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학교 퀴즈대회

by 임용철

예배당 본당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에게 여름 성경학교의 하이라이트일 수 있는 성경 퀴즈대회의 막이 올랐다. 나는 말씀 카드를 외우는 중이었다.

'퀴즈대회에서 일 등 하면 선생님이 좋아할 텐데.'

말씀 카드를 다 외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어제 성경학교가 끝나고 용택이의 꼬드김에 넘어가 낚시를 따라간 게 실수였다.


초등부 부장님이신 오금란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고 성경 퀴즈대회의 진행을 맡으셨다.

ㅡ첫 문제는 O, X 퀴즈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하면 오른쪽으로 모이고, 틀렸다고 판단되면 왼쪽으로 모이면 됩니다. 정답을 틀린 학생들은 뒤쪽으로 이동합니다. 문제 나갑니다.

'사도행전을 쓴 사람은 바울이다.' 바울이 썼다고 생각하면 오른쪽, 틀렸다고 판단되면 왼쪽으로 모이세요. 선생님들은 정답을 알려주시면 안 됩니다.

몇 명의 아이들이 갈팡질팡하다가 오른쪽에 모였고 대부분의 아이는 왼쪽에 남아있었다.

ㅡ셋, 둘, 하나. 자, 정답은 X입니다.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을 쓴 사람은 누가입니다. 오른쪽에 서 있는 학생들은 탈락입니다.


말씀 괄호 넣기 문제가 다 끝나자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퀴즈에서 살아남았다.

ㅡ여섯 번째 문제도 O, X 퀴즈입니다. 어, 이 문제는 아이들에게 좀 어려울 거 같은데. 부장 선생님은 퀴즈 문제를 출제한 김광현 선생님을 불러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ㅡ주일학교어린이들에겐 좀 어려울 수 있는 문제인데, 어제 초등부 최상철 목사님 설교 말씀을 잘 들은 친구들은 정답을 맞힐 수 있다고 하네요. 자, 문제 나갑니다.

ㅡ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고 일곱째 날(토요일)을 안식하신 날 (사밭, Sabbath)로 기념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린 십계명에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주일 예배는 유대인들이 지키는 토요일 안식일이 그대로 일요일로 옮겨온 날입니다. 이 말이 맞으면 오른쪽, 틀렸다고 판단되면 왼쪽에 서주세요.


내가 먼저 왼쪽에 가서 섰다. 잠시 고민하던 희수도 왼쪽으로 건너왔다. 희수를 따라 왼쪽으로 얼떨결에 이동했던 서준이는 오른편에 서 있는 미영이가 건너오라며 손짓하자 다시 오른쪽으로 펄쩍 뛰어서 넘어갔다.

ㅡ자, 이제 다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거죠. 오른편에 서 있던 서준이와 미영이가 나와 희수를 보며 어서 넘어오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ㅡ정답은.... 부장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였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두구두구' 소리를 내며 기대감을 높였다.

ㅡ정답은 X입니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비명이 들려왔다. 공과를 담당한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수군거리는 소리가 쏟아졌다.

ㅡ정말 헷갈리기 쉬운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토요일로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의 날인 주일은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기 위해 초대교회는 주일을 예배의 날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켰다고 합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지키는 토요일 안식일이 그대로 일요일로 옮겨왔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정답을 맞힌 희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했다.


부장 선생님은 희수와 나에게 스케치북과 유성펜을 각각 나눠 주었다.

ㅡ 다음은 두 개의 문제 정답을 스케치북에 적어 주세요. 첫 문제는 이스라엘 왕 아합이 결혼한 이방인 아내는 어느 나라의 누구였습니까? 두 번째 문제는 북왕국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 하자 엘리야는 브엘세바의 광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던 엘리야에게 천사가 나타나 음식을 먹인 후, 이곳으로 가게 했습니다. 엘리야가 40일을 걸어서 도착한 이곳은 어디입니까?

자, 두 어린이. 다 적었으면 스케치북을 들어 정답을 보여주세요.

