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세요, 나는 도둑이 아닙니다.

만성변비 환자의 우왕좌왕 생존기(2)

by 빠빠리

(주의: 이 글은 비위생적인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성 변비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이미 지옥행 열차 표를 끊은 것과 같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 시절 만성 변비와 싸우던 나는, 매일 나만의 '변비 사계명'을 읊곤 했다.


첫째, 제발 30분 이내로 끝내줘

둘째, 제발 아프지 않게 조금만 더 부드럽게 나와줘

셋째, 제발 중간에 걸리지 않고 쭉 배출해 줘

넷째, 제발 제발 중요한 일이 있을 땐 신호를 보내지 말아 줘.


그러나 인생은 절대로 내 편이 되어 주는 일이 없다. 밀레니엄 초기-내가 아르바이트로 하던 것은 인터넷카드와 국제 전화 카드를 매장에 유통하는 일이었다. 그날은, 파라마타(시드니 서부)의 쇼핑센터에 마지막 물량을 배달하고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슬슬 아랫배 깊은 곳에서 반가운 듯 반갑지 않은 신호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쇼핑센터는 5시에 문을 닫는데, 시계를 보니 약 40분 남았다.

‘좋아, 30분 컷으로 해결하고 나머지 10분 동안 매장을 들르면 완벽하다.’

큰 가방은 차 안에 두고 배달 물량만 들고 나는 마치 인생을 건 사람처럼 화장실로 전력 질주했다. 화장실에서 보낸 시간은 어느새 30분을 넘어 5시를 넘기고, 6시도 지나가고, 7시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삼십 분이면 끝날 거라 예측했던 볼일은 결국 두 시간을 넘는 마라톤 끝에, 염소의 그것과 친척쯤 되어 보이는 무언가를 배출하고서야 가까스로 마무리되었다.


오랜 사투 끝에 화장실 문을 나서니, 쇼핑센터 내부는 이미 완벽한 봉쇄 모드였다. 사방이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고, 심지어 자물쇠까지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어떻게든 그곳을 탈출해야 했다. 혹시나 해서 자물쇠가 잠긴 바리케이드를 양손으로 최대한 밀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바리케이드 아래쪽에 미세하게 벌어진 틈이 눈에 들어왔다.

'오, 나의 이 홀쭉한 몸매라면...?’
잠시 희망을 품고 바리케이드 밑으로 고개를 슬쩍 들이밀려는 순간, 저 멀리서 한 경비원이 마치 영화를 찍는 듯한 기세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멈추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그 안에서 꼼짝도 하지 마세요!"

나는 들이밀던 머리를 황급히 빼고, 바리케이드 안쪽에서 경직된 자세로 서 있었다.

“저… 저 도둑 아니에요! 사정이 있어서 화장실에 갇혔던 거예요! 아무도 없길래 그냥 여기로 빠져나가려던 것뿐이에요!”

경비원은 바리케이드 앞으로 다가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 상황에서 보자면, 나는 딱 ‘상가에 숨어 있다 들킨 액정카드 도둑’ 이 되었던 것이다.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뭘 훔치려 한 거 아닌가요? 지금 들고 있는 그것들, 어느 매장에서 가져온 건가요? 경찰이 올 때까지 당신을 풀어줄 수는 없습니다.”

경비원의 일그러진 표정은, ‘난 너 같은 유형 많이 봤다’는 단호함 그 자체였다.

나는 그 앞에서 변명한 줄 못하고, 진짜 난감함의 인간 표본이 되어 서 있었다.


얼마 후 두 명의 경찰이 도착했다. 경비원은 바리케이드의 자물쇠를 풀었다. 경찰이 나를 보며 물었다.

“당신 누구죠?”

그 한마디 질문이 왜 그리 나를 긴장하게 했던지, 나는 그 순간, 급히 ‘내 존재의 서사시’를 읊기 시작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고요, 어느 대학 몇 학년이고요, 전공은 무엇이며, 지금 이 액정카드를 판매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요, 오늘 파라마타까지는....”

경찰은 잠시 내 말을 듣더니, 표정 없이 말했다.

“이름 세 글자하고 생년월일만요.”

경찰은 이어서 사진이 붙은 신분증이나 은행카드, 건강보험카드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 순간, ‘아뿔싸’ 하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새어 나왔다. 들고 나온 건 오직 거래처에서 요청한 물건들 뿐. 신분증은? 지갑은? 모두 차 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나는 급히 경찰에게 말했다.
“제 차가 주차장에 있어요. 거기 제 신분증이 다 있습니다. 같이 가시면 제 신분을 증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경찰은 내 말을 단칼에 잘랐다.

“아니요. 더 조사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저희와 함께 경찰서로 동행하셔야 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외쳤다.

‘아니… 겨우 볼 일 보러 들어갔다가… 경찰서까지 가는 거야?’


공교롭게 핸드폰도 차 안에 놓고 온 상태였다. 그래서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도둑 아님을 증명해 달라고 부탁할 방법조차 없었다. 나는 궁지에 몰린 사람 특유의 절박함으로 경찰에게 다시 설명했다.

