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해피라는 강아지가 있었다. 나랑 15년을 살았던 해피는 내가 20살 되던 해에 눈을 감았다. 이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나는 일주일을 학교에 가지 못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딘가에서 해피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2009년 1월, 10살 생일을 맞은 둘째 아들이 강아지를 사달라고 강력히 졸랐다. 해피를 보내고는 반려동물은 엄두가 나지 않아 매번 묵살해 왔는데.
강아지를 좋아하던 남편도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당장 분양 안 받더라도 보기만 하자고 나를 재촉했다. 나는 구경만 하고 아들에게는 강아지 인형을 선물할 요량으로 애견 샵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강아지를 키우면 힘든 점들, 이를테면, 배변 훈련, 강아지 밥 주기, 매일 산책 시키기, 목욕시키기 등등을 쉼 없이 떠들었다. 아들도 남편도 말이 없었다.
애견 샵에 도착하니 강아지가 많았다. 나는 일부러 무관심하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를 보고 깡충깡충 뛰어오르는 곱슬머리 하얀 아이랑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났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뭔가 운명 같은. 홀린 듯 아들은 이미 그 아이 앞에 서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까스로 그 아이를 떼어놓고 마트로 향했다.
물론 아들은 강아지 인형 따위를 살 마음이 없다. 차 안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남편은 진짜 내가 강아지 뒤치다꺼리가 싫어서 분양을 안 받는 줄 알고 강아지 관련 모든 일은 자기가 하겠다고 침묵을 깼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들은 자기도 열심히 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운명처럼 하얀 푸들 미미는 그렇게 우리 집으로 왔다.
애들은 학교, 남편은 직장, 나까지 볼 일이 생기면 나가야 하는데 내게 달라붙는 어린 미미를 혼자 두고 나갈 수가 없었다. 때마침 지인의 반려견이 새끼를 낳아 분양한다고 했다. 한 마리가 더 있으면 같이 놀면 되니 더 낫겠다 싶어 데리고 온 아이가 갈색 포메라니안 미나다. 확실히 두 마리가 같이 있으니 둘은 잘 놀고 잘 지냈다. 미미는 애교도 많고 샘도 많아서 늘 관심을 독차지했다. 밥도 주자마자 순삭하고 잔반처리사 1급 자격증이라도 있는 건지 미나가 먹고 남긴 밥까지 금세 처리했다.
항상 내 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미미
미미는 조금만 미나를 이뻐하는 것 같으면 빈정이 상해서 보란 듯이 거실 여기저기에 실례했다. 가족들이 누구든지 잠깐만 나갔다 들어와도 버선발로 뛰어오는 ‘님’처럼 서둘러 뛰어오다 넘어지기 일쑤였고, 산책하고 싶으면 걸려있는 목줄에 자기 머리를 끼우고 빨리 나가자고 발을 굴렀다. 말귀도 잘 알아들어서 안 된다고 하면 포기했고 짖지 말라면 안 짖었다.
둘째가 집에서 피아노를 치면 미미는 피아노 소리에 질세라 더 크게 하울링을 했다. 둘째는 미미랑 단짝이 되었다. 온종일 싸우고 화해하고 귀찮아하다가 놀고 또 싸웠다. 싸움의 원인은 주로 미미가 둘째의 소중한 물건에 테러를 저지르기 때문이었는데, 둘째는 미미를 혼내다가 문득 미안했는지 또 사과하고 다시 놀고 늘 그런 식이다. 둘째가 ‘미미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해서 연주할 때 미미가 피아노 옆에서 하울링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내 인생의 명장면이었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흐르고 미미가 아프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자궁 축농증과 항문낭 수술을 했고 인지장애도 생기더니 올해 여름에는 췌장염으로 인한 당뇨가 왔다. 동물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하루에 한 번 인슐린 주사를 놓았다. 십 분마다 아무 데나 쉬를 하는 바람에 기저귀를 채웠다. 밥은 그럭저럭 먹는데도 5㎏이 넘던 미미가 급속히 마르기 시작하더니 2㎏이 되었다. 종잇장처럼 가벼워진 만큼 남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우리 가족은 알아가고 있었다. 언제 미미가 떠날지 모르니 가족 중 한 명은 늘 집을 지켰는데, 휴학 중인 둘째가 그 몫을 했다.
2020, 11월 25일, 밤이 되자 미미가 늘어지면서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시간을 미미 혼자 두기 싫어 내 침대로 미미를 눕혔다. 입이 마른 지 마른 혀를 내두르기에 물을 먹었다. 물 한 모금도 넘기기 힘든 미미는 그 한 모금의 물을 마시는 데 이십 분이 걸렸다. 그리고 이내 가느다란 숨을 쉬며 잠이 들었다. 나는 미미의 숨을 확인하느라 잠들지 못했다.
아침까지 미미가 살아있음에 안도했다. 점심때가 되자 둘째는 집 앞에 국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미미가 걸렸지만, 잠깐이면 먹고 올 테니 괜찮겠지, 싶었다. 나가려는 나를 보고 끙끙대는 미미에게 벗어놓은 내 수면 잠옷을 덮어주었다.
“미미야, 금방 밥 먹고 올게. 엄마 냄새 맡고 잠깐 있어.”
돌아와 보니 미미는 내 잠옷 속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둘째는 미미를 품에 안고 오열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동굴 깊은 곳에서 나오는 비명 같은 울음이었다. 나는 오열하는 둘째를 보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별은 준비한다고 그 슬픔이 반감되진 않았다. 그날 밤 9시. 애견 화장터에서 우리 가족은 눈물을 흘리며 미미를 떠나보냈다.
집에 오자 영문을 모르는 미나가 뭔가 불안한지 자꾸 현관 앞을 서성이며 현관문을 바라본다. 미미가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갔다는 설명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 미나를 안고 애꿎은 머리만 계속 쓰다듬었다. 나는 늘 미미랑 산책하던 산길에 미미를 뿌리자고 했다. 둘째는 재가된 미미를 가슴에 품고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일광욕하는 미미
이틀을 식음을 전폐한 둘째는 사흘 만에 방에서 나와 미미가 든 유골함을 해가 드는 곳에 두고 뚜껑을 열었다. 일광욕을 좋아하던 미미를 생각하며.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란 말을 봤는데,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땐 내가 미미보다 더 미친 듯이 달려가 미미를 반겨줄 텐데. 미미를 보내고 냉장고에 붙은 미미 사진을 보며 백번도 더 했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