희수와 나는 스케치북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ㅡ정답은 시돈의 이세벨 그리고 호렙 산입니다. 두 친구 모두 정답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 스피드 성경 구절 암송 시간입니다. 먼저 손을 들고 나와 정확하게 암송한 사람이 강대 교회 성경 퀴즈왕이 됩니다. 이제 문제 나갑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2절 말씀을 암송해 주세요.

퀴즈대회 시작 전에 마지막 외웠던 암송 구절이었다. 나는 일단 손부터 번쩍 들었다. 예배당 출입문 쪽에 율이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가서 물 한 모금이 간절했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ㅡ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 마음을.... 그다음 구절부터는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ㅡ 셋, 두울, 하아나. 부장님은 천천히 숫자를 셌다. 결국 나는 2절 말씀을 암송하지 못했다.

ㅡ안타깝네요.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율이 선생님과 희수를 번갈아 바라봤다. 청바지에 여름성경학교 티셔츠를 단정하게 넣어 입은 희수가 손을 들었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희수가 강대상 앞으로 걸어 나오자, 나는 풀이 죽어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희수는 청산유수처럼 성경 구절을 암송해 나갔다. 희수의 목소리에 작은 떨림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종일 로마서 12장 1, 2절만 암송한 사람처럼 막힘이 없었다.

ㅡ올 여름성경학교 성경 퀴즈왕은 5학년 조희수 학생입니다. 축하합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퀴즈를 푼 희수와 인영이를 위해 모두 박수. 두 친구 모두 잘했어요. 이것으로 여름성경학교 퀴즈대회를 마칩니다. 배율이 선생님, 앞으로 나오셔서 아이들 퀴즈 선물 받아 가세요.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최상철 목사님께서 이번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수고하신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먹거리와 잠자리를 살펴주신 장로님 이하 교회 직분자들 그리고 초등부 아이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초등부 아이들은 자기 반 선생님과 모여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분반모임하느라 예배당 안이 어수선한 가운데 예배당 출입문이 열렸다. 강대 교회 집사님과 권사님들이 아이들이 간식으로 먹을 수박과 치킨을 손에 들고 계셨다. 간식은 희수의 아빠이신 조 장로님이 후원하신 거라고 오금란 부장님이 말씀해 주셨다. 희수는 아빠에게 달려갔다. 장로님이 희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아주셨다. 수박과 치킨을 먹느라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입맛이 없어서 먹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해했다. 얼른 용택이 집에 놀러 가고 싶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는 목사님 사택 앞에 세워져 있는 빨간색 스쿠터 옆에서 애꿎은 돌멩이를 걷어차고 있었다. 율이 누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ㅡ인영아, 지금 선생님 좀 대야까지 태워다 줄 수 있니?



5



대야면까지 오토바이로 10분이 좀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지금 오후 4시 10분이니까 늦어도 4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용택이에게는 성경학교 끝나자마자 오토바이를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하고 간신히 빌려온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율이 누나 사정이 더 급해 보였다. 그녀는 스쿠터 뒤에 불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때, 누나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ㅡ네, 기백이 삼촌. 저예요.

ㅡ율아, 아빠가 내 전화는 이제 안 받는다. 지금 시장통 슈퍼에 모여 도박하는 거 같은데. 네가 좀 가봐야 안 쓰겠나. 저러다 밑천 떨어졌다고 또 음주 운전하다 걸리면... 지난번엔 파출소 장 순경이 한번 봐주고 넘어갔다만.

ㅡ죄송해요. 삼촌. 제가 아빠 찾아가 볼게요. 통화를 마친 누나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ㅡ출발하자. 인영아. 근데, 너 집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ㅡ괜찮아요. 부모님은 형 자취방에 들렸다가 늦게 온다고 했어요.

스쿠터를 타고 가는 길에 집으로 걸어가는 준필이를 지나쳤다. 준필이는 어디 가냐고 뒤에서 소리쳤지만, 나는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바람 한 줄기 불지 않는 날씨였다. 아니, 바람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아스팔트 위로 복사열이 뜨거웠다. 찜통 같은 더위에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느낌은 대형 사우나 안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출구를 못 찾아 빙빙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멀리서 트랙터 한 대가 다가왔다. 용택이 아빠가 모는 트랙터였다. 짐칸을 보니 용택이가 놀란 눈을 하고 쳐다봤다.

