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변비 환자의 좌충우돌 생존기 (1)
타국에 나와 살다 보면,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까지 겪는 일이 다반사다. 지난 28년 동안 이곳에서 유난히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다. 덕분에, 나는 큰 문제가 닥쳤을 때 그것을 한층 의연하게 대처하고, 문제가 해결된 후의 회복 탄력성 또한 단단해졌다.
한때 만성변비로 큰 고생을 한 적이 있다. 호주에 온 지 약 4년쯤 되었을 때였다. 영주권을 받으려면 이곳에서 요구하는 직업군과 관련된 학부 과정을 이수해야 했는데, 그중에서도 학과 리포트를 쓰는 일이 나에게는 가장 큰 고역이었다. 한 학기에 네 과목을 이수해야 했고, 각 과목마다 네다섯 번씩 리포트를 제출해야 했다. A4 용지 열 장 분량의 리포트를 쓰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버거웠다. 어휘력이 부족하다 보니 참고문헌을 읽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는 데에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아마 그런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그 무렵부터 변비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만성변비 — 정말이지, 일상의 지독한 훼방꾼이었다.
전공 강의를 듣던 어느 날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가슴을 쇠덩이가 눌러오는 듯 답답했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나를 보고 옆에 앉아 있던 학생이 외쳤다.
“앰뷸런스를 불러야 합니다. 빨리!”
학생들이 우왕좌왕하는 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차가운 금속 침대 위에 실려 갔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산소마스크가 내 얼굴을 덮었다. 형광등 불빛이 눈을 찔렀고, 몇 명의 의사들이 들어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곧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담당 의사가 얼굴 가득 뭔가 신나는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미소를 띠고 내 앞에 섰다. 어쩐지 그 미소가 낯설고, 솔직히 말해 조금 불쾌했다.
“혹시 심장마비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나요?"
의사의 말투는 마치 농담을 하듯 가벼웠다.
“하하하, 이런 경우는 박물관에 보관해야 할 정도로 희귀합니다. 하하하.”
그가 엑스레이 필름을 들고 말했다.
“여기, 이 하얗게 흐려진 부분 보이시죠? 이게 흉부 전체를 덮고 있어요. 믿기 어렵겠지만, 가스입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가스? 내 몸 안에서 지금 내장기관들이 풍선쇼를 하고 있는 건가. 생각해 보니, 볼일을 시원하게, 제대로 못 본지가 이주를 넘긴 것 같았다. 몇 달째 변비약을 달고 살았지만, 효과는 찰나였다. 그동안 빠져나가지 못한 가스가 몸속 어딘가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결국 가슴으로 진격해 심장을 포위했나 보았다.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죽음은 거창한 병명으로 오는 게 아니라, 몸속의 가스처럼 조용히 차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사는 여전히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심장마비 환자인 줄 알았더니 만성변비로 기절할 뻔한 사람을 처음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눈물 날 만큼 굴욕적이었다.
결국 의사는 나에게 관장을 권했다.
“오늘 관장만 받고 퇴원하세요.”
죽을 만큼 괴로운 호흡곤란을 겪었지만 바로 퇴원할 수 있다는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들렸다. 내 몸 안의 모든 답답함이, 그 한마디로 설명되는 듯했다. 그날 이후 나는 진심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내 인생이 가스로 막히게 두지 않겠다고.
관장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었던 병실에 두 명의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들은 절차를 설명하며, 마치 식전 기도를 올리듯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제 하의를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으세요.”라고 말했다. 곧 내 신체 중 가장 비밀스러운 곳이 타인의 손에 맡겨질 것이다. 아, 수치심 같은 것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을 영원히 다시 뜨고 싶지 않았다.
간호사 중 한 명이 속삭이듯 말했다.
“곧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실 거예요. 옆으로 누워주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리며 낮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됐나요?”
의사는 마치 진정제를 대신 삼킨 사람처럼 차분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안정을 취하세요.”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고, 잠시나마 수치심이 눅눅히 녹아내리는 듯했다.
“We need music.”
의사는 music이라는 단어를 마치 노래하듯 발음했다.
“재즈를 좋아하시나요?”
관장을 앞둔 환자에게 던지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다. 좋아하긴 하지만, 지금은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하려던 찰나, 의사는 내 대답 따위는 기다리지 않고 간호사에게 “시디플레이어 눌러주세요”라고 했다. 신체의 가장 프라이버시한 부분을 타인에게 내어준 마음과, 그것을 다뤄야 하는 의사의 마음이 피아노 선율과 함께 공중에 부유하는 듯했다.
그래, 당신은 의사지만, 오늘 하루 중 제일 즐겁지 않은 일을 해야 하겠지. 그러니 음악이라도 있어야 하리라. 나는 굳은 몸의 힘을 천천히 빼고, 마침내 체념하듯 의사에게 몸을 맡겼다.
“괜찮으신가요?”
“Yes.”
“정말 괜찮으신가요?”
의사의 두 번째 물음에,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I like it.”
“하하, 솔직히 이렇게 성가신 관장을 좋다고 말한 환자는 당신이 처음이에요.”
의사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엥? 아니, 나는 관장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들려오는 음악이 좋다는 뜻이었는데, 상황이 우습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변명하려 애썼지만, 유창하지 않은 언어가 입안에서 미끄러지며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내 수치와 당황스러운 상황이 느린 재즈 속으로 녹아든 하루였다.
만성변비를 앓고 있는 브런치 작가님들이 계시다면, 변비약은 오래 복용하지 마세요. 집에서 쓰는 관장약도 오래 사용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냅니다. 제 경험을 조금 나누겠습니다.
저는 삶은 양배추와 셀러리를 들고 다니며 수시로 먹고, 키위는 하루에 네 개, 패션프루트는 세 개, 블루베리, 딸기, 사과를 혼합해 갈아서 아침 대용으로 마셨습니다. 과자 같은 것은 피하고, 대신 말린 자두와 무화과를 챙깁니다. 또 취침 세 시간 전에 미지근한 물을 30분마다 200ml 정도씩 마십니다. 잠을 잘 때는 배 위에 핫팩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또 배 주면을 시계방향으로 세게 마사지하듯 스무 번 정도 눌러주고 잠을 자면 가스도 배출됩니다. 아침에는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듯 오분정도 마사지를 하면 화장실에서의 성공률이 높아집니다.
매일 이 정도 루틴을 반복하니, 3개월 내로 장 건강이 좋아지고, 상쾌한 하루를 살 수 있었습니다.
재즈의 선율을 따라, 조금 민망했던 그 순간을 품위 있게 견뎌보려 했지만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당혹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버렸던 날을 추억하며, " Autumn In New York" John Coltrane과 Stan Getz의 연주 버전과 Louise Amstrong & Ella Fitzgeraldd의 Singing 버전으로 올려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c6CWfBgIt8
https://www.youtube.com/watch?v=50zL8TnMBN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