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a short story)
미나 엄마와 이혼하고 나서 딸 미나를 주말에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건 그녀의 배려였다. 나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미나였지만 아리잠직한 딸을 만나는 날은 하나의 기쁨이자 또 다른 괴로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혜정이는 내가 국어 강사로 일하는 애니원 학원의 직장동료였다. 그녀는 중학 수학을 가르쳤다. 요즘은 이혼이 그리 큰 흠도 아니라지만 우리 부모님은 이혼녀인 혜정이와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셨다. 혜정이는 전남편과의 이혼 판결이 있던 날, 학원 회식 자리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거지 같은 새끼, 구역질 나는 면상을 이제 안 봐도 되니 속이다 후련해."
나는 어린 미나를 위해서라도 재혼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오늘 이혼 판결받고 온 사람에게 할 소린 아닌 거 같은데."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리는 그녀의 옆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녀는 맨손으로 뼈다귀 전골냄비에서 뼈다귀 하나를 집어 들더니 등뼈를 분리해 가며 게걸스럽게 먹었다. 등뼈에 남겨진 골수가 전남편이라도 되는 양 쪽쪽 빨아먹었다. 그러고는 옆에서 소주를 따라줄 새도 없이 연거푸 혼자서 술잔을 비워나갔다. 남자의 손길이 자신의 근처에 오는 것만으로도 싫은 눈치였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다시는 결혼할 일은 없을 거라며 호언장담하던 혜정이와 모태 솔로였던 내가 나중에 결혼한다고 했을 때 학원 동료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 말이 거짓이라는데 내 집과 자동차 그리고 일 년 치 연봉을 걸겠어."
"비싼 밥 먹고 무슨 귀신 신 나락 까먹는 소리래."
나는 부모님 집에서 나와 혜정이와 미나가 살던 아파트에 숟가락만 하나 들고 들어가 살게 되었다.
혜정이와 결혼 후 제일 마음에 걸렸던 사람이 미나였다.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인 미나를 불러 앉혀 놓고 나를 아빠라고 부르라고 타일렀다. 미나는 꾹 다문 입술을 하고 엄마의 화를 돋웠다. 내가 미나라고 해도 엄마가 좋아서 결혼한 남자에게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싶진 않을 것 같았다. 미나 엄마는 제 아빠를 닮아서 아무 때나 고집을 내세운다고 아이를 혼냈지만, 억지로 아빠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는 미나에게 있어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사람이 자신과 같은 층 버튼을 누르고서야, 마지못해 눈인사하게 되는 옆집 아저씨 같은 존재였다.
나는 광명에서 학원강사로 취업하면서 주식을 시작했다. 소신에 따른 투자보다는 카더라통신에 올라타는 경우가 많았다. 사기만 하면 오를 줄 알았던 주식은 내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신고가로 날아올랐다. 오죽했으면 고교 동창 시혁이란 녀석은 술자리에서 이렇게 나를 놀려 먹곤 했다.
"야, 세상에 주식처럼 쉬운 게 없다. 동준이 하고 반대로만 하면 돼."
혜정이 부모님을 찾아뵙고 처음 인사드린 날, 그녀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동준 씨, 나랑 결혼할 생각이면 이거 한 가지만 약속해 줘."
나는 얼굴에서 평소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할게."
"동준 씨가 할 수 있는 거야."
그녀는 학원에서 늘 쾌활한 성격이었기 지금 이런 진지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나 몰래 주식에 투자하기 없기."
그녀가 전남편과 이혼하게 된 이유도 남편이 선물과 코인으로 6억을 날려 먹은 게 결정적인 이유라고 했다. 심지어 친정엄마가 미나가 태어나던 해부터 부어온 삼천만 원이 든 예금통장까지 몰래 해지하고 그 돈으로 선물에 투자한 이유도 포함됐다. 그러니 그녀가 주식이란 말만 들어도 기겁할만했다. 당시 나는 지루한 물타기 끝에 투자금 대부분을 날리고 빈털터리가 된 상태였다.
"나는 주식의 '주'자만 들어도 이가 갈려, 이젠 발 뺐어."
