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고 즐거운 건 나누고 싶은 마음.
지금 과천 현대미술관에서는 세 가지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MMCA 해외 명작: 수련과 샹들리에, 한국 근현대 미술전, 신상호의 무한변주가 그것이다. 과천은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깝기도 하고, 과천 대공원 내에 있어 산책하기도 좋아 내가 가장 자주 가는 미술관이다. 무엇보다도 관람객이 적어 분주하지 않고 입장료가 삼천 원이라 부담도 없다. (현재 기준)
이 전시가 시작되고 난 이곳을 세 번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전시장이 넓어 어떤 방에는 나 혼자 있는 일도 있었는데, 그럴 땐 조용한 행복이 단전 아래에서부터 코끝까지 올라옴을 느낀다. 맛있는 간장게장을 먹고 페퍼민트 차를 마셨을 때 개운한 행복감 같은, 박카스를 샀는데 병뚜껑에 ‘한 병 더’가 당첨된 것 같은 소소한 행복감.
한국 근현대 미술전에서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오지호 화백의 남향집도 있었고,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유영국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들이 대거 전시되고 있었다. 또 해외 명작 전시엔 모네의 수련, 살바도르 달리, 샤갈, 르누아르, 피카소(접시) 등 많은 유명 작가의 걸작이 걸려있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진 그림은 페르난도 보테로의 ‘춤추는 사람들’인데 보테로의 작품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그가 콜롬비아의 국민화가라든지, 색채를 중요시했다든지, 뚱뚱하게 그린 게 아니라 단지 양감을 표현했다든지, 그의 그림 속 풍만함이 라틴 아메리카의 풍요와 낭만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건 몰라도 상관없다. 유머 있고 안정적인 구도에 깔맞춤이 안성맞춤인 그의 그림은 예민하고 날카로운 마음을 둥글게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다. 많은 관람객이 모네의 수련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난 보테로의 그림 앞에서 모난 마음을 세공했다.
가장 충격적인 전시는 ‘신상호의 무한변주’다. 우선 압도적인 전시 규모와 장르의 다채로움에 혼이 쏙 나간다. 조각, 도자기, 회화, 설치, 게다가 기네스북에 올라간 작품도 있는데 다 설명하면 김 빠지니까 여건 되시는 분들 직관하시길.
미술관 기사를 쓰거나, 책을 쓸 때면 스토리텔링을 신경 쓰느라 전시를 온전히 즐기기 힘든데 아무 일 없이 전시장을 방문하면 얼마나 한가롭고 행복한지 모른다. 전시를 보다가 머리 식히고 싶으면 미술관의 시그니처 백남준 작품을 보며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아무 벤치에 앉아 멍도 때리다가 다시 전시장에 들어가 작품을 둘러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미술관에서 나오는 길은 또 얼마나 낭만적인지. 이번에 운전할 때 헨델의 미뉴에트 G단조를 들었는데, 길과 음악이 붕어빵에 팥이요, 인절미에 콩가루 같은 조합이었다. 쓸쓸한 음률이 황량한 겨울 숲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니 마치 내가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듯했다. 사연 가득한 여자 주인공 말이다. 사연이라곤 저녁밥 뭐 할지 걱정하는 게 다였지만.
화요일엔 온라인 북토크가 있었다.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줄줄이 있어서 이제야 간단히 리뷰를 써본다. 우선 함께 자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나만의 비법을 푼다고 했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웠다. 이것도 아쉽고 죄송하다. 하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길 바라며. (구체적인 질문이 있으시다면 메일로 주시면 성심껏 답해드리겠어요) 진행을 맡아주신 ‘꿈꾸는 나비’ 작가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꿈꾸는 나비 작가님, 만나서 반가웠고 다정한 진행 감사했습니다.
정말 봄날의 나비처럼 훨훨 날으시길!
