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택이의 스쿠터

by 임용철



대야면까지 오토바이로 10분이 좀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지금 오후 4시 10분이니까 늦어도 4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용택이에게는 성경학교 끝나자마자 오토바이를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하고 간신히 빌려온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율이 누나 사정이 더 급해 보였다. 그녀는 스쿠터 뒤에 불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때, 누나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ㅡ네, 기백이 삼촌. 저예요.

ㅡ율아, 아빠가 내 전화는 이제 안 받는다. 지금 시장통 슈퍼에 모여 도박하는 거 같은데. 네가 좀 가봐야 안 쓰겠나. 저러다 밑천 떨어졌다고 또 음주 운전하다 걸리면... 지난번엔 파출소 장 순경이 한번 봐주고 넘어갔다만.

ㅡ죄송해요. 삼촌. 제가 아빠 찾아가 볼게요. 통화를 마친 누나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ㅡ출발하자. 인영아. 근데, 너 집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ㅡ괜찮아요. 부모님은 형 자취방에 들렸다가 늦게 온다고 했어요.

스쿠터를 타고 가는 길에 집으로 걸어가는 준필이를 지나쳤다. 준필이는 어디 가냐고 뒤에서 소리쳤지만, 나는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바람 한 줄기 불지 않는 날씨였다. 아니, 바람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아스팔트 위로 복사열이 뜨거웠다. 찜통 같은 더위에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느낌은 대형 사우나 안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출구를 못 찾아 빙빙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멀리서 트랙터 한 대가 다가왔다. 용택이 아빠가 모는 트랙터였다. 짐칸을 보니 용택이가 놀란 눈을 하고 쳐다봤다.

ㅡ안녕하세요. 나는 스쿠터를 멈추고 용택이 아빠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용택이가 말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어디 가'라고 물었다. 용택이 아빠의 표정을 살피며 똑같이 입 모양으로 '대야'라고 말해줬다.

ㅡ인영이구나. 어디 가니? 아저씨가 내가 타고 있는 빨간색 스쿠터와 율이 누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으셨다.

ㅡ율이도 있었구나. 아빠는 잘 계시니? 요새 통 얼굴을 못 봤네. 안부 전해주렴.

ㅡ네, 지금 아빠 만나러 가려고요.

ㅡ그래 차 조심하고. 트랙터 운전석에 앉은 용택이 아빠가 고개를 돌려 용택이를 째려보셨다. 용택이가 트랙터 운전석 후면 유리를 힘차게 두드렸다.

ㅡ아빠, 오라이. 트랙터가 다시 출발하자 짐칸에 앉은 용택이가 이제 아빠한테 죽었다며 손 들고 벌서는 흉내를 냈다. 용택이에게 미안하게 됐다. 율이 누나 앞에서 폼나게 보이고 싶어 빌려 온 건데. 용택이 아빠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본인 소유의 스쿠터를 타다가 무슨 사고라도 날까 싶어 언짢은 표정이었다. 용택이는 집에 가면 아빠에게 혼이 날지도 모른다.

지평선 멀리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좌우로 늘어서 있는 논은 초록색 물감으로 균형과 질서가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차량 통행이 많은 4차선 도로로 진입했을 때 과적 차량의 클랙슨 소리 사이로 누나의 흐느끼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나는 스쿠터의 악셀러레이터를 아래로 힘껏 잡아당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