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동대문 평화시장은 1962년에 설립된 최초의 의류, 의류잡화 전문시장이다. 설립초기에는 소매위주의 상가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매업중심으로 변화하였다. 그 배경은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됨과 더불어, 흩어져있던 고속운송회사들이 통폐합이 되면서부터이다. 곧이어 동대문역과 동대문종합시장사이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생기게 되었다.(1977년에 서울시에서 고속버스노선을 모두 강남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이 부지는 주차장시설로 바뀌었다.)
이를 계기로 동대문에 상가들이 상권의 범위를 밑에 있는 지방까지 넓힐 수 있었고, 지방에서 올라와 대량으로 옷을 구매하는 소매상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주 거래고객이 낱장씩 구매하는 소비자에서 전국단위의 소매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평화시장은 경쟁력이 있는 시장임이 분명하다. 과거엔 더더욱 그랬다. 코로나사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전국에 있는 패션유통업을 하는 모든 도소매업자들과 해외 무역상들은 항상 이곳에서 물건을 사입하였다. 마치 서울에서 가장 큰 의류잡화 창고인 것처럼 거래하는 업자들에게 물류창고에 역할을 하였다. 방문하는 거래처들은 제품이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와서 물건을 사가느라 바빴다. 상인들은 주문을 받으면 물건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것이 주된 일이었다.
이 시장에 방문하는 거래처들은 아주 다양하다. 동대문시장 내 야간도매상가, 일본바이어, 지방도매상, 중소의류브랜드 등의 거래처들이 구매력이 큰 거래처이다. 이 유형의 거래처들은 과거에서부터 모든 제품들을 동대문 상권 내 시장에서 사입을 해왔다. 의류잡화품목은 주로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거래를 한다. 이들은 각각 제품을 유통하는 범위가 아주 다양하다. 예를 들어 야간시장 도매상들은 그 상가에 방문하는 온라인, 오프라인 의류업체들에게 영업을 한다. 그중에서는 해외무역상도 포함되어 있다. 지방도매상들 역시 해당지방의 도매시장에 방문하는 온/오프라인 의류업체들을 중심으로 도매영업을 한다. 일본 무역업체들은 일본의 제품전시회에 참가하여 제품을 수입하고자 하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B2B(기업 간의 거래 : Business to Business) 영업을 한다.
따라서 평화시장의 제조능력을 갖춘 도매상들과 거래를 한다면, 한국에서 생산한 저렴한 단가대비 높은 품질의 제품으로 그들만의 유통경로를 통해 끊임없이 판매할 수 있었다.
또한 국내제품 말고도 국내에서 저렴하게 생산할 수 없는 소재와 재료로 만든 제품들은 중국의 에이전트를 통해 수입해 와서 판매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실크, 울, 캐시미어, 모직제품 같은 국내에서 공급이 쉽지 않은 소재나 생산공정이 국내방식과 다른 제품들은 모두 중국 거래선과 연결되어 제품공급을 받는다. 평화시장의 상인들은 각자 연결되어 있는 중국의 에이전트를 통해 중국공장과 연락하여 제품소싱을 하게 된다.(제품소싱: 판매할 제품을 공장과 거래를 통해 구하는 것) 실크스카프와 모직제품, 그 외 중국생산기반의 다양한 잡화상품도 상인들 각각의 매장에 진열을 하고 영업을 하게 된다. 수입품이지만 이 역시 신상품이 들어오는 대로 언제나 분주하게 팔렸다. 이러한 흐름은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2019년까지 계속되었다.
