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숨긴 글쓰기 수업 이야기
한국예술종합학교 라이팅 클래스 첫 수업이 있던 토요일 오후였다. 서준은 방배역 1번 출구를 향해 뛰어가다가 눈에 띈 휴지통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그는 남은 김밥을 버리기엔 아직 배가 고팠고 한예종 캠퍼스에 들어가기 전에 남은 김밥을 먹을 작정이었다. 출발역인 신도림역 앞에선 제대로 씹지도 않고 김밥을 삼키려다가 사레가 들려 얼굴이 벌게지도록 캑캑거렸다. 그는 오늘 글쓰기 첫 수업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지 않았다. 부부싸움을 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등록한 소설 쓰기 강연이라 늦지 않으려고 서두르고 있었다. 지하철 출구로 나가 카카오맵을 확인해 보니 버스는 4분 후 도착이었다. 그는 정차한 17번 마을버스에 올랐다. 왼손에는 절반쯤 먹다 남은 김밥이 든 비닐 포장지를 움켜쥐고, 오른손에는 신용카드를 들고 있었다. 신용카드를 지갑에 넣을 새도 없이 무심한 버스는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준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어렵게 중심을 잡으며 오른편 뒷좌석 쪽으로 다가갔다. 몸을 노선표 쪽으로 기울여 정차역인 국립국악원 위치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아이 씨, 이게 뭐야.”
짜증 섞인 남자의 목소리였다. 밑을 내려다보니 좌석에 앉은 남자의 신발 앞에 서준의 왼손에 들려있던 비닐 포장지 사이로 떨어진 김밥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버스 통로에 주황색 당근이며 노란색 단무지, 살굿빛이 도는 햄 조각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는 불과 30분 전만 해도 허기를 달래려 입안에 허겁지겁 삼켰던 김밥의 참기름 냄새가 역겨웠다. 그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버스 안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귓불이 달아올랐다. 출발과 정차를 반복하며 흔들리는 버스에 쭈그리고 앉은 그는, 오른손으로 남자의 구두 앞에 옆구리가 터진 채 널브러져 있는 김밥 두 개와 자신의 구겨진 자존심까지 비닐봉지에 주워 담았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있나 싶었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젊은 커플 중에 여성이 물티슈를 건네줬다. 버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머지 햄, 단무지, 당근 재료를 손으로 훔쳐서 담고 여성이 건네준 물티슈로 바닥을 닦았다. 손을 내려다보니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의 손처럼 까매져 있었다. 정리를 끝낸 그는 바닥에서 일어났지만, 버스 손잡이를 잡기조차 민망했다. 조금 전 짜증을 냈던 남자는 정차 버튼을 누른 뒤 반대편 좌석에서 일어나는 부인과 두 아이와 함께 아무렇지 않은 듯 내렸다. 서준은 아이 둘 가진 아빠가 그 정도도 이해 못 해주고 짜증을 냈다 싶어 남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던 걸 후회했다. 사실 별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버스에 먹다 남은 김밥을 들고 올라탄 건 그의 실수가 분명했다. 그는 국립국악원 정거장에서 내려 은행잎들이 노란 얼룩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은 보도를 지나 한예종 서초동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들러 쓰레기통에 김밥을 던져버리고 얼른 까매진 손부터 씻고 싶었다. 그래야 첫 글쓰기 강의를 듣기 전 오늘 버스 안에서 당한 창피를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와 결혼 후 아이들 교육 문제로 말다툼하기 시작한 건 큰 아이 민주가 4학년에 올라갈 무렵부터였다. 그리고 다툴 때마다 이혼 이야기가 단골 메뉴처럼 올라오기 시작한 건 둘째 아이 민수가 중2에 올라가고 나서였다. 민수의 학원을 옮기는 문제로 집안에서 시작된 말다툼은 결국 아파트 단지 내 통행로에서 서로 마주 본 채로 언성을 높이며 서로 악다구니를 쓰면서 끝났다.
“내가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민주 입시학원 설명회에 가고 학원에 가기 싫다는 민수 달랠 때, 당신은 뭐 하고 있었어?”