나는 그 말로 그녀에게 하려던 프러포즈를 대신했다.
여의도에서 학원강사로 일하는 호식이는 주식 관련 리딩방과 유튜브 채널 'Hosic's Alpha'를 운영하면서 투자자에게 족집게 같은 투자 정보를 제공해 주며 돈을 주체 못 할 정도로 벌어서 파이어족이 됐다. 게다가 인천 송도에 분양받은 오피스텔들을 피만 붙여서 되파는 식으로 수억을 챙겨서 벤틀리를 몰고 다닌다는 소문이 대학 동창들 사이에 돌았다. 그가 동창 모임에 나오는 날에는 그에게 정보를 얻을까 해서 평소보다 많은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주식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호식이가 밥 한번 먹자고 연락해 왔을 때 썩 내키진 않았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은 자기 돈 써가며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인데 내가 뭐라고 그를 피하나 싶었다.
약속 장소인 혼 오마카세점은 여의도 중심 상권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호식이나 나나 흙수저로 대학생 때 형편이 비슷했는데, 지금은 그와 나 사이에 꽤 넓은 크레바스가 놓여 있었다. 호식이는 오늘은 자기가 낼 거니까 맘 편하게 먹으라고 사람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몇 번이고 원한다면 자신이 근무하는 학원 원장에게,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며, 나를 적극 추천해 줄 거라고 말했다. 기대하지도 않은 호식이의 호의에 나는 속으로 솔깃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지금 다니는 광명 학원도 나쁘지 않아. 우리 집이랑도 가깝고."
"동준아, 사람은 만족하는 그 순간부터 도태되기 시작하는 거야. 시혁이 우리 리딩방에 가입하고 돈 많이 벌었잖아."
"나, 주식은 그만뒀어. 늘 상투만 잡다 손해 봐서 손 털고 나왔지."
호식이는 그럴 줄 알았다며 호탕하게 웃어댔다.
"그럼, 주식 투자 정보는 필요 없겠네. 다른 대학 동기들은 매일 전화에 문자, 카톡까지 난리다. 다들 투자 정보 좀 달라고 아우성이야. 내가 증권맨도 아닌데, 나한테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귀찮아죽겠어 아주."
그 말을 끝으로 호식이는 도쿠리에 들은 술을 자신의 잔에 다 털어 넣었다. 그날 밤 식사를 마치고 카운터로 걸어 나올 때 혼 오마카세집 계산서는 내 손에 들려있었다. 술에 취한 그는 이제 세상이 근로소득만으로 살긴 힘든 세상이라고 했다. 내가 잡아준 택시를 타면서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동준아, 잘 들어. 너, 준비된 자만이 굴러들어 온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 자, 내 말 따라 해 봐. 준비된 자만이.... 뭐라고?"
"굴러들어 온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 나는 허공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큰 소리로 몇 번이고 그의 말을 따라 했다. 택시 기사는 언제 출발해야 하는지 몰라 택시 안에 룸미러로 호식이와 내 얼굴을 신경질적으로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니들한테는 기회가 굴러들진 않겠다."
다음 날, 단골 거래 은행에 들어설 때만 해도 나는 마이너스 통장 대출금리가 얼마인 줄만 알아보려고 했다.
'다른 자산은 폭등하는데 저축만 해서는 벼락거지 되는 건 순식간이다.'라는 호식이의 기름진 목소리가 술 취해 번들거리는 얼굴과 함께 떠올랐다.
'고등학교 성적은 내가 호식이보다 훨씬 나았지.' 그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면 더 똑똑한 내가 못 할 법도 없었다.
그날 아내 몰래 오천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엄마에게 사정해 삼천만 원을 빌리고 은행에 들어놓은 이천만 원 예금도 해지했다. 드디어 일억 원의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받은 삼천만 원은 엄마의 목숨값이었다. 엄마는 위암 2기 진단받아 수술하셨고 십여 년 전에 들어놨던 생명보험에서 암 진단비 삼천만 원을 받았던 것이었다. 엄마의 암 진단비를 주식에 투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누나는 내게 전화로 제정신이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손댈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엄마 목숨값 같은 그 돈을 가로채냐는 것이었다.
