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보탄 연구소 ( 자두를 보고도 감탄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 #2
그날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았다.
대학교 선배의 세평 남짓한 자취방은 레지스탕스의 아지트처럼 하필이면 비장하게 느껴졌고,
브라운관과 VTR 일체형인 TV로 본 그 영화의 *옴니버스식 구성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 영화는 다른 영화 찍고 난 짜투리 필름으로 찍었단다.
하필이면 사실인지 알 수도 없는 그 정보마저도 멋있었다. 이런 게 헝그리구나.
*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 여러 편을 엮여내는 이야기 형식
그 다음 주 부터 노래방, 편의점, 파칭코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영상용 카메라를 사기 위해서였다.
하필이면 6mm 캠코더의 개인화 시대가 도래했던 시기였고 이 작은 테잎에서 구현되는 멋진 화질은
VHS 비디오 테잎에 익숙했던 내 눈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시급 800원 미만이었던 시절, 아무래도 400만원 넘는 거금을 마련하기엔 알바비가 부족해서
비교적 많은 일당을 받는 공사현장 잡부 일을 뛰게 되었다.
그 현장에서 스타일리쉬한 미장장이 아저씨를 만났는데 하필이면 젊은 시절 영화 학도였고
오후 5시 즈음 철재 H빔에 걸터앉아 담배를 물고 노을지는 태양의 역광을 받으며 이런 말을 했다.
“임마~! 사람 몸뚱아리 중에서 제일 게으른 데가 어딘 줄 아나? 눈인 기라. 그라믄 제일 부지런한 데는?
그래! 바로 손인기라! 영화는 손으로 찍는기라.”
하필이면 이 말에 감동을 받다니..
그리고 두 달을 꼬박 일하고 마침내 6mm 전문가용 캠코더를 손에 넣었다.
그날 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캠코더를 끌어안고 잤다.
그 후론 무엇이든 찍었다.
부산 광안리 공터에서 드럼통에 불을 피워놓고 미국 디트로이트 뒷골목의 느낌도 찍고, 깽단이 마약하는 장면도 찍고, 자갈치 시장 뒷편에서 배로 밀거래 하는 장면도 찍었다. 외국 뮤직비디오 패러디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뭐가 그리 불만 투성이었는지 온통 세상의 부조리만 찍어댔고 정통 조선사람인 친구들은 흑인들의 알 수 없는 걸음걸이와 재스쳐를 따라해야 했다.
부산의 뒷골목은 하필이면 부조리를 표현하기에 알맞은 그런지한 멋이 났고 나는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해운대 뒤편에 무리지어 있는 매춘현장을 고발하고 싶었다.
굳이 장르로 치자면 타큐멘터리 영화라고나 할까?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선배형과 City200 쌀집 오토바이를 빌려서 타고 골목안으로 들어갔다.
요상한 빛깔이 감도는 유리벽 안에는 짙은 화장을 한 언니들이 즐비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카메라를 꺼내어 찍었고 이내 검은 정장차림의 덩어리들이 욕을 하며 튀어 나왔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망둥이처럼 오토바이에 뛰어 올랐고 해운대 동백섬 뒤쪽으로 내 달렸다.
하필이면 그 순간이 마치 영화 천장지구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고 머릿속으로는 천장지구 OST 주제곡이
자동으로 플레이 됐다.
몇 분을 달렸을까?
갑자기 미끌하더니 내 몸은 공중 3미터 정도로 날랐고 세상은 슬로우모션으로 변하며
지나온 20년 세월의 조각들이 슬라이드 빛을 내며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바닥에 떨어졌다. 손과 발이 제대로 움직이는지부터 확인했다.
거창하게 느꼈었지만 옆에서 봤다면 오토바이가 살짝 미끄러지며 넘어진 정도였겠지.
달빛 스민 하늘에 실루엣으로 살랑거리는 해송이 나를 데릴러 왔다가 다시 돌아서는 저승사자의
옷자락 같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선배형이 외쳤다.
“야야. 하늘봐봐”
하필이면,
동백섬 검은 바다 위로 별똥별 하나가 긴 꼬리를 휘날리며 떨어졌다.
하필이면들의 합.
나는 지금 16년 째 영상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 형은 어떻게 됐냐고?
파라마운트 배급사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