아내가 악에 받쳐서 그에게 쏘아붙였다. 아내의 말이 백번 맞다 해도, 그는 그녀의 말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수긍하는 순간 아내와의 싸움에서 패배자로 낙인찍힐 테니까. 아내의 말에 반박할 적당한 말을 떠올려야 했다.
“당신이 하지 않은 일들, 나머지 모든 일을 내가 했어.”
서준은 흥분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되려 그녀의 사기만 드높이는 꼴이 되었다. 부부의 얼굴은 둘 다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나가는 아파트 주민들이 쳐다보건 말건 서준과 그의 아내는 이웃 주민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싸웠다. 새로 이사 온 부부가 부부싸움 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나겠지만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은 그가 부초처럼 떠 있을 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의 다툼에서 진이 빠지고 나면, 전쟁에서 패한 장수처럼 그녀 앞에서 보란 듯이 노트북을 펴놓고 글을 썼다. 아내는 우리도 남들처럼 부동산이나 주식, 재테크에 관심 좀 두고 살자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내의 말을 들을 때마다 서준은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재테크를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입시 교육이나 재테크 분야는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글을 쓰느라 늦게 잠들고 집안사에 무관심한 남편을 못마땅해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출근하기 싫다는 눈치를 내비치면 아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이 나한테 신혼 초에 했던 말 기억해? 개업만 하면 돈을 가마니로 벌어다 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
서준은 머릿속 기억의 더께를 구석구석 뒤져봐도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내의 말을 듣고 나면, 그의 등에 느슨해진 태엽은 팽팽하게 감기곤 했다.
라이팅 클래스 첫 수업에 다녀온 서준은 아내에게 더 이상 글쓰기 욕망을 감추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맘에 다시 건들바람이 불었다. 그도 올리버 색스의 말대로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고 싶었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서준은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이렇게 말을 꺼냈다.
“시장통 골목길에 '모락'이라는 독립 서점이 생겼어. 2주마다 열리는 독서 모임에 나가면 우리 소아과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뭐, 독서 모임에 나간다고? ”
아내는 설거지하다 말고 그를 흘겨봤다.
“책 읽는 의사. 품위 있고 멋지지. 당신 생각은 어때? ”
“다녀와서 피곤하다느니 재미없다는 그런 소리나 하지 마.”
아내는 별일 아닌 듯 몸을 돌리고 설거지를 이어갔다. 그는 흘겨보던 그녀의 눈빛에 기가 눌려서, 놀란 고라니처럼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노트북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혹시 알아. 내 이름을 단 소설책을 출간하는 진짜 작가가 될지.”
“당신이 여태 어디 한 가지라도 꾸준히 한 게 있어야 말이지.”
싱크대 수전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 사이로 접시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그는 싱크대 쪽으로 다가가 전기 레인지 옆에 섰다.
“모리 히로시라는 일본 작가 들어봤어?”
서준은 오늘 글쓰기 수업에서 강사에게 들었던 모리 히로시라는 작가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작가는 일본 나고야대학교 공과대학 조교수로 일하다 19년 동안 글을 써서 15억 엔 이상을 벌었대. 대단하지 않아?"
그녀는 수돗물을 잠그고 그를 바라봤다.
"기차덕후인 그의 자택 정원에 철도 레일이 깔려있고, 취미로 미니어처 열차를 타고 정원을 돌아다닌대.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목적 중 하나도 철도 모형을 비롯한 취미에 쓸 수 있는 시간과 장소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고 하네."
아내는 모리 히로시라는 작가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내가 아는 일본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뿐이야. 오늘 방배역에서 만난 친구들 모임은 어땠어? 대서 씨랑 문탁 씨는 다들 잘 지낸대?”
그녀가 갑작스레 친구들 소식을 묻는 바람에 그는 손끝이 저릿했다.
“다들 병원에 환자 없다고 우는소리 하지 뭐. 어휴 지겨워. 그 소리.”
서준은 슬그머니 식탁 위에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