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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Dec 24. 2018

'음주 뺑소니'가 앗아간 삶...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

싱어송라이터 고 김신영 추모 콘서트, 그가 외롭지 않길.

가수 ‘김 신영의 추모 콘서트’에 다녀왔다. 그는 작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싱어송라이터다. 그의 나이 겨우 31세. 그가 생전에 만들어 놓은 곡들을 모아 주변의 음악가들이 편곡하고 노래를 불러 녹음했다. 가난한 음악가에게 펀딩으로 돈이 모아지고 그가 살아생전에 만들지 못했던 첫 번째 앨범이 동료 음악가들에 의해 탄생했다.   

                                                                   

나는 인디밴드의 음악을 잘 모른다. 신영을 알게 된 것은 작년 어느 글쓰기 모임에서였다. 첫 수업시간, 얼굴이 창백하고 하얗고 수염이 거뭇거뭇한 한 청년이 자신을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하며 좋은 가사를 쓰고 싶어서 수업에 참가했다 고했다. 그는 단 두세 번의 수업에 우리 반 다크호스가 되었다. 요상한 문체와 예상치 않은 순간에 빵 터지게 하는 유머, 그리고 진정성과 진지함을 지닌 그의 글에 학인들은 매주 감응했다. 그가 어느 날 신영에 관한 글을 다음과 같이 써왔다.  

   

“그의 인생에 꽃을 피울 시기였다. 부산을 터전으로 활동하던 그는 한 공연장에서 음악기획사 일을 하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서울로 올라와 인디 음악의 중심지라는 홍대 앞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얼마 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도 태어났다. 음악만으로 세 식구의 생계를 꾸려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그는, 인터넷 설치 기사 일을 시작했다. 그날도 고장 수리를 연락을 받고 회사 오토바이로 출근하던 차였다. 휴일 아침에도 부랴부랴 나서는 길은 고되어도, 신발을 신을 때 돌아본 아내와 아이의 따듯한 미소는 그를 여태껏 없었던 행복으로 밀어 넣을 만큼 충분했다. 가해자의 음주 차량은 시속 109킬로미터로 달리고 있었다. 방해물 따위 모조리 뚫고 지나가는 할리우드 자동차 액션 영화처럼, 교차로를 조용히 지나는 그의 오토바이 뚫고 지나갔다. 질주가 남겨놓은 길바닥에는 어느 부품인지 가늠할 수 없는 파편들과 완성되지 못한 채 부서진 꿈의 조각들이 한 싱어송라이터의 신체 주변에 나부라져 있었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그의 신발 한 짝은 끝끝내 찾지 못했다”-그의 글 중에서.   

  

그는 이 글에서 음주운전에 사람이 죽고 한 가정이 파괴되어도 피해자와 합의하면 실제로는 1년 내외의 형을 선고받는 현실( 2017년 6월 말 기준, 71.8%가 음주운전으로 인사사고를 낸 후 집행유예를 받음)을 비판했다. 아빠를 잃어버린 2살 아기보다, 남겨진 아내보다,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피눈물 나는 부모보다 법은 술 취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더 배려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 후 페북에 그의 음반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이 올라왔고 나는 미약하나마 참여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그의 cd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두근두근. 드디어 그의 노래를 들어보는구나. 앨범에는 신영이 만든 노래를 5명의 뮤지션들이 각자 편곡해서 부른 5곡이 들어 있었다. 그곳에는 나와 같이 글쓰기를 했던 학인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참, 그도 싱어송 라이터라고 했었지.    

  

신영의 곡은 수채화 같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언덕에 한가롭게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느낌이랄까. 그의 노래 중 ‘산과 들’이라는 곡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잠시 쉬어 두발을 눕히고 다시 올지 모를 이곳을 노래해.

바람 불면 춤을 추고 내 걸음도 가벼워지니 지금 이 모든 게 꿈이 아니길”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만들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의 인생이 오버랩되어 자꾸 울컥울컥 해진다. 꼬물거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아내와 그가 얼마나 가슴 따뜻한 시간을 보냈을지... 이 시간들이 꿈이 아니길 바랐던 그가 꿈처럼 그렇게 가버렸다.     


추모 음악회는 문래동에 위치한 재미 공작소에서 열렸다. 난생처음 가본 문래동은 분위기가 묘하다. 오래된 철공소들이 따닥따닥 붙어있고 골목골목 힙한 곳들이 숨어있어서 동네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린 시절 소풍 가서 숨은 보물찾기 하는 마음이 든다. ‘아니 여기에 이런 곳이 있어?’ 이런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곳. 가난한 예술가들이 싼 임대료 덕분에 몰려들어 폐허 직전의 동네를 심폐 소생하고 있다. 화실, 공방, 플라스틱 의자를 따닥따닥 붙여놓은 작은 공연장, 그리고 이런 곳에 세트 메뉴처럼 따라오는 예쁜 카페들. 덕분에 녹슨 철공소들이 묵은 때를 벗고 다시 빛날 준비를 하는 곳.     


신영이 세상을 떠나고 1년 만에 그의 첫 앨범이 나왔고, 마지막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나는 친구와 젤 먼저 도착해서 맨 앞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너무 슬픈 무대이면 어쩌나 걱정하며 손수건을 준비했다. 웬걸, 한 명씩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영과의 인연과 일화를 얘기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이처럼 따뜻한 추모공연이라니. 다들 마음속의 슬픔이나 짐을 내려놓고 그에게 이제 걱정 없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노랫소리, 기타 소리, 또 첼로 소리가 먼저 떠난 그를 위로하며 그가 그곳에서 외롭지 않기를 소원했다.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가수는 나와 같이 글쓰기 수업에 참가했던 싱어송라이터 이 호석이다. 날이 풀렸지만 감기에 걸릴까 봐 내복을 입고 왔다는 등장 멘트에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3일 전에 컵라면 하나 먹고 굶은 사람처럼 유난히 마르고 창백해 보였다. 뜨끈한 곰탕이라도 한 그릇 사주고 싶은 비주얼. 친구들이 많이 왔는지 환호도 남다르다. 특유의 어눌하지만 유머가 있는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의 무대를 끝으로 그렇게 공연은 끝이 났다. 나도 맘속으로 신영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의 cd를 들었다. 이제 여러 번 들어서 제법 따라 부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음주운전으로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그런 사람도 있지만 오늘 모인 사람들처럼 아무런 사심 없이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공연이었다. 조수석에 앉아서 그의 노래를 듣던 내 친구는 “젊은 엄마가 아기랑 둘이 살라면 얼마나 힘이 들까” 공연장에서 산 그의 cd를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흘린다. 감정을 누르고 있던 나도 눈앞이 뿌연 해진다. 20살 언저리의 아이들을 키우고 살아보니 그 길이 때때로 얼마나 첩첩산중인지 친구도 나도 아는 까닭이다. 친구의 눈물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본다.  

     

이제 봄이 오나보다. 바람이 더는 차갑지 않다. 저 세상 먼저 간 그에게도, 남겨진 그녀와 아이에게도 따뜻한 봄이 다시 찾아오길. 그리고 이호석 씨가 내복을 벗어도 감기에 걸리지 않기를 햇살에 기대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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