"잠깐 쓰고 돌려줄 거라고 했잖아. 엄마는 괜찮다는데, 왜 누나가 난리야 정말."
이렇게 나도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다 돌려줄 거라고, 이자까지 듬뿍 얹어서. 어디 그때도 제정신이냐고 소리 질러 보시지.'
호식이의 리딩방에 가입하고 추천 종목에 1억 원을 투자한 게 2021년 11월 초였다.
2022년 1월, 호식이가 운영하는 리딩방에서 찍어준 폭등주는 금융감독원에서 시세조종, 허위 공시, 미공개정보 이용 등의 혐의가 확인돼 검찰 수사로 넘어가면서 투자자 보호를 위해 거래가 일시 중단되었다. 폭등이 아니라 폭파된 거나 다름없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자산이며 커리어를 자랑하는 사람은 걸러야 한다는 평소 혜정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미나 엄마 몰래 다시 주식에 손을 댄 것도 문제였지만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한 상황까지 되어버렸다. 아내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거래 중지된 주식거래가 다시 개시되기만 하면 문제 될 게 없다고 그녀를 열심히 설득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녀는 이혼 얘길 꺼낸 사람치고는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아마도 애초에 나란 남자를 믿어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한 모양이었다.
"이번에 용서하고 넘어간다 해도 당신은 또 다른 일로 나를 실망하게 할 사람이야. 우리 그만하자."
혜정이의 말투에서 따스한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현재 남아있는 단어라고는 '이혼'이 유일해 보였다.
이혼하고 김포에 있는 오피스텔로 이사하고 처음 맞이한 주말엔 솔로의 기쁨을 만끽하며 홀가분한 첫 주말을 보냈다. 친구들이 불러주는 술자리에도 빼지 않고 나갔다. 나의 이혼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힘내라고 요새 이혼은 흠도 아니라며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를 위로해 주던 그들을 뒤로하고 혼자 사는 오피스텔로 돌아와 소파에 앉으니, 집에 홀로 남겨져 있던 외로움이 조용히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퇴근하고 불 꺼진 오피스텔에 혼자 들어가는 것은 사실 즐겁지 않았다. 이혼하기 전에 아내의 눈치를 보며 친구들과 가뭄에 콩 나듯 가졌던 설레는 술 약속과 가끔은 상갓집에 다녀온다는 핑계로 모텔에서 날밤을 새우며 친구들과 훌라를 쳤던 재미는 언제라도 돌아가면 날 반겨줄 가정이 있기에 가능했었다. 학원 강의를 마치고 시간이 남아돌자, 내게 재미를 제공했던 것들에서 하루아침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축구, 등산, 바다낚시도 재미가 없어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도대체가 설명이 안 됐다. 인간의 내면엔 하지 말라는 압박이 있어야만 흥분과 쾌감을 느끼는 걸까? 나는 알다가도 모를 이 상황을 직장동료 태호와 술자리에서 말해봤지만, 돌아온 건 무심한 대답이었다.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맛봤으니 이제 일상이 재미가 없지."
나는 평소 제일 좋아하던 음식인 아귀찜을 눈앞에 두고도 몇 점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광명에서 지내는 초등학교 5학년인 미나를 토요일 아침 9시에 데려와서 주말 동안 돌보고 월요일 아침 학교로 데려다주는 일까지가 나의 몫이었다. 물론 혜정이와 이혼 후에 나는 학원을 김포로 옮겼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원 수업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미나와 학원으로 출근했다. 미나 엄마는 그걸 못마땅해했다. 주말에라도 수업을 조정해서 미나와 학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주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양육비를 보내줘야 해서 주말까지 학원에서 근무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새로 사귀는 남자가 생겼다는 사실은 미나가 함께 찍은 사진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문화센터 뜨개질 모임에서 알게 된 남자라는데, 생긴 모양새가 딱 소도둑놈 같았다. 몸에 털은 어찌나 많은지 손등에서 시작해서 팔까지 이어진 북슬북슬한 털이며 새까만 턱수염은 미나가 검은색 크레용을 마구잡이로 칠해놓은 것처럼 수북하고 까맸다. 내가 유달리 심사가 꼬여서 거짓으로 보탠 말은 하나도 없다. 사람의 첫인상을 보면, 그간 살아온 이력이 얼굴에 녹아있기 마련인데, 이 남자는 뜨개질하고는 영 거리가 먼 남자처럼 보였다. 배우라는 뜨개질은 안 배우고 왜 혜정이의 코(loop)를 엮었느냐 말이다.
