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보스

단편소설(short story)

by 임용철

피스는 남편 타치오와 함께 일요일 저녁을 먹으려고 식탁을 차려놓았다. 소파에서 책을 읽던 그녀는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다 옆집 부부가 다투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비몽사몽 깨어난 탓으로 여기가 어디고,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가늠할 수 없어 두리번거렸다. 옆집 205호 부부는 주말만 되면 싸웠다. 주말부부는 금실이 좋다는 말이 저 옆집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타치오는 만났다 하면 서로 으르렁대는 걸 보면 원진살이라도 끼었나 보다고 옆집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내에게 말했다.

"주말부부라서 그나마 덜 싸우는 걸지도 몰라." 피스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다.


피스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 벽시계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밤 8시가 됐는데도 남편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는 모양이었다. 식탁 아래에 앉아 있던 나는 긴 눈썹 수염 안테나로 타치오에게 닥쳐올 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텔레파시를 보내서 알려줄 수 있을 텐데.'

"보스(Voss)야~"

피스가 부르는 걸 보니 아마도 내게 하소연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여느 반려묘처럼 그녀의 호출을 못 들은 척 식탁 아래에서 다리를 올리고 배를 핥았다.

"보스야 이리 온."

그제야 나는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듯 어슬렁거리며 소파에 올라가 피스 옆에 앉았다. 이럴 때 그녀의 기분을 잘 맞춰줘야 로얄캐닌 노르웨이 숲 고양이 간식을 잘 받아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목 주변의 긴 털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시부모님 앞에서 전화하기 그러면 언제 도착할 거라고 문자라도 한 통 보내주지."

"냐아~" 나는 그녀 말에 동의했다. 그런 면에서 타치오는 피스를 배려하지 않았다.

"시댁에만 갔다 하면 함흥차사네."

타치오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효도는 각자 부모에게 셀프로 하는 걸로 하자."

그녀도 타치오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지만, 이렇게 연락도 없이 없을 때는 골을 정수리까지 냈다.


나는 이 집에 1년 전부터 한 식구가 되었다. 일 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집도 없이 7개월 동안 아파트 주변을 맴돌던 길고양이 신세로 전락했다. 고양이 나이로 3세, 사람 나이로 치면 28세 정도인 노르웨이숲고양이다. 타치오는 나를 집에 들이고 나서, 내가 노르웨이 숲 고양이란 사실도 이때 알았다, 내게 이 동네 고양이 중에서 두목이 돼보라며 보스(Boss)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덩치만 보면 보스라는 이름이 틀린 말도 아니지만, 실상 집 밖에는 강호의 은둔 고수가 넘쳐났다. 아담한 작은 체구에 이름까지 평화로운 피스는 내 이름으로 보스(Boss)가 아니라 인구가 1만 5,000명인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보스가(Voss) 어울린다고 말했다.

"얘는 노르웨이 숲 고양이잖아."

내겐 Boss나 Voss 라는 이름이 별반 다를 것도 없지만. 결국, 두 사람은 각자 편한 방식대로 날 부르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착하고 성실한 집사 운수와 함께할 때였다. 운수는 나를 럭키라고 불렀다. 그의 곁에는 늘 예쁜 여자 친구 해주가 있었다. 해주는 다 좋은데, 주변에 남사친들이 많았다. 운수가 해주와 사귀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부분이기도 했다. 해주는 모두 남사친이니까 남자 친구인 운수가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운수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자신 외에 모든 남자를 믿지 말라고 했다.

"겉으로는 모두 점잖은 척 예의를 차리지만, 그 속마음엔 한 가지 욕망밖에 없을걸."

"그래서 그 욕망이 뭔데?" 해주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때마다 운수의 속은 뒤집어졌다.

"너도 알잖아. 남자들이 원하는 건 섹스밖에 없다고." 운수는 흥분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물기 없이 대답했다.

"오빠 맘이 그런 건 아니고?"

운수는 말싸움에서 해주를 이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매번 해주의 말에 설득당해서 자기가 지나쳤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싸움은 끝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미안해', '사과할게.', '내가 잘못했어.' 이런 말들이 지속적으로 오가는 만남은 그 끝이 좋을 리 없었다.

해주와 다투는 날이 잦아지면서 운수는 화를 잘 내는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다 해주가 잠수함을 타고 그의 하늘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운수는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고 나서는 술이 떡이 돼서 들어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망치로 부숴버리고 나서는 한 달 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그러고는 어느 장맛비가 쉴 새 없이 내리던 여름날에 나를 집 근처 공원에 버리고 이사 가버렸다. 이웃집 고양이 식혜가 나를 안아주며 위로해 주었다.