북토크가 끝났으니 다음 달부터는 석 달 동안 독서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난 함께 읽을 세 권의 책을 골랐는데 “나이팅게일, 사탄 탱고, 우아한 연인”으로 모두 소설이다. 책을 고른 기준은 내가 읽으려고 목록에 올려두었던 것들이고, 스포일러 당하기 싫어서 일부러 영화 예고편도 안 보는 편이라 책 내용은 전혀 모른다. 내가 아는 건 나이팅게일은 다코타 패닝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 사탄 탱고는 제목이 매력적이라는 것, 우아한 연인은 모스크바 신사를 쓴 작가의 책이라 믿고 읽을 수 있다는 것뿐이다.
장차 장편 소설을 쓰고 싶은 분,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소설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 모두 환영이다. 혼자 읽었을 때 결코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가 나오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독서 모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작년부터 나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빌러비드, 순례자, 시간의 계곡, 저지대 등을 읽었는데, 난 매달 충격에 빠졌고 알에서 깨어났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작가와 숨바꼭질하는 것과 비슷해서 작가는 중요한 무엇을 꼭꼭 숨기고 이야기를 비튼다. 독자는 결말을 예측하고 꼬아놓은 실타래를 풀면서 내가 예측한 대로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데, 예측한 대로면 나와 작가가 동일시되면서 뿌듯하긴 하지만, 솔직히 재미는 좀 떨어진다. 그 반대면 뒤통수가 얼얼한데, 쾌감은 이쪽이 더 있다.
운이 좋은 나는 대체로 뒤통수 맞는 편이다. (쾌락 상승) 아무리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도 꼭 뒤에 가서 뒤통수를 맞는데, 문제는 만일 내가 혼자 읽었다면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을 거란 얘기다. 이걸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책에 대한 긴 설명이 필요한데, 간단한 예를 들자면, ‘사랑의 이해’를 보자.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아마 많은 분이 아실 이야기. 난 이 책을 예전에도 읽었기에 그때 두 번째 읽었음에도 여전히 이게 왜 ‘사랑의 이해’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독서토론에서 난 이 책을 드라마적 관점으로 풀어서 이야기했는데 원작 소설과 드라마의 차이점, 그리고 왜 그런 차이를 만들어야 했는지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건, 이 이야기가 어떻게 ‘사랑의 이해’인가? 였다. 그런데 반전, 여기서 이해(理解)가 바로 이해(利害)였던 것이다. 이해 관계할 때 그 이해, 언더스텐딩의 이해가 아니라 손해 득실할 때 그 이해 말이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았다. 등장인물들이 은행원이라는 설정, 주인공들의 움직임, 모두 그 이해(利害) 아래 움직이고 있었다. (이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주신 분은 한문학을 전공하신 분이었다)
이번 달엔 ‘견딜 수 없는 사랑’을 읽었는데, 이건 뭐 뒤통수뿐 아니라 앞통수 옆통수 다 날아갔다. 스포 할 수 없으니 설명하진 않겠지만, 이 책을 읽으신 분 중, 뭐가 충격인지 모르시는 분은, 아직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이 사실을 멤버 누군가에게 듣고 정말 대혼란에 빠졌으니까. (궁금하지요?)
이 외에도 정말 악! 하고 소리 지른 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감정이입이 쉬운 나는 어떤 날엔 헛웃음이 나왔고, 어떤 날엔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게 다 함께 읽는 힘에서 나온 거란 걸 우린(참가한 사람들) 잘 알고 있다.
나로선 이미 책 모임이 있고, 이것까지 하면 한 달에 두 번을 해야 하고, 각각 다른 책으로 할 예정이니 시간적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하는 이유는 즐거운 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 과천 미술관도 소개하고 독서 모임도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 프로그램을 만든 ‘문장 사이’를 응원하는 마음도 한 스푼) 덧붙여 미술관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꼭 운동화를 신고 가시라. 전시장이 넓고 작품이 엄청 많아 행여 구두를 신었다간 도가니에 심각한 무리를 줄 수 있다.
강연이 아니고 토론이니 따뜻한 차 마시면서(맥주와 와인도 OK) 맘껏 이야기 나눕시다. 이 겨울에 방구석에서 이불 덮고 귤 까먹으면서 하는 소설 이야기 너무 근사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아래를 클릭! (마감 임박, 39,000원, 홈쇼핑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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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북토크 리뷰 멋지게 써 주신 한나 킴님, 인디고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