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공간

창작욕구가 샘솟는 공간을 만드는 방법

by 녹지

"나도 언젠간 저런 집에..."


평소 인테리어와 리모델링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인스타그램이나, 오늘의 집 어플에서 마음에 드는 공간 사진을 발견하면 저장을 누르곤 한다. 저장해둔 사진을 다시 꺼내 보거나 하진 않지만, 저장을 누르는 순간에는 늘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진을 저장한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는 늘 하고 싶은 일들이 포함되어 있다.


"나도 언젠간 이런 집에 살아야지. 예쁜 책상에서 햇빛 받으면서 그림 그리고 싶다."

"내 집이 생기면 꼭 예쁜 찻잔 모아서, 손님 초대하고 모임 가져야겠다."


이렇게 저장된 집 사진들만 해도 족히 100장은 훌쩍 넘기지 않았을까. 내 갤러리엔 100개의 방들이 언젠간 내 방으로 탄생되길 기다리며, 먼지가 잔뜩 쌓여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 초년생이 그렇듯, 나만의 집을 가지고, 집을 리모델링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참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렇게 건드리지 못했던 내 공간의 모습은 늘어나는 인테리어 사진과는 달리 여전히 제자리를 걷고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펴진 꽃 벽지들, 꿈꾸던 감성과는 다른 체리 몰딩, 원하지 않는 가구들까지.


그러나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아주 까마득한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적어도 10년은 훌쩍 지나야 할 텐데, 10년의 시간을 원하지 않는 공간에서 보내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시간들이 아닐까. 더군다나, 내 공간이 생기면 해야지 하고 떠올렸던 일들조차, 집과 함께 머나먼 시간으로 함께 떠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이 공간의 제약에 묶여 함께 떠나버리고 말 것이다. 더 이상 내 꿈까지 함께 나중으로 미룰 순 없었다.



"작은 공간이면 뭐 어때!"


생각해 보면 집의 모든 공간을 바꿀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필요한 곳은 그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책상 위 에쁜 공간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상 위 조그마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라탄 무늬의 바구니에 아기자기한 스티커들을 모아두었고, 손을 뻗으면 언제다 기록하고, 그릴 수 있는 예쁜 노트들을 나란히 세워두었다. 마음에 들지 않던 책상은 공간이 따뜻해 보일 수 있도록,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천을 구입해 깔아두었으며, 언제든 그 자리에서 좋아하는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코스터와 차의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그 외 내가 좋아하는 작은 소품들로 책상 위 공간을 꾸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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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책상 꾸미기지만, 집 안의 한 곳만이라도 내 취향을 담아 독립된 공간을 꾸미고자 했다.

다른 공간의 불은 끈 채, 그 공간에만 노란빛의 스탠드 조명으로 밝히면 우리 집에서 분리된 것 마냥 완벽한 내 공간이 탄생할 수 있다. 그곳이 있다면, 나는 10년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도 당장 창작의 시간을 이 책상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이런 작은 나만의 공간만으로도, 나의 창작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음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승희 작가님의 "기록의 쓸모"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적어도 내 집에서만은 내가 가장 돋보이기를 바란다. 나를 둘러싼 것들이 철저히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수단'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는, 나를 나타내는 것들로 둘러싸였기 때문에, 가장 나다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으며, 나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비록 그것이 내 두 손만 올라가는 작은 공간일지라도 말이다. 공간의 크기는 상관없다. 그저 내 욕구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떤 분위기를 원하는지 그것만이 중요하다.


나만의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 취향과 욕구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의 물음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분위기를 원하는지 이 모든 것은 공간을 이루는 데 하나의 컨셉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와 연관된 키워드들을 가지 치듯 뻗어나가 보았다. 이런 분위기들을, 이런 욕구를 키워드화해보면 내가 어떤 것들을 원하는지 한눈에 보기 쉽다.


Ex) 따뜻한 그림 작업을 하고 싶은 공간

#따뜻한 분위기 #캔들이 어울리는 곳 #노란 조명 #원목 #귀여운 엽서 #따뜻한 색


내가 좋아하는 것, 또는 내가 원하는 욕구와 관련된 것들을 위와 같이 키워드화한다. 그것은 색깔이어도 좋고, 물건이어도 좋고, 음악이 되어도 좋다. 최근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컴백홈'에서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임성빈씨가 고객이 원하는 분위기를 파악하고자,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질문하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좋아하는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면 좋아하는 음악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만의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것의 핵심은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미디어 속에는 예쁜 공간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그 공간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예쁜 공간"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벗어나, "나"에 집중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돌아보고, 나를 나타낼 수 있는 것들로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 오늘 예쁜 공간을 발견했다면, 그 공간처럼 나중에 만들어야지 하고 다짐하지 말고, 지금의 나의 공간을 구성할 하나의 키워드나 레퍼런스로 남겨둬 보는 것은 어떨까.


나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나만의 세계를 넓히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것들은 나의 정체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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