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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빠리 Aug 23. 2024

울루루(Uluru)

나를 껴안는 여행

며칠 사이 내린 폭우로 내륙지방이 홍수로 곤욕을 치르는 사이, 그곳에서는 바위의 골을 타고 내리던 폭우가 몇 갈래의 폭포수를 연출하고 있는 장관이 뉴스에서 보도되었다. 잠깐 지나간 뉴스의 풍경을 다시 인터넷에서 찾아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울루루, ‘그늘이 지는 장소’ , 호주  원주민들에게는 ‘영혼의 성지’ 라 불리는 곳.  폭우가 빚어낸 폭포수가 거대한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처음 그 바위를 독대했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 났다. 세상 모든 것들이 한 줌의 재로 소멸해 버린다 해도 이 거대한 바위는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 무한함을  품고 있다,라고 나흘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천천히 메모를 했었다. 


십여 년간 다닌 회사에 건강을 핑계로 과감히 사표를 냈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반복하면서 건조한 연애를 해왔던 사람에게 이별 통보를 보낸 날이었다.  겨울의 초입, 어지러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강풍이 불었다. 명료한 계획 없이 사표를 냈고 결혼이야기를 꺼내던 사람에게 딴에는 괜찮은 방식이라 생각하면서 평소 그 사람이 좋아하던 음반에 손 편지를 써서 보냈다. 오랫동안 생각한 일을 한꺼번에 그것도 같은 날에 치르고 난 후엔 불안과 쓸쓸함은 예견된 순서였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 보기 위해 택한 여행지가 울루루였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숙소에 머무는 사이 셀 수 없이 바위를 보러 갔다. 새벽에 큰 바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서 동이 트기를 기다렸고 저녁 무렵엔 붉은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거대한 바위만 바라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태양의 높이에 따라 다른 색깔로 변하는 바위의 실체는 이제껏 내가 보아온 그 어떤 것 보다도 압도적인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낮에는 9km에 달하는 둘레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바위의 모양새를 살펴보기도 했다. 바위 측면에는 나무들과 작은 풀잎들이 공생하고 있었다. 바위는 구름이 옮겨갈 때마다 어두워지거나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긴 손톱으로 사직서가 든  봉투를 읽지도 않고 꾹꾹 눌러 여러 번 접기를 반복하던 회사 대표의 일그러진 얼굴. 헤어지자는 이유를 당최 알 수 없겠다면서 편집증 환자처럼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던 남자. 잘난 아들이 나이가 꽉 찬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자존심이 무너졌다던  남자의 어머니. 한동안 나를 괴롭히던 이 모든 것들이 바위 둘레를 걷는 동안 뇌리를 스치기도 했다. 쌓여가는 회사일과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관성적인 만남을 칠 년이 넘도록 지속했던 어리석음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게 됐을 때 난 절망보다는 살아남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주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원했다.

울루루의 장대함에 빠져 매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는 사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상념과 분노들이 서서히 뭉개져버리는 듯했다. 예의 없던 회사대표와 헤어진 남자의 어머니, 이별하는 순간까지도 아이 같았던 남자, 모두 내게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고 위로하듯  그 바위는 금방이라도 거대한 몸집을 일으켜 나를 끌어안아줄 것만 같았다. 억겁의 세월을 거쳐 사막 한가운데서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실재함으로써 내 지친 영혼을 품어주기에 충분한 울림을 주었다. 

원주민들이 울루루를 신성하게 받들었듯이 나 또한 바위 앞에 설 때마다 경외심이 생겨났다. 거대한 바위 앞에서 난 그저 미미한 생명일 뿐이고 내 안에 움직이는 다른 형태의 번뇌들 또한 뭐 그다지 중요한 일처럼 생각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태양의 높이에 따라 다른 색깔로 변화하는 울루루의 신비스러움에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쓸데없는 감상일 뿐. 


나흘간의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든 울루루를 보았다.  어둠이 깔려 있을 때의 고즈넉한 형태와는 다르게 살아 있는 것들을 금세라도 빨아 들일 듯이 이글거렸다. 분명 비행기는 상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듯했지만 울루루는 멀어지거나 작아지지 않고 내 눈앞에 장엄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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