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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k DEE Feb 07. 2022

기억 한 조각

아이스크림

1986년. 부산 사직동.

그러니까 내가 우리 딸아이보다 조금 더 클 때

시장 골목에서 철물점을 하던 우리집 앞에는

“시장수퍼마켓”이 있었다.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이나 빵빠레 같은  당시 유명한 아이스크림은  기억에 300 즈음으로 새우깡이나 자갈치 같은 과자가 100원하던 것에 비하면 비싼 군것질거리였다.


아버지가 엄마 몰래 담배 “솔”을 사오라고 시키신다.

 다음엔 “주리(거스름돈) 남으면 하드 하나 사무라하신다. 쓰레빠를 번개같이 신고 시장수퍼 아줌마에게 쫒아가서 “아줌마  하나요한다. 적솔과 청솔  청솔을  번더 외치는  필수 사항이다.


그리고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로 쪼로로 달려가 칠성사이다 녹색 플라스틱 박스를 딛고 올라서서 위로 여는 미닫이 문을 드륵 열고는 망설임도 없이 빵빠레를 집었다. 매우 더운 날엔 잠시 냉장고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있기도 했었다.


그렇게 획득한 빵빠레는  누구와도 공유할  없는 것이라 3 어린 동생의 눈을 피해 우리집 뒷마당 철재 사다리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물탱크로 가리워진 그늘에 누워 둥실둥실 떠가는 뭉게구름을 보며 할짝할짝 먹었다.

한 낮의 햇볕을 받은 콘크리트 바닥의 뜨뜻함은 시원한 그늘과 묘한 대비가 되었다.


절대로 한 입에 베어 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빵빠레는 하얀 아이스크림 자체가 고급스러운 밀키함으로 너무 맛있었지만 특히 손잡이 과자부분이 눅진해졌을 , 그것을 뜯어 먹는 맛이 그만이었다.


그것은 할짝이며 핥아먹어야만    있는 ‘기다림의 味학이었다.



35년이 지난 지금.

 딸아이가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것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손잡이 과자가 눅진해 지기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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