"미나야, 요즘 엄마가 만난다는 아저씨 어때? 너한테 잘해줘?"
나는 미나의 입에서 혜정이의 새 남자 친구의 단점을 구구절절 듣고 싶었다.
"응, 잘해줘. 무뚝뚝한데 겉바속촉이야." 미나는 정확히 그렇게 말하고 윗니 양쪽 송곳니가 드러나게 웃어 보였다.
"뭐, 무뚝뚝한데 겉바속촉이라고?"
'식인종도 아니고 사람한테 겉바속촉이라니.'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치킨이나 고기의 구운 정도를 흔히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미나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주 아저씨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던데."
"그 남자이름이 기주야?"
나는 그제야 겉바속촉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
"아빠도 약간 겉바속촉느낌이 나지?"
미나는 내 질문에 대답할 기분이 아닌지 스케이트보드를 안은 채 조수석 창문에 턱을 괴고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풍경에 마음을 쏟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제방을 따라 심어있는 벚나무에서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노모를 휠체어에 태우고 나들이를 나선 가족도 보였고, 꽃잎처럼 화사한 커플룩을 맞춰 입고 데이트하는 커플도 눈에 띄었다. 그 와중에 꼴불견은 지나가는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길 한가운데에서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다투고 있는 중년의 부부였다. 갓길에 주차하려는 상춘객들의 차가 뒤엉켜 도로 일대는 정체가 심했다. 부옇게 차 안을 맴도는 먼지와 따가운 봄 햇살에 짜증이 날 때 즈음, 미나가 차 안의 정적을 밀어내며 내게 물었다.
"아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응, 아무것도 아냐."
미나는 내가 어린이날 선물로 사준 스케이트보드 바퀴를 손으로 굴렸다
"아빠는 겉촉속촉이야."
나는 미나의 말을 듣고, 차 내부에 정적이 흐르는 동안, 미나가 나를 위해 할 말을 떠올리고 생각하고 골랐을 그 짧은 시간을 기뻐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섹시 푸드'란 단어는 요새 젊은 사람들이 보통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쓰는 용어라고 한다. 기주라는 남자가 겉바속촉이든 내가 겉촉속촉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미나의 아빠니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빠, 우리도 내려서 사진 찍고 갈까?"
미나는 벚꽃 아래를 걷는 사람들과 달리 그늘진 내 얼굴이 안쓰러웠던 걸까. 이미 천변에는 많은 사람이 북적대며 토요일 늦은 오후의 햇살과 사운대는 바람과 벚꽃 향기를 즐기고 있었다. 거기에 나와 미나 하나 더 보탠다고 도로정체가 크게 나아질 거 같진 않았다.
'토요일 저녁은 아무래도 피자를 배달시켜야겠네.'
나는 뒷좌석에서 미나가 두고 내린 베이지 색깔의 둥근 챙이 달린 버킷 모자를 챙겼다. 그 모자는 내가 작년 봄에 미나에게 사준 생일 선물이었다.
