고 그것 때문에 사랑을 할 수 없게 만든 다음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채우도록 (구원하도록) 한다. 어디에도 없을 단 한 사람, 그걸 찾는게 한국 로코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나보다. 얼마전 우연히 <사랑의 조건>이라는 책을 읽었고 그 책의 한 대목이 나를 깨웠다.
" 타자는 내 상처, 내가 가진 자기애, 내 개성화를 책임질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
나도 모르게 완전한 사랑이란 서로를 구원하고 완전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족한 나와 부족한 네가 만나 서로를 채우는게 아니라, 부족한 나와 부족한 네가 만나 영원히 부족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