ㅡ안녕하세요. 나는 스쿠터를 멈추고 용택이 아빠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용택이가 말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어디 가'라고 물었다. 용택이 아빠의 표정을 살피며 똑같이 입 모양으로 '대야'라고 말해줬다.

ㅡ인영이구나. 어디 가니? 아저씨가 내가 타고 있는 빨간색 스쿠터와 율이 누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으셨다.

ㅡ율이도 있었구나. 아빠는 잘 계시니? 요새 통 얼굴을 못 봤네. 안부 전해주렴.

ㅡ네, 지금 아빠 만나러 가려고요.

ㅡ그래 차 조심하고. 트랙터 운전석에 앉은 용택이 아빠가 고개를 돌려 용택이를 째려보셨다. 용택이가 트랙터 운전석 후면 유리를 힘차게 두드렸다.

ㅡ아빠, 오라이. 트랙터가 다시 출발하자 짐칸에 앉은 용택이가 이제 아빠한테 죽었다며 손 들고 벌서는 흉내를 냈다. 용택이에게 미안하게 됐다. 율이 누나 앞에서 폼나게 보이고 싶어 빌려 온 건데. 용택이 아빠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본인 소유의 스쿠터를 타다가 무슨 사고라도 날까 싶어 언짢은 표정이었다. 용택이는 집에 가면 아빠에게 혼이 날지도 모른다.

지평선 멀리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좌우로 늘어서 있는 논은 초록색 물감으로 균형과 질서가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차량 통행이 많은 4차선 도로로 진입했을 때 과적 차량의 클랙슨 소리 사이로 누나의 흐느끼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나는 스쿠터의 악셀러레이터를 아래로 힘껏 잡아당길 수밖에 없었다.


철길 건너 오른쪽으로 돌면 대야 재래시장 골목이었다. 누나는 전에도 이 시장 골목에 배 씨 아저씨를 데리러 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아빠가 픽업트럭에 누나를 태우고 나가 술에 취한 배 씨 아저씨와 돌아온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가끔 아빠와 얘길 나누다가, 엄마 잃은 율이 누나도 불쌍하고 병으로 아내를 잃은 배 씨 아저씨도 불쌍하다며 한숨을 쉬셨다.

얼마나 상심이 크면 저러겠냐면서도. 그래도 이제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ㅡ율이를 봐서라도 배 씨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말이야. 아버지도 동료 기사였던 배 씨 아저씨를 측은하게 여기셨다.

재래시장 골목이 끝날 즈음, 으뜸 떡방앗간 맞은편에 아모르 미장원이 보였다. 미장원과 서해 바지락 칼국수 집 사이에 슈퍼와 로또 판매점을 겸하고 있는 대박슈퍼가 보였다.

술에 떡이 된 배 씨 아저씨를 태우고 온 날 밤에 아빠는 대박슈퍼 얘길 해주셨다. 아빠 말대로라면, 거기 '대박슈퍼'는 이름대로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담뱃진이 찌든 냄새와 여름 장맛비로 핀 곰팡내, 홀아비 냄새를 참아가며 수컷 들끼리 서로의 것을 빼앗아 먹겠다고 으르렁거리는 장소였다. 누나는 슈퍼 오른쪽 샛골목에 내려달라고 말했다.

ㅡ인영아, 누나가 들어가서 아빠를 모시고 나올게. 너는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말고 여기 기다려줄래. 그녀는 대박슈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액막이 명태가 달린 출입문 종이 '딸랑'하고 울렸다. 나는 잠시 틈을 두고 조용히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박 슈퍼 사장님 입장에서는 도박꾼들에게 골방을 빌려주는 게 화투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일타쌍피 이득이었다. 슈퍼 손님을 받다가 골방에서 술이나 담배 주전부리 안주 그리고 라면이나 계란말이 등 간단한 식사거리 비용을 받을 수 있으니까. 방을 빌려주는 비용은 덤이었다.

슈퍼 사장님 눈치가 보여 과자를 고르는 시늉을 하며 진열대를 오갔다. 누나가 슈퍼 안쪽에 미닫이문을 열자, 안에서 메케한 담배 연기가 선풍기 바람을 타고 슈퍼로 새어 나왔다.

