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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Sep 20. 2018

나의 첫 제주집

모든 로망이 실현되었던 그 곳

제주도에 오기 2년 전 집에서 처음으로 독립해 혼자 살기 시작했다. 누구의 간섭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 생활을 해나가는 기쁨과 재미가 있었다. 머리카락이 여기 저기 굴러 다녀도 좋고 샤워하고 나와 쓸 새 수건이 없어도 그마저 재밌었다. 독립한지 오래된 사람들은 '그래도 부모와 함께 살 때가 좋은 거야'하며 지금 그 기분이 얼마나 갈지 다 안다는 투로 말하곤 했다. 독립한지 5년차가 되는 나는 아직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얼른 자기만의 공간을 찾고 그 재미를 느껴보라고'


처음 살던 곳은 분당의 한 공원 근처 빌라촌이었는데 아는 선배가 살던 곳이라 쓰던 침대며 집기같은 것들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혼자 살기 적당한 크기였고 원룸 치고는 큰 베란다도 있어서 잡동사니도 모두 수납이 가능했다. 한 동안 만족하며 살았지만 못 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방과 거실이 분리 되지 않은 'one room'이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해 먹었을 때 음식을 맛있게 먹고 침대에 누워 쉬려고 하면 침구에 베어 있는 음식 냄새(전문용어 짬내)가 거슬렸다. 벗어 걸어둔 겉옷에도 냄새가 베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집에 사람이라도 놀러오게 되어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려면 화장실로 가야했다. 살면서 분리된 공간의 필요성을 점점 더 느끼게 됐다.  


제주도에는 2016년 4월 말에 오게 됐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제주도에도 지사가 있는데 제주도에 있는 팀에서 사람을 뽑는다길래 직접 자원 후 내려오게 됐다. 제주도에 간다고 하니 다들 좌천된 것이냐며 안타까워했다.(아니 지금이 구한말도 아니고)


회사에서는 사택을 제공하지도 않고 방을 얻을 수 있도록 금전적 지원도 없기 때문에 온전히 내가 알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보통 근무지 이동을 하기 전에 집을 먼저 얻는다는데 뜨내기가 살아보지도 않고 덥썩 집을 구하는 건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해서 일단 캐리어 2개만 챙겨서 제주도에 오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회사에 딸린 숙소를 최대 한 달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달 동안 살아보면서 원하는 동네와 집을 찾아봐야지 싶었다. 

캐리어 2개로 시작했던 제주살이

그런데 내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팀원들은 내가 지낼 동네를 이미 정해놨다며 동네도 찍어주고 직접 둘러볼 집도 찍어줬다. 어어.. 이게 뭐지 싶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먼저 이주한 입장으로써 집을 마련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이지 잘 알기 때문에 발 벗고 나서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제주에 온지 일주일만에 팀원들이 골라준 집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 집은 새로 생긴 주택단지 안에 있는 신축빌라의 3층집이었다. 처음에는 2층 매물이 있어서 보러 갔으나 2층집은 전 주에 나갔고 3층이 비었으니 구조나 보라고 했다. 집을 짓고 아직 아무도 살지 않았으니 모든 게 깨끗했고 가벽이기는 하지만 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더욱 좋았다. 별 다른 살림이 없는 내게 맞춤식으로 모든 집기와 가구들이 옵션으로 구비되어 있었다. 임대인이 꽤 젊은 사람들이라 내부 인테리어도 현대적이었다.(체리 몰딩이 없다는 이야기) 꼭대기층이라 복층 다락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경사가 꽤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 봤다. 


오.마이.갓. 아래층 거실만한 복층 다락방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가 낮지 않아 양 끝을 제외하고는 서서 다닐 수 있는 정도의 층고였다. 삼각형 지붕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여길 보자마자 그 동안 꿈꾸던 음악감상실을 꾸며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지붕이 없는 발코니가 있었다. 저 멀리 제주항이 보였다. 코딱지 같은 오션뷰지만 어쨌든 바다가 보인다는 게 좋았다. 생각했던 예산을 초과했지만 그래도 꼭 이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경사 30%의 계단을 올라가면 나만의 음악감상실이 나온다
코딱지 오션뷰 우리집

집을 본 바로 그 날 계약했다. 여러 집을 둘러보기로 했지만 다른 집을 봤자 이 집이 더욱더 좋아질 것 같았다. 제주는 12개월 월세를 한 번에 내는 '연세'라는 독특한 부동산 계약 방법이 있어서 나는 큰 돈을 바로 당일에 넘기고 입주 일자를 바로 정했다. 


이사가 결정된 후 육지에 있던 나의 짐이 제주로 내려왔고 거의 한 달을 집을 정리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 전에 살던 집이 별로였던 건 아니지만 왕복 8차선의 도로 앞에 있던터라 항상 자동차 소리가 끊이질 않았었다. 하지만 이 곳은 늘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발코니에서 보는 해질녘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집 발코니에서 보던 매직아워의 하늘. 다시 봐도 아름답다. 

이 곳에 와서 집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게 됐다. 그 전까지는 내가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여유로운 공간과 탁 트인 조망권'이 있다는 건 삶의 질을 상당 부분 높여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주에 와서 살게 된 것도 좋았지만 이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어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는 나를 보고 팀원들은 집에 꿀단지가 있냐고 했다. 회식도 마다하며 뒤도 안돌아보고 집에 가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집에 꿀은 커녕 설탕도 없지만 이 집이 주는 달콤한 휴식과 안정감이 좋았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면 아무도 없는 집에다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집~ 잘 있었어? 나왔엉~"


언제 어디에 살든 나는 이 집을 계속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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