주말에 미나 엄마와 남자 친구가 무엇을 하며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는지 관심도 없지만, 아니 정확히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셋이서 다녀온 호캉스나 강원도 홍천 캠핑장 그리고 가장 최근에 설 연휴에 다녀온 남해안 일주 얘길 듣다 보니 나도 함께 데리고 다녔으면 좋았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정신 나간 여자가 이혼한 전남편과 현재 한창 연애 중인 남자 친구와 함께 여행 다니고 싶을까. 혜정이와 신혼 초만 해도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놀러 다니질 못했는데. 그 뒤로 뭐가 달라진 걸까? 원래, 내가 머물던 그 자리에 기주라는 남자만 새로 들어왔을 뿐인데, 빈틈없이 잘 맞춰진 레고블록으로 만들어진 근사한 주택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 자리였는데,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노라고 뒷사람에게 말해놨는데, 돌아와 보니 자리를 봐주겠다던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처럼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긴 줄의 맨 끝에 가서 섰다. 언제라도 내 앞에서 입구 컷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미나엄마는 사자 무리에서 수컷 사자의 역할은 다른 무리의 수컷 사자가 영역을 침범했을 때 그 사자와 장렬하게 싸우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었다. 나는 싸움에서 이기면 무리에서 수컷의 지위를 지키는 거고, 혹시라도 패한다면 그 무리에서 쫓겨나는 수사자의 운명과도 같았다. 나는 결혼 전 약속을 저버리고 주식 투자로 곤경에 처한 병든 수사자 신세가 되었다. 경제적인 외부 위협에 대응하지 못한 나를 축출한 암사자의 우두머리인 아내는 이제 기주라는 수사자를 선택했다. 혜정이나 나 사이에 새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했다.
혜정이와 미나와 함께 보낸 2년의 세월은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쏟아져 내린 스콜처럼 내린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나는 벚꽃 엔딩을 들으며 미나를 태우고 혜정이가 사는 광명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해봤다. 하지만, 그녀는 집에 없을 것이었다. 그 기주 녀석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느라 집에 붙어 있을 리 만무했다. 이상한 건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혜정이의 성격을 그 기주라는 남자는 잘 버텨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주말이면 집안에 잠시라도 머무르길 싫어했다. 가까운 곳에 드라이브라도 갈라치면 계획적으로 꼼꼼하게 일정을 짜지 않았다고 타박을 놓았다. 그래서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내 기분을 망쳐놓고는 왜 혼자 삐져있냐고 말할 때는 할 말을 잊었다. 그녀 안에 두 명의 인격이 사는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이혼 사유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를 처음 안아주던 날, 나는 그녀가 내 품에서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풀고 '후'하고 한숨을 내쉴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고 싶었다. 불안한 맥박이 안정되고 심장박동 소리가 편안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그 파르르 떨리던 입술에 첫 입맞춤으로 우린 연애를 시작했었다.
일요일 저녁이 되자 봄비가 소낙비처럼 내려서 열어두었던 베란다 문을 급히 닫았다. 베란다 쪽으로 다가갔을 때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소파에 앉아 빨간색 담요를 둘러쓰고 <빨간 망토 소녀>를 읽던 미나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잠든 미나를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미나가 감기 걸렸다가는 혜정이가 또 '아빠가 돼서 애 감기나 걸리게 했어?', '애 주말이면 피곤해하니까 밤늦게까지 같이 영화 보지 말고 재우랬지.'라고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을 테니까. 미나가 잠든 사이 나는 저녁 식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식탁에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사 온 미나가 좋아하는 바나나 한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바나나는 주방세제로 한 개씩 깨끗이 씻어서 사각 스테인리스 채반에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콩나물을 무치고 냉동 해물 동그랑땡을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준비했다. 갓 지은 잡곡밥과 인터넷으로 주문한 김치를 잘라서 접시에 담았다. 미나는 시흥에 사는 누나가 해준 땅콩이 들어간 멸치볶음을 좋아했다. 누나에게 부탁해서 택배로 받은 견과류 멸치볶음도 식탁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 미나가 내게 알림장을 내밀었다. 미나의 교육은 혜정이가 전담해서 내가 알림장을 볼 일은 없었다. 미나가 내게 알림장을 건넨 건 처음이었다. 아빠로서 인정받은 기쁨도 잠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살짝 겁이 났다. 5학년 3반 알림장의 전달 사항 주제는 '과학의 달 4월에 과학탐구 프로젝트'였다. 제목은 ‘초파리의 한 살이 과정’이었고 생명과학(생물) 단원과 관련된 활동이었다.