ㅡ이봐, 배 씨. 문 앞에 자네 딸 왔어. 어서 나가봐. 골방 안에 누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ㅡ안녕하세요. 누나는 방안의 남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ㅡ아, 한참 끗발 오르는데... 아저씨는 작은 체구로 까맣게 탄 얼굴에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다. 방에서 뭉그적거리며 나오더니 바닥에 있는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었다.


배 씨 아저씨는 화신 택시 회사명이 새겨진 남색 망사 조끼 밑으로 손을 넣어 배를 북북 긁다가 문 쪽으로 비틀거리며 누나에게 걸어 나왔다.

ㅡ아빠, 한참 택시 일할 시간에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어떡해. 기백이 삼촌이 걱정된다고 전화하셨어.

ㅡ기백이 그 친구는 쓸데없이. 사람 쉬는데 스토커처럼 못살게 구네. 아빠 여태 일하다가 잠시 커피값이나 벌어볼까 하고 노는 거야. 한낮엔 더워서 택시 손님도 없어. 너는 성경학교인지 뭔지 다 끝났니? 다 끝났으면 어서 짐 싸서 익산 자취방으로 가.

ㅡ내일 오후에 갈 거예요. 아빠 여기 계속 이러고 계실 거면 택시 키 저한테 주세요.

ㅡ무슨 키를 달라는 거야. 간드러지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갑자기 거칠고 굵어졌다.

ㅡ지난번처럼 또 술 드시고 택시 운전하실 거잖아요. 누나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ㅡ어디 딸년이 버릇없이 아빠한테 자동차 키를 내놔라 마라야. 술에 취한 아저씨가 누나의 뺨을 때렸다. '짝'하고 땀에 전 손이 뺨에 달라붙는 소리나 났다. 율이 누나의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큰 소리였다.

ㅡ배 씨, 왜 그래. 딸이 걱정돼서 아빠 보러 온 건데. 따님이 참아요. 참아. 아빠가 술을 좀 과하게 드셔서 그래. 슈퍼 아주머니가 배 씨 아저씨 팔을 뒤쪽으로 잡아끌었다.

ㅡ어미 없이 자란 거 동네방네 자랑이라도 하는 거냐. 계집애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훈계질이야 훈계질이. 이제 다 컸다는 거냐. 에이, 오늘 아주 제대로 망신살이 뻗쳤네.

술주정하는 아저씨의 앞니 사이는 군데군데 까맣게 썩어 있었다. 치과에서 충치 치료받은 곳이 오히려 하얗게 도드라져 볼썽사나웠다. 놀라서 동그랗게 눈을 뜬 누나를 슈퍼 문 앞에 세워둔 채, 아저씨는 바지춤을 올리며 뒤돌아섰다. 골망 미닫이문을 열다가 넋이 나간 얼굴로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ㅡ어, 이게 누구야. 우리 태성이 형님 막내 도련님 아냐.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꼬깃거리는 천 원짜리 몇 장을 손에 들려주고는 들어가 버렸다. 누나의 오른쪽 뺨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얼굴에 빨갛게 도드라진 손자국이 보였다. 모멸감인지 서러움인지 모를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슈퍼 문을 나섰다. 나는 아이스크림 통을 열고 고드름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 들고 스쿠터로 돌아갔다. 누나는 스쿠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다가가 고드름 하나를 내밀었다.

ㅡ누나 이걸 뺨에 좀 대봐. 그녀는 말없이 고드름을 건네받아 오른쪽 뺨에 문질렀다.

ㅡ그만 집으로 가자 인영아. 스쿠터의 시동을 켜자, 누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고드름을 꺼내 씹어 먹었다.

오후 다섯 시가 다 돼가는데 더위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스쿠터의 시동을 켜자, 머플러에서 타다만 휘발유 냄새와 함께 검은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다시 철길을 건너 4차선 도로를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돌아가는 길엔 희미한 바람의 흔적이 느껴졌다.

율이 누나는 내 등에 몸을 밀착시켜 허리를 안았다. 아카시아 향기와 땀 냄새가 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내 등에 전에 없던 손과 눈, 그리고 코가 생겨났다. 내 몸의 모든 세포가 일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