"운이 조금 나빴을 뿐이야."

식혜는 아무 때나 다음에 또 놀러 오라고 말했지만, 그날 이후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길고양이로 지낸 지 7개월 차에 접어든 작년 2월은 삼한 사온이 아니라 5일 내내 추운 날씨가 지속됐다. 이런 날씨라면 자칫 얼어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무슨 수라도 내야 했다. 동네에는 길고양이들만 잡아서 왼쪽 귀를 댕강 잘라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 무시무시한 소문이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이란 걸 알게 된 건 한참 지나서였다.

'운수 나쁜 솔로 집사가 아니라 신혼부부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나는 간택할 집사 선정에 들어갔다. 둘이 헤어지더라도 나머지 한 명을 따라갈 수 있으니까 혼자 다니는 집사보다는 남녀가 함께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는 집사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집사 같은 집사에게 간택 받기 위해 필요한 101가지 방법>이란 책을 저술한 뚱보 길고양이 랜슬럿 경의 8주 과정의 세미나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는 101가지 방법을 이미 몸으로 체득해서 언제든지 간택될 수 있음에도, 실제 몇 번이고 간택당해 이곳을 떠났지만, 다시 친구들이 그리워 혹은 101가지 방법을 몰라 아직도 동네를 배회하는 후학들을 위해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박차고 나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강연 연자 랜슬럿 경의 말을 신뢰했다. 그가 알려준 몇 가지 간택 방법은 이랬다.

"일단 처음부터 집사를 졸졸 따라가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야. 우리 고양이들 사이에서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게 집사에게 적용해 보면 또 달라."

1번 방법은 관찰, 또 관찰. 집사를 관찰하는 방법에 관한 강연이었다. 1번으로 나왔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실행하기 어려운 방법임을 의미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 어딘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어서 탐정처럼 관찰해야 한다. 실제로 사전 정보수집도 없이 급한 마음에 집사를 졸졸 따라다니던 초심자들 얘길 들어보면, 생긴 것과는 다르게 성격이 포악해서 발로 걷어차거나 손에 든 우산이나 가방 같은 것으로 때릴 듯 위협하는 사람도 있거든."

길고양이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아이 중에는 우리가 다가갔을 때 무서워서 도망치거나 주변의 돌을 집어 들어 던진 아이도 있기 마련이었다. 인간은 원래 원시시대부터 몸에 소름이 돋고 털과 뼈까지 곤두설 정도로 무서운 순간을 맞닥뜨리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DNA에 각인된 게 분명했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2번 방법은 집사로 지목할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짧은 시간 내에 집중해서 맡아보라는 것이었다. 대개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의 경우 몸에 반려견이나 반려묘의 냄새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타치오와 피스 집에 갔을 때 다른 반려묘나 반려견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타치오의 부모님 집에 애완동물이 있는 게 분명했다.

3번 방법은 몸을 은폐하고 집사 후보자가 다른 길고양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는 예비 면접 같은 과정이었다. 다른 길고양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집사의 이력서와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3번 방법은 후보자가 우리를 얼마든지 속일 방법이기도 해서 주의를 요구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착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땐 심층 면접으로 인적이 드문 곳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은 남들이 보는 곳에서는 천사처럼 굴다가도 인적이 드문 곳이나 혼자 있는 장소에서는 사이코패스처럼 돌변해 고양이들을 때리거나 음식에 독을 타기도 하고 심심풀이로 사냥해서 해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4번 방법은 집사에게 다가가 마음을 전달하는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디테일에 관해서였다. 이것은 101가지 방법 중에서 랜슬럿 경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기라서, 그는 입이 가벼운 길고양이들에게는 발설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간택할 최종 집사 후보를 결정하면, 이제 집사를 따라가며 내는 울음소리 3단계를 연마해야 했다.

나는 그의 간절한 부탁으로 후배 길고양이들을 위해 '타치오 집사' 간택 과정의 실제 경험담을 들려주기로 했다.

"지금부터 이해하기 쉽게 집사 타치오를 처음 만나고 간택할 때까지 과정을 간단히 들려줄게. 타치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를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음식물쓰레기나 쓰레기 분리수거하러 그를 또 만나도 인사를 건네는 친절한 남자였어."

'안녕하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아저씨.'

"들리는 얘기로는 우리 친구들이 밥을 먹고 있으면 혹시 놀라서 달아날까 봐 길을 돌아가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는 정보도 수집했어."