초파리란 얘기만 들어도 주방에서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지, 귓가에 초파리들이 삼각편대를 이루며 윙윙거리며 대거리하듯 달려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알림장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곤충의 한 살이’ 단원에서 초파리를 채집하여 작은 병 속에 넣고 스펀지 등으로 입구를 막으면 곤충인 초파리를 대상으로 알, 애벌레, 번데기 그리고 성충의 한 살이 과정을 알아봄으로써 아동들에게 생명의 연속성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설정된 단원이다. 초파리의 채집과 관찰을 통해 초파리의 특징을 알고, 초파리의 한 살이를 배움으로써 탈피와 변태의 개념에 대하여 학습하며 나아가 다양한 곤충들의 한 살이를 알아본다.
초파리가 알을 낳고 알이 애벌레로 자라 다시 초파리가 되는 과정을 관찰하는 활동이었다. 초파리 사육병을 꾸며서 채집해야 하는데, 초파리 채집을 위한 준비물은 페트병, 바나나 껍질이나 포도 껍질 다량, 페트병의 높이 20cm로 잘라 포도 껍질을 바닥에 깔릴 정도로 넣고 입구 부분을 잘라 깔때기 모양으로 사육병 위에 올려 완성한다.
“아빠, 내가 초파리에 대해서 알려줄게.”
미나는 설거지하느라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나를 식탁 의자에 앉혔다. 그러고는 노트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초파리는 곤충에 속해. 동물계, 절지동물문, 곤충강, 쌍시목, 집파리과, 초파리 속이야. 초파리는 날개 두 개를 가진 작은 파리로, 곤충의 특징인 3쌍의 다리, 세 부분으로 나뉜 머리, 가슴, 배를 모두 갖고 있대."
“초파리도 나름대로 족보가 있네."
족보라는 생소한 단어에 미나는 관심을 보였다. 그러고는 내 방에 들어가 두꺼운 국어사전을 들고 나왔다. 내가 국어사전을 펼쳐놓은 모습을 몇 번 보고는 미나도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곤 했었다. 나는 휴대전화 검색이 편할 텐데도 그렇게 국어사전을 펼쳐보는 미나가 기특했다.
"응,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기록한 책이구나."
미나는 족보라는 말을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그런데 초파리는 어디서 그렇게 금방 날아오는 거야?
미나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악당이 나타나면 어느새 나타나 무찌르는 히어로처럼, 절대로 히어로는 될 수 없는 빌런에 가까운 존재지만, 음식물만 있으면 초파리는 언제나 그 주위를 날아다녔다. 나도 늘 그게 궁금했었다.
"아빠도 그게 늘 궁금했는데, 한번 인터넷 검색해 볼까?"
인터넷 검색창에 '초파리가 생기는 이유'라고 치자,
1. 음식물 쓰레기 및 과일 껍질,
2. 습기와 온도
3. 배수구와 하수구
4. 외부 유입
5. 화분 흙과 반려동물 사료 등이 원인이라고 검색됐다.
특히, 바나나, 포도 등 당도가 높은 과일은 초파리가 매우 좋아한다고 덧붙여 설명돼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 마시다 남은 코카콜라 1.5리터 페트병 윗부분 1/3을 가위로 자르고 나서 페트병 안에 미나가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바나나 껍질 2개를 챙겨 넣고 윗부분을 입구가 아래로 가게 뒤집어 꽂고 페트병 몸체와 윗부분의 틈은 테이프로 고정했다. 그리고 페트병을 싱크대 근처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밤이 늦도록, 미나와 내가 수시로 왔다 갔다 했지만, 초파리 트랩에 초파리는 보이지 않았다. 미나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잠들기 전까지 초파리 채집 트랩을 오가며 초파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아이도 뭐든지 완벽하다 싶게 준비되지 않으면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초파리 여러 마리가 잡혀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미나야."
"아빠, 나 졸려."
해리포터 영문판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을 읽다가 졸린다는 미나를 재우고 나서 거실과 주방을 몇 번 채집 트랩을 살피다가 넷플릭스를 보던 나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아침에 나는 일어나자마자 나는 초파리 생각이 번뜩 떠올라 소파에서 주방 싱크대로 달려갔다.
