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 먹는 게 제일 싸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조개를 잡아봤다. 성산 근처 바다에 가면 바지락이나 비단조개를 캘 수 있다고 들었는데 조개잡이를 흔쾌히 허락해줄 동행을 구해 바다 물때를 맞춰 찾아가는 일은 꽤 번거로워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었다.
제주, 조개라는 검색어로 조회를 해보니 성산 오조리와 구좌읍 하도리 해변에서 조개 잡이를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바다 타임'이라는 물때 시간표를 보니 성산에는 오후 2시쯤이 간조였다.
조개 캐기에 적합한 조개 갈퀴 같은 게 있으면 좋았겠지만 단 한 번의 조개 캐기를 위해 장비를 구입하기는 좀 그래서 회사에 있는 텃밭 동호회에서 호미를 빌려왔다. 조개를 잡아넣어둘 손잡이 달린 양동이도 하나 챙겼다.
1시간여 운전을 하며 가는 내내 '봉골레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잡을 수 있으려나? 봉골레를 만들고도 조금 남는다면 해물 된장찌개를 한 번 끓여볼까?' 하는 허황되고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오조리 해변 앞에 가니 몇 가족이 나와 벌써 조개를 잡고 있었다. '오오 역시! 노다지다, 캐기만 하면 나오겠지'하는 부푼 기대를 안고 발 벗고 해변으로 나섰다. 어디를 캐야 할지 몰랐지만 내 고향 6시였는지 어디선가 '숨구멍을 파면 조개가 있다'는 어설픈 지식으로 여기저기 호미질을 해봤다.
진흙을 파내고 손으로 살살 만지니 작은 돌덩이 같은 게 만져진다. 물로 씻어 보니 조개다. '와- 진짜 잡히는구나'하며 흥이 났다. 오늘 이 구역의 조개는 모두 잡겠다는 야망이 일었다.
예닐곱 번 호미질을 해 손에 무언가 잡히면 조개였다. 마트에서 사 먹는 조개보다 사이즈는 조금 작아도 살아있는 조개가 내 손에 잡힌다는 게 너무 재밌었다. 뻘 반 조개 반은 아녔는지 조개는 내가 지치지 않을 정도로만 간간히 나왔다. 아예 안 잡혔다면 일찍 손을 털었을 텐데 인내심이 바닥날 때쯤 하나씩 나와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생각으로 1시간을 캤다.
먼저 조개를 캐던 사람들의 장비를 보니 호미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조개를 캐는 갈퀴였다. 바닥을 스윽 긁으면 갈퀴에 조개들이 걸려 나왔다. 역시 무엇을 하든 '기본 템빨'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계속된 호미질에도 조개가 잡히지 않자 바닷게 '깅이'도 몇 마리 주웠다. 깅이는 제주방언으로 '게'다.(TMI로 협재에 '비양도'라는 섬이 하나 있는데 그 섬에 있는 '호돌이식당'에 '깅이무침'이 맛있다.) 평소 같았으면 잡지도 못했겠지만 오늘은 고무 소재의 장갑을 끼고 있으니 거침없이 깅이를 만질 수 있었다.
물이 슬슬 들어오는 게 보였다. 사람들은 물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곳을 골라 막판 스퍼트에 힘을 냈으나 전에 없던 빈혈 기를 느낀 나는 얼른 마무리하고 나왔다.
잡은 양이 적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애매한 양이었다. 함께한 여사님은 '이제 마트나 시장에서 파는 조개 비싸다는 이야기를 말아야겠다'며 계속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얼른 도구를 정리하고 차를 몰아 종달리 쪽으로 달렸다. 종달리 쪽 해변도로에 길가에 오징어를 말리는 휴게소가 있는데 이 곳에서 오징어를 사면 즉석에서 구워준다. 힘든 노동이 끝난 뒤에는 피로회복 물약(맥주)을 한 캔 먹어줘야 집으로 돌아갈 힘이 날 것 같았다.
우도가 정면으로 보이는 휴게소 간이 좌석에 앉았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게 야외에 앉아 있기 딱 좋았다. 석쇠에 구운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평소에는 찾지 않는 국산 맥주를 한 모금 쭉 마시니 '조오타아'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저녁으로 봉골레를 만들어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 날 잡은 조개는 검은 봉지를 씌워 하룻밤 해감을 시켜야 먹을 수 있다고 여사님이 말했다. '엇, 오늘 오후에는 양동이 가득 조개를 캐서 저녁에 인당 30개의 정도의 조개가 들어간 무지막지한 봉골레를 만들어 차가운 샤도네이와 함께 먹으려고 했는데..' 역시 기대와 현실은 늘
다르다라는 걸 한 번 더 체감하며 언제나 기대만큼 현실에서도 시원하고 맛있는 맥주만 홀짝홀짝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