2월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급강하하고 바람도 불어 체감기온은 그보다 훨씬 낮았던 날이었다. 지상 주차장에 그의 차가 나타나자 나는 타치오가 차에서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오늘이 바로 D-day였다.

"냐앙~"

짧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치오를 불러 세웠지만 바람 소리 때문인지 그는 나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급해진 나는 그와의 간격을 좁혀가며 조금 더 다가가 울었다.

"야옹~"

이번엔 높은 톤의 울음소리를 들려줬다. 그제야 타치오는 어디에서 고양이의 소리가 나는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랜슬럿 경이 알려준 4번 방법을 써먹어야 할 때가 됐다. 나는 길고 매력적인 꼬리를 치켜들고 그의 바짓가랑이에 머리를 비벼댔다.

"냐앙~ 냐앙~"

타치오에게 나를 좀 데려가달라고, 마냥 애원만 하지 않고, '나도 당신이 원하면 따라갈 의향이 있어요.'라는 눈빛으로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는 바짓가랑이에 머리를 비벼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장황하게 내게 설명해 준 적이 있었어."

운이 좋으면 한 번에 간택될 수 있어. 하지만 우리는 후일을 대비해야 해. 집사가 그날 밖에서 있던 여러 복잡한 일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 간택을 받아들일 마음에 여유가 없을 수도 있거든. 그때 우리가 머리를 비벼놓아야 다른 우리 동료 길고양이들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어. 이 집사는 내가 이미 찜해놓은 사람이라는 영역표시를 미리 해서 타묘의 손을 타지 않도록 미리 수를 써놓는 의미가 크다고 강조해 줬지. 그날 밤에 어떻게 되었느냐고? 말해 뭘 해. 당연히 타치오에 품에 안겨 따뜻한 아파트 현관문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당당하게 집사의 집으로 들어갔지. 내가 말했잖아. 나는 랜슬럿 경의 101가지 방법을 무한 신뢰한다고 말이야.


타치오는 토요일 밤 8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가 들고 온 종이상자에는 부모님이 보자기에 싸주신 반찬이며 채소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보통은 전화해서 아내에게 주차장으로 내려오라고 해서 같이 짐을 나르곤 했는데 오늘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느라 혼자 올라왔다. 나는 타치오를 보기 위해 현관 쪽으로 달려갔지만, 피스는 남편이 들어오는데도 소파에 앉은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바짓가랑이에 머리를 비비며 꼬리를 치켜들었다.

"냥~"

"다녀왔어. 피스."

그녀의 시선은 그를 외면한 채 베란다 밖에 어두워져 가는 사위에 고정돼 있었다.

"타치오,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 주기가 그렇게 어려운 거야? 전화해도 안 받고."

"미안해, 무음으로 해놔서 몰랐어. 아빠가 귀가 잘 안 들리신다고 하셔서 보청기를 맞춰드리고 오느라 좀 늦었어."

그녀는 미안해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화난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보청기는 언제 나오는데?"

"열흘 정도 걸린다나 봐."

아내의 주름진 미간이 반듯해지자마자, 그는 외투 안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내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야?"

"열어봐. 엄마가 아끼시던 쌍가락지래. 요새 금값 많이 올랐잖아. 처분해서 우리 필요한데 쓰래."

타치오가 들고 있는 비닐봉지 안에는 뭉쳐진 화장지가 있었다. 그는 묶여 있는 비닐봉지의 매듭을 풀고는 제멋대로 뭉쳐있는 화장지를 꺼내려고 손을 집어넣었다.

"나중에. 안방 화장대 위에 올려놔." 그녀는 지금은 금반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는 비닐봉지를 들고 안방에 들어갔다가 금세 나왔다. 아내의 표정을 살피던 타치오는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거 팔아서 장모님 치과 임플란트 치료하는 데 보태면 어때?"

무심히 남편의 말을 흘려듣던 그녀의 안색이 밝아졌다.

"정말, 그래도 돼? 당신 어머니 나중에 아시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타치오는 잠시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자동차 수리하는 데 썼다고 말하지 뭐. 그건 걱정하지 마."

"고마워. 당신이 우리 엄마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줄 몰랐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기 어깨를 감싸고 있는 그의 오른손에 자신의 왼손을 포개고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남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의 웃음소리와 함께 타치오의 얼굴빛도 식탁 조명 아래에서 밝아졌다.

"당신이랑 먹으려고 저녁 안 먹었는데, 와서 같이 먹자."