보통 평화시장의 영업시간은 1층 과 2,3층이 전부 다르다. 1층은 보통 오전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하는 매장,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는 매장, 24시간 주야간동안하는 매장 이렇게 나눠져 있다. 타 야간도매시장과는 달리 평화시장이 이렇게 매장마다 영업시간이 상이한 이유는, 정해진 규율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타 야간 도매시장의 경우 상인들에게 지각여부, 품목중복여부, 매장별 인테리어칼라 등 강도 높은 규율과 규제로 상인과 매장을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화시장은 동대문 패션유통시장 중 가장 오래된 시장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앞서 말한 강도 높은 규제는 없는 편이다. 또한 한 곳에서 최소 30~40년 이상 장사를 이어오는 상인들이 많은 편(소위말해 짬이 있는)이라 새로운 규율 같은 것들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상인의 입장에서 분주했던 2019년까지의 시기를 떠올려본다. 영업시간마다 하는 일이 다른데, 오전 9시 이후부터 오후 6시 시간대에는 주로 일본무역에이전트, 일본바이어들, 국내중소의류브랜드, 온라인쇼핑몰, 서울지역 매장운영자들이 주로 전화주문, 카톡주문을 하거나 방문하여 물건을 사입에 갔다. 현재필자는 시장상인으로서 특정 의류잡화 도매매장을 총괄하는 운영자이지만 그 당시는 3년 차 직원이었다.
주간업무의 주된 고객이 무역업자나 중소규모의 브랜드들이다 보니 보통 라벨작업을 많이 요청한다. 브랜드라벨, 케어라벨, 택작업 등 라벨부자재를 받으면 봉제공장에 요청한 위치에 라벨 작업을 맡긴다. 동대문시장 내 봉제공장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평화시장옆에 동화상가 3층, 신발상가, 창신동 등 근처에서 봉제를 하는 경우도 있고 경기도지역에 따로 봉제공장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루종일 주문분에 대해 포장을 하고 준비를 해놓으면 준비된 물품은 픽업을 하거나 퀵으로 발송한다. 퀵발송을 할 때에는 동대문시장에 활동하는 퀵기사님들 중 우리 매장이 자주 사용하는 퀵삼촌(퀵기사님)을 불러서 발송하게 된다. 보통 중구, 동대문구 일대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퀵기사님들이다. 이렇게 주간업무는 하루종일 포장하고 주문분 중에 부족분은 국내공장 혹은 중국공장에 리오더(재주문)를 하는 업무로 주간업무를 마무리한다.
필자는 야간시간 업무경험이 많이는 없지만과거에 잠시동안 해보기는 했다.시장야간업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야간시장의 주된 고객은 동대문시장 내 야간도매시장 업자들이다. 패션잡화를 판매하는 도매업자들은 보통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물건을 사입한다. 이 글 두 번째 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치 창고의 역할을 하는 듯이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들러서 물건을 사입해 간다. 물건을 포장, 재고를 파악, 주문분에 대해 픽업을 하거나 야간퀵삼촌을 불러서 배송한다. 동대문엔 야간도매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어 주간시간 때보다 바쁠 때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7년 차인 현재 유통사업운영자로서 이 시기를 떠올리면 잠재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활동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매장에 죽치고 앉아만 있으면 자동적으로 고객유입이 되는 특이한 사업의 운영이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때처럼 앉아만 있어도 자동고객유입이 되는 시스템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동대문상인으로서 코로나사태 이전 필자가 경험한 동대문패션 유통업시스템은 이렇게 운영되었다.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글이라 매우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실무자의 입장에서 동대문 유통시스템에 대한 것을 간략하게나마 적어보았다. 지금생각해 봤을 때 동대문시장의 유통시스템은 그야말로 단순하지만 강한 유통망들이 갖춰져 있는 형태의 시스템이었던 것 같다. 복잡하진 않더라도 오랜 시간의 갖춰진 유통망 안에 있다 보니 굳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제품에 대한 준비만 잘해도 높은 매출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동대문시장과 그 이후의 동대문시장의 시스템 양상은 크게 변화되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위 내용 말고도 시기별로 동대문시장들이 영업하는 방식과 역사들, 상인들의 유형들, 동대문시장의 영업과 마케팅, 동대문시장의 위기와 기회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이야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