그런데 당연히 초파리 트랩 안에 있을 줄 알았던 초파리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기에 초파리가 가장 많이 꼬일 거 같은 장소인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1층으로 내려갔다. 새벽녘까지 비가 내렸는지 빌라 주변의 공터는 젖어있었다. 다행히 음식물 버리는 곳에는 초파리들이 분주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초파리가 앉아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가져가 대서 순간적으로 날아가는 녀석들을 손으로 잡아 비닐봉지에 넣었다. 비닐봉지 안에 있던 초파리들을 채집 트랩으로 옮기고 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나마 음식물 쓰레기통 근처에서 초파리들을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미나 엄마에게 한 소리 들을 일이 사라졌다. 월요일 아침, 나는 미나와 아침으로 샌드위치와 데운 우유를 먹고 빌라를 나섰다. 광명 대산초등학교 교문 앞에 도착하자, 초파리 트랩이 들어 있는 종이 가방을 미나 손에 들려 보냈다. 교문으로 들어서던 미나는 나를 향해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미나를 학교에 들여보내며 나는 오늘 하루는 일진이 좋을 것임을 직감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충만한 기분이었다. 아빠로서 미나에게 인정받았고 미나 엄마에게도 분명 잘했다는 칭찬 정도는 듣겠지 싶었다. 학원에 출근해서도 월요병 없는 힘찬 월요일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 시각은 빌라에 돌아와 밥 차려 먹을 기운도 없어서 막 라면을 끓여서 한 젓가락 입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응, 미나 엄마.”
아내의 전화에 나는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그녀에게 오랜만에 잘했다는 칭찬을 듣게 될 예정이었다.
“당신, 미나한테 오늘 아침에 뭘 들려서 보낸 줄 알아?”
“미나가 초파리 학교에 갖고 가야 한대서 챙겨서 보내줬는데 왜.”
아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나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뭐라고 한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초파리 수가 너무 적었구나.”
아내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 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잡아서 보내준 건 초파리가 아니라 그냥 아주 작은 파리였어. 미나 담임선생님이 미나에게 그랬대. 이건 그냥 작은 파린데 어쩌지. 미나가 애들 앞에서 얼마나 창피했겠어."
한숨으로 시작된 미나 엄마의 목소리는 어느새 한심하다는 듯 빈정거리는 말투로 바뀌어 있었다.
'별일 아니잖아. 내 딴엔 열심히 노력했는데… 돌아오는 건 불평불만뿐이네.'
순간 나는 핑하고 어지러운 현기증을 느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고 그게 화내며 따질 일이야. 미나한테는 내가 사과하고 잘 얘기할게.
"당신이 처음부터 제대로 일을 했어야 말이지. 당신을 믿은 내 잘못이지. 내가 누굴 탓하겠어."
인사도 없이 그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내에게는 전혀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본인은 그 시간에 애인이랑 근교로 놀러 가 시시덕거리며 즐겁게 지내고 돌아왔을 테니까. 하지만 미나에게는 미안했다.
우리 셋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었을 때, 나는 평일에는 사회인 축구를 하러 가느라 퇴근하기가 무섭게 축구장으로 가느라 바빴고, 주말에는 낚시와 등산동호회에 다니느라 바빴다. 모여서 연습만 하는 축구만으로 끝나면 다행이었지만 대회가 있는 기간에는 버스를 전세 내 원정경기를 떠나기도 했었다. 나는 그게 나의 숨통을 틔워주고 그렇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거라고 확신했었다. 돌아보면, 그 시간만큼 나는 미나에게 아빠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게 제일 내 마음을 후벼 팠다.
화요일 아침, 출근하려고 싱크대 옆을 지나치는데 먹다 남은 라면 냄비와 배달시켜서 술안주로 먹은 남은 족발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초파리가 날아다녔다.
"어제는 다들 단체로 어디 소풍이라도 다녀온 거니?"
나는 남은 족발과 라면 찌꺼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현관문을 나섰다. 음식물 쓰레기통이 놓여 있는 공터에 벚꽃이 한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