"저녁 먹고 들어온 거 아니었어?"

차려놓은 식탁을 치우고 있던 그녀는 식탁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냄비를 전기 레인지 위에 올려놓았다.

"냄비에 든 건 뭐야?"

"당신 좋아하는 백생합탕이야."

잠시 후 전기 레인지 위에 냄비가 끓기 시작하면서 김이 피어올랐다. 매운 청양고추 향과 더불어 백합 조개에서 우러난 시원한 국물 냄새가 모두의 식욕을 자극했다. 나는 나대로 셈이 있어 타치오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미리 자리를 선점하고 은근과 끈기로 그의 옆에 붙어 있다 보면 미안해서라도 삶은 조개를 내어주지 않을까.' 어쩌면 화가 풀린 피스가 내 밥그릇에 백합 몇 개를 담아주는 행운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그는 일어나 싱크대 하부 서랍장을 열어 이리저리 뭘 찾았다.

"여기 소주 한 병 남아있지 않았나? 조개탕 국물이 시원해서 소주 생각이 나네."

"진즉 다 마셨지. 지금은 요리용으로 쓰는 청하 반병 남아있는 게 전부인데." 그녀는 전기 레인지 하단 맨 좌측에 세로 수납장을 열고 소주병을 꺼내주었다.

"당신도 한잔할래?"

"누구 코에 붙이려고. 당신이나 마셔."

그녀는 볼이 넓은 국그릇 용기에 뽀얀 국물이 우러난 백생합탕을 담아 먼저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남편의 그릇보다는 작은 용기에 조개탕을 담아 자신의 자리로 가져갔다. 나는 그때까지 타치오의 옆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의 처분만 바라고 있었다. 그는 백합 조갯살과 국물을 마시고는 연이어 소주잔을 입에 가져갔다.

"크으~ 조개탕 국물이 끝내주는데. 역시 당신 음식 솜씨는 최고야." 그는 아내를 향해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많이 끓였으니까 천천히나 드세요."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국자로 조개만 건져내 그의 그릇에 담아주었다. 나는 백생합탕 냄새에 이끌려 그만 참지 못하고 식탁 위로 올라갔다.

"안돼. 보스 기다려."

내가 조개탕 냄비에 코를 박자마자, 피스는 손끝으로 나의 코끝을 '톡'하고 때리며 제지했다.

"보스도 조개가 먹고 싶은가 보네."

역시 집사 타치오만큼은 나의 마음을 헤아려줄 줄 알았다. 그녀는 숟가락보다 크기만한 조개 다섯 개를 내 밥그릇에 담아 주었다.

토요일 밤 타치오에게 다가오려던 위기는 잘 마무리되나 싶었다. 사건은 그다음 날인 월요일에 터졌다.


타치오가 출근하고 나서 피스는 어제 남편이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비닐봉지를 찾았다. 그런데 분명 화장대 위에 있어야 할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화장대에 있던 비닐봉지 당신이 가져갔어?"

그녀의 입술에서 그를 닦아세우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휴대전화 스피커로 반가운 타치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비닐봉지 안의 화장지를 만져보니까 아무것도 없길래. 휴지통에 버렸는데. 쌍가락지는 당신이 챙긴 거 아냐?"

피스는 통화하는 중간중간에 오른손 엄지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녀는 베란다로 급하게 걸어갔다. 내가 보기엔 쓰레기봉투를 열어보러 가는 모양이었다.

"종량제 봉투가 없는데?" 베란다에서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득 찼길래 출근하면서 쓰레기봉투 버리는 곳에 버리고 나왔는데..."

"그걸 그냥 버리면 어떡해?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오늘 비상 복무 점검 날이라 일찍 나가야 한단 말이야."

그녀는 발을 동동 굴렀다. 옆에서 타치오가 그 모습을 봤다면 그녀가 까무러치기 직전이란 걸 직감했을 것이다.

"얼른 전화 끊어봐." 그녀는 타치오의 말이 계속 흘러나오는데도 전화기를 소파에 던져버리고는 아파트 출입문으로 달려갔다. 신발에 발을 욱여넣는 그녀의 표정은 사색이 돼 있었다. 누구라도 영문도 모른 채 출입문으로 나가려던 그녀 앞에서 얼쩡거렸다가는 아마도 발길에 차였을지도 몰랐다. 소파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그녀의 휴대전화에서는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청소차가 수거하기 전에..."

벽시계는 오전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 수신음이 울리며 문자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8시 50분 반려 구청 비상 복무 점검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