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성경학교에서 5학년 담당은 배율이 선생님이셨다. 8월 12일 교회에서 만난 누나는 흰색과 검정 체크무늬 치마에 오렌지색 U자형 반팔 티셔츠와 연두색 긴팔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주일 학교를 담당하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끝나고 5학년 아이들은 분반 공부 모임을 하러 배율이 선생님 앞으로 모였다.
ㅡ오늘은 조금 덥지만, 교회 밖으로 나가서 분반 공부할까?
ㅡ예배당이 시원하고 좋은데.... 준필이는 앉은 채로 투덜거렸다.
ㅡ그냥 밖으로 나가자 준필아. 안에만 있었더니 답답해 죽겠어. 서준이가 준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율이 선생님과 아이들은 교회 앞 연두색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정자를 향해 걸어갔다. 잠시 걷는데도 무더운 날씨와 강한 햇살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미영이는 정자로 나 있는 좁은 논둑을 따라 걷는 동안 선생님의 손에 매달리다시피 걷고 있었다. 불청객의 발걸음에 개구리들이 개울로 뛰어들며 여기저기서 퐁당 소리가 났다. 그때마다 미영은 놀라 비명을 질렀다.
ㅡ아휴, 징그러워. 그녀가 질러대는 소리에 놀라 황소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논둑을 따라 심은 콩잎 위에선 방아깨비, 청개구리, 방귀벌레가 보호색을 믿고 은신해 있었다. 붉은색 딱지날개를 지닌 칠성무당벌레는 초록색 활주로를 따라 느릿하게 움직였다.
동네에서 지은 정자지만, 농번기에는 비어 있으니 잠깐 이용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정자 주변을 따라 해자(a moat)를 두른 듯 초록 잎의 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라고 있었다. 선생님은 손수건을 꺼내 아이들이 앉을자리를 닦았다. 희수가 천장 중앙에 매달린 선풍기 줄을 잡아당겼다. 선풍기는 천천히 회전을 시작했다. 선풍기가 선생님 쪽으로 회전할 때마다 향긋한 아카시아 향이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아카시아 향은 선생님의 엄마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향수라고 말했다.
미영이는 선생님의 왼편에 찰싹 붙어 앉았다. 그 옆에 서준이가 앉고 나머지 아이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성경책을 펼쳤다.
ㅡ구약에는 핍박당하고 고통받은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선지자들이 있죠? 누가 말해볼까? 희수가 손을 들었다. 희수의 아빠는 강대 교회 시무 장로님이셨다. 희수의 장래 희망은 목사님이었다.
ㅡ예레미야, 엘리야, 다니엘, 아모스 선지자가 있습니다. 희수의 대답에 아이들의 입에서 '와'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선생님도 생각지도 못한 희수의 대답에 놀란 표정이었다.
ㅡ오늘 분반 공부가 끝나면 이번 여름성경학교 퀴즈왕을 뽑을 거야. 선생님은 우리 반에서 일 등이 나왔으면 좋겠다. 오늘 공과 말씀에서도 퀴즈가 나올 거니까. 우리 돌아가면서 한 절씩 읽어보자.
ㅡ열왕기상 19장 4절~8절 말씀이지. 준필이부터.
ㅡ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ㅡ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ㅡ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ㅡ7 여호와의 천사가 또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ㅡ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ㅡ열왕기상 18장에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아합의 왕후 이세벨이 섬기는 바알선지자 450명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죽이고 왕후 이세벨은 아합으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내일 이맘때에 엘리야의 죽이겠다고 말하지. 그러자 그 말을 전해 들은 엘리야는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게 되었어.
ㅡ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를 혼자서 450명이나 죽여놓고 왜 도망갔어요? 나는 슈퍼 파워를 가진 엘리야가 도망했다는 말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공과시간이 따분한 미영이는 선생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랐다.
ㅡ막상 나와보니 정자가 좀 덥네. 선생님은 지갑에서 오천 원을 꺼내 미영이에게 내밀었다.
ㅡ바보야, 살려면 도망가야지. 엘리야라고 별 수 있어. 미영이 오천 원을 냉큼 낚아채며 말했다. 미영이를 짝사랑하는 서준이도 덩달아 따라 일어섰다.
선생님은 예수님께 감사기도를 하고 미영이와 서준이가 사 온 아이스크림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ㅡ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을 죽이고 영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갔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전에 많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인 이세벨의 협박에 두려움을 느끼고 무너져 내린 것 같아. 고난이 닥치면 우리가 아주 작고 연약한 존재란 걸 깨닫게 돼. 그때가 바로 겁을 집어먹고 두려워져서 스스로 움츠러드는 순간이야. 용감했던 엘리야 선지자도 그랬던 거 같아. 미영이, 인영이 서준이, 준필이, 희수도 그런 때가 오면 엘리야처럼 예수님께 담대하게 나아가 기도하는 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공과 말씀은 이걸로 끝.
미영이는 막대 아이스크림을 다 먹자마자 앞으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 제풀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율이 선생님은 졸린 미영이를 체크무늬 치마 위로 눕혔다. 교회 앞마당은 소나무, 벚나무에 매달린 매미들이 짝짓기 하느라 소란스러웠다. 준필이는 콩밭에 내려가 사마귀 두 마리를 붙잡아 돌아왔다. 준필이의 손에 잡힌 사마귀를 보고 서준이와 희수가 신나서 다가갔다. 세 아이는 정자 한쪽 구석에서 사마귀 두 마리를 싸움시키고 있었다.
율이 선생님은 다리가 저린지 잠들어 있는 미영의 머리를 조심스레 들어 정자나무 바닥에 개켜 놓은 카디건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선생님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는데, 선생님은 아이들이 버린 아이스크림 비닐포장지와 아이스크림 막대를 주워 담고 있었다. 헐렁한 오렌지색 반팔 티셔츠 너머 가슴골이 보이고, 잡티 하나 없이 하얀 살결의 젖가슴이 보였다. 그녀는 브래지어를 하고 있지 않았다. 선생님의 가슴을 훔쳐보았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사마귀를 갖고 노는 아이들에게 이제 예배당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며 잠든 미영이를 흔들어 깨웠다. 미영이가 깨어날 기미가 없자 등에 업혀달라고 말했다. 희수와 나는 미영이를 부축하여 선생님 등에 업혀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