“제가… 사실 만성변비가 좀 있어서요. 오늘은 상태가 안 좋아서… 의도치 않게 화장실에서 오래 머무르게 됐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을 마음이 전혀 없는 눈치였다. 오히려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조롱 섞인 말투로 되물었다.

“두 시간을 넘게요? 아니… 그 정도면 그냥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볼일이 안 되면 나오면 되지, 왜 거기서 두 시간이나 넘게 앉아있었죠? 이해가 도저히 안 가네.”

그의 표정은 이미 ‘이 사람 말도 안 된다’로 굳어 있었다.
나는 변비의 고통과 이 인간의 고집 사이에서 진짜 억울함을 느끼며 속으로 외쳤다.

‘그걸 몰라서 묻냐… 변비는 나가라 해서 나가는 손님이 아닌데…’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들은 여전히 나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었다.



이 짭새 놈들아, 니들이 변비를 알아? 만성변비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운명처럼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게 돼 있어.

“두 시간을 넘게?” 하고 비웃는데—
어떻게 두 시간이 넘게 걸리냐고? 그걸 지금 나보고 설명하라고? 듣어봐, 잘 들어.

딱딱하고 묵직한 그것이 나오다가 중간에서 딱 멈춰버리면,
미간의 주름을 있는 힘껏 찡그려도,
숨을 ‘허억허억’ 몰아쉬어도,
그놈이 쉽게 나오지 않는단 말이다.

니들이 그 심정을 알아?

배는 뭉특하게 아파오고, 항문은 벌어진 채로 그 멈춰버린 덩어리의 무게를 온몸으로 지탱해야 하고,
상·중·하단에서 모든 고통이 신호탄처럼 올라와서 정신이 아득해진단 말이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두 다리를 변기 위로 올려 최대 출력으로 힘을 주다 보면,
이번엔 다리에 쥐가 나서 다시 자세를 바꾸고—
또 힘주다 편두통이 몰려와 머리를 화장실 벽에 기대어야 하고—

그렇게 지옥의 12 연속 자세 변화를 반복해야 하는
그 환장의 시간을…

니들이 아느냐고, 이 짭새들아.


내 내면의 절규를 당장 이들의 귓구멍에 쑤셔 넣고 싶었다. 아니, 어떻게 이 가녀리게 생긴 숙녀가 도둑처럼 보인단 말인가?

제기랄… 경찰 앞에서는 서른의 내 뽀송뽀송한 미모와 미인계가 단 1초도 먹히지 않았다.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면 오늘 밤 경찰서에서 **“변비 누명 씐 불쌍한 유학생”**으로 밤을 새워야 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경찰이 내게서 압수한 액정 카드. 그것은 마치 구름 사이로 내려온 후광처럼 빛나는 나의 구세주였다. 나는 즉시 경찰에게 말했다.

“이 회사 고객센터로 전화해 보세요! 거기서 우리 회사 세일즈 매니저 번호 알려줄 거예요!
그 사람이 제가 누구인지 증명해 줄 겁니다!”

경찰이 못 미더운 얼굴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드디어 나의 신분이 밝혀졌다.

전화를 받은 세일즈 매니저는 다짜고짜 소리쳤다.

“아니, 오늘 그 거래처에 물량 배달 가기로 해놓고 왜 경찰서에 계신 거예요??
5시쯤에 그쪽에서 컴플레인 왔어요!”

그제야 경찰들은 나를 도둑 취급하던 의심을 풀고 귀가 조치를 내렸다.


경찰서를 나서니 이미 열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밤거리는 적막했고,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있었다. 허기가 밀려왔다.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라, 오늘 하루 겪은 억울함과 피로, 끝없이 이어진 사투를 위로받고 싶은 허기였다. 주머니에 십 불짜리 하나가 잡혔다.

나는 마지막 희망처럼 보이는 한 식당을 향해 뛰어갔다. 무엇이라도 먹어야, 오늘의 억울함이 조금은 누그러질 것 같았다. 막 문을 닫으려던 식당 주인에게 이미 만들어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먹겠다고 했다. 다행히 식당 주인이 나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인도 식당이었다. 주인은 치즈 난과 병아리콩 카레를 내어주었다. 따뜻한 접시에서 올라오는 향이 코끝을 스쳤다. 스피커에서는 침울하고 구슬픈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는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억울함과 수치심이 뒤섞인 하루였다.

아… 잔인하고도 고통스러웠던 변비의 추억이여!


오늘의 BGM


인도 타밀나두 출신의 바이올린리스트, 작곡가 겸 지휘자인 Dr. L. Subramaniamdn이 1981년에 발표한 "Blossom"이다. Dr Subramaniamdn은 남인도 전통음악과 재즈, 퓨전 음악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나는 이 사람의 음악을 90년대 중반에 알게 되어 이 CD를 소장하고 있다. 이 음반은 Dr. Subramaniam의 퓨전 음악 역량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특히 재즈 거장들(Larry Coryell Herbie Hancock , John Handy) 과의 협업으로 유명한 음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QdbAOIm8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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