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퇴근길 공영주차장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접어들면 작은 술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골목길에 어둠이 살짝 내리면, 네온사인 간판들이 빛을 발하며 숨쉬기 시작한다. 그러면 하나, 둘씩 불이 반짝이며 돌아가는 놀이동산의 회전목마처럼 어두워진 내 영혼에도 불이 켜진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영혼에 관한 몇 마디>란 그 시의 첫 두 행은 '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영혼을 소유하게 된다./ 끊임없이. 영원히 그것을 가지는 자는 아무도 없다.'로 시작한다. 내게는 골목길을 지나는 순간이 그랬다. 지그재그로 모여 있는 술집들의 테이블에는 물레방앗간을 지나칠 리 없는 참새들처럼 손님들이 들어차 있었다. 오늘은 어떤 사연으로 술잔들을 기울이고 있을지 생각하며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기분 좋은 일일지 아니면 속상한 마음을 달래러 온 걸까. 술 한잔 마시고 가라고 멈춰 세우는 지인이 있을까 찾아보기도 했다. 소주 한잔에 발그레한 얼굴을 오리발처럼 들이밀곤 하던 내가 들어가 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퇴근길은 사람이 그리워지는 시간인가 보다.
나는 무더운 여름날이면 차갑게 얼린 맥주잔에 생맥주를 마시며 잠시 피로와 더위에 지친 마음을 눙치고 싶다. 몸은 늘 그렇게 술을 밀어내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았다. 기습적으로 내린 폭설에 발이 묶인 겨울날이면, 눈길에 마음 졸이며 고갯길을 운전해 가느니 어묵탕에 소주 한잔하고 지금 발을 디딘 이곳에서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잠을 청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면 반겨주는 가족이 있지만, 퇴근길 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쉬이 외로움이 깃든다. 근심, 불안 그리고 고민은 일터에 두고 나와야 하는데, 녀석들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책상 구석에 대충 붙여 놓은 껌딱지처럼. 이들의 존재를 잊고서 엎드려 잤다가는 머리카락에 달라붙어서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잘라내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되뇌어보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적잖이 마음이 괴롭다.
작은 점포들이 모여 있는 좁은 골목길은, 그러니까 양쪽에서 차들이 마주쳐 지나갈 수 없어서 서로 비켜서 지나가려면 한 대는 도로에 인접해 있는 연석 위로 차를 올려 잠시 멈춰 서 있어야 한다. 운전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골목길이다. 그럼에도 작은 가게들이 오밀조밀 밀집해 있어서인지 차들의 통행이 끊이지 않는다. 주차장과 반대 방향의 골목길에 다른 술집들도 많지만, 이 좁은 골목길에는 내 관심을 끄는 세 곳의 술집이 있다.
첫 번째 가게는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ㄱ 맥줏집’이다. 이 집은 사장님이 장사수완도 좋고 수제 맥줏집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맥주 종류로는 대표 얼음 생맥주 카스(라거), 까만 카스, 시골 페일 에일, 밤이면 밤마다 포터 맥주 그리고 술안주로는 군만두, 고추냉이 아몬드, 왕 노가리가 있다.
두 번째 가게는 골목 끝에 있는 ‘ㄴ’ 술집이다. 이 집 대표 안주는 어묵탕. 부산어묵으로 얼큰하게 끓여서 소주 안주로 제격이다. 골뱅이무침. 닭 특수 부위인 어깨살을 튀긴 맛있는 치킨립, 등심 치즈 롤까스, 새우볼, 아귀살 포 등이 있다.
가게 앞에는 ‘걱정 마 안주 안 비싸’라고 앙증맞게 쓰여 있는 겨자색 나무 입간판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후 4시에 열어서 많은 사람이 한참 단잠에 빠져 있을 새벽 2시에 영업을 종료한다는 건 체력적으로 큰 부담일 텐데.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생백합 같던 출입문이, 어느새 활짝 문을 열고 손님들로 북적이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세 번째 술집은 지그재그로 놓여 있는 술집 사이 가운데에 있는 ‘ㄷ’ 술집이다. 두 점포 사이에 새로 생긴 지라 더 잘되라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 이 점포의 대표 안주는 겉바속촉 새우튀김과 감자튀김이다.
공휴일을 앞둔 8월 14일 밤은 세 술집 모두 만석이었다. 술집의 손님들은 부담스러운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모두 힘껏 용기를 내어, 오늘 밤을 케세라세라(queserasera) 즐기고 있었다. 그곳들은 술집 창문에 김이 서리면서 더없이 아늑해 보이는 공간이 되어갔다. 어제만 해도 손님이 없어서 미어캣처럼 불안한 시선으로 홀을 이리저리 바라보며 서 있던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세 곳의 술집을 바라보며 내가 천둥벌거숭이처럼 인천에 처음 올라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목 좋은 가게 자리를 알아보려고 중개인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발품을 팔러 다녔다. 병원에 필요한 집기와 전자제품을 사고 부분적으로 인테리어를 진행했던 진료실에 나와 며칠을 궁싯거렸다. 구청에 가서 사업자등록증을 손에 쥐기까지 그 일련의 수고들이 떠올랐다. 그 고된 마음을 알기에 세 술집 모두 이 골목에서 잘 살아남아 지역 명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고단했던 오늘 하루를 뒤로 물리고 걷다 보니, 골목길에 날이 시원하게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