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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Jul 17. 2019

직장에서 잘린 40대 비혼 딸에게 엄마가 쓴 쪽지.

혼자살면 어때요? 행복하면 그만이지.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부모님과 사 남매가 모여 살았고, 졸업 후에는 친구랑 자취하다가 곧 결혼했다. 그리고 바로 아들 둘을 낳았으니 내 인생에 혼자인 적이 없었던 셈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 양, 별 저항 없이 20년이 훌쩍 넘게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균열은 오랜 시간 내가 나로 살 수 없음에서 기인했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중년 여성의 자아 찾기 비슷한 거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방황했고 내 발길이 머문 곳은 어느 글쓰기 모임이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건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나 글을 쓰는 걸 멈춘 적도 없었다. 어렸을 때는 연애편지나 팬레터 대신 써주기, 라디오에 사연 보내서 경품 타기 전문이었고, 밤마다 세 살 터울 언니와 이불속에서 소설을 썼다. 언니와 나는 주인공을 불치병에 걸린 비련의 여인으로 설정해 놓고 밤새 목놓아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우린 주인공을 살릴지 죽일지를 몇 달을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마무리 짓지 못하였다. 지금이라면 일단 죽였다가 얼굴에 점 찍고 살리면 되는 것을 그때는 그런 창의력이 없었다.     


결혼하고는 육아 일기, 환절기 때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감정의 소용돌이, 주변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남편에 대한 양가감정(덜 밉다 < 밉다)에 대한 것들이 내 글의 주제가 되었다. 관심사가 그러니 흔들리던 내 발걸음이 머문 곳이 글을 쓰는 거기가 될 수밖에.    

 

그곳에는 나랑 동갑인 학인이 있었다. 방송작가 출신에다 비혼이란다. 나의 로망인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싱글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유독 관심이 갔다. 그의 삶이 마치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친절함을 가장한 나약한 나와 달리 뭔가 강단 있고 기품있어 보였다. 우린 매주 글 한 편씩을 썼는데, 그는 갑자기 맞닥트린 완경에 대한 서글픔과 당황에 관한 글을 필두로 불안한 미래, 가족 이야기, 여행, 그리고 새로운 뭔가를 향한 갈망과 같은 글을 써 왔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내가 세상 물정을 몰랐던 것인지 당당하고 화려하길 바랐던 그의 행로는 고달프고 쓸쓸해 보였다. 방송국에서 갑자기 잘리고 받아주는 곳이 없어 지긋지긋하게 이력서를 썼다는 말, 죽기 살기로 일했는데 통장 잔고는 늘 바닥이라는 글, 잡지사 편집장으로 오랜 시간 일하다가 스트레스와 과로로 한쪽 청력을 잃었다는 그의 삶에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기 힘들었다. 그 위태로운 길 위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는 그의 말투와 몸짓에 내 눈은 커졌다. 그리고 새삼스레 되뇌었다. 비혼이든 기혼이든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크기의 고민을 하는 것을.     


다들 고만고만한 돌멩이를 가슴에 없고 사는구나 싶으니 내 가슴을 짓누르는 돌멩이가 견딜만한 것이 되기도 했다. 결혼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며느리가 되면서 내 인생이 내 맘대로 보다 남 맘대로 더 오랜 시간 살았다는 억울함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나를 보았다.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나 원망은 ‘적어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주지 않았다’라고 덮을 수 있는 수준의 것으로 치환되었다. 그는 혼자여서 고단함을, 나는 둘이라서 고단함을 털어놓았고 그렇게 우리는 한 잔씩의 위로를 주고받았다.     


그즈음 나는 오마이뉴스로부터 연재 제의를 받아 명랑한 중년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그가 쓴 글을 오마이 뉴스에 보낼 것을 종용했다. 방송작가와 편집자로 이십 년 넘게 글을 써온 그의 필력은 이미 입증되었고 비혼 인구가 늘어난 요즘 그의 글이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도 ‘비혼 일기’라는 연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그 글들이 모여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라는 책이 되었다.     

‘어떤 날은 혼자여도 잘 살 수 있을 거 같고 어떤 날은 혼자여서 사는 게 두렵다. 어떤 날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품고 어떤 날은 너무 늦어서 모든 게 부질없다고 여겨진다. 어떤 날은 세상이 호의로 가득 차 보이고 어떤 날은 세상이 무섭도록 불친절하다. 어떤 날은 사람 덕분에 행복하고 어떤 날은 사람 하나 때문에 상처받는다. 

생각해보면 세상도 사람도 나도 그대로인데 변덕스러운 내 마음만 분주히 흑과 백을 오가는 것이다.’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 P227-228)     


어떤 날은 둘이어서 잘 살 수 있을 거 같고, 어떤 날은 둘이어서 사는 게 두려울 때가 내게도 있었다. 분주히 흑과 백을 오가는 마음 때문에, 많은 날을 부대끼고, 외로웠고, 밤에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른 처지에서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한쪽으로 쏠려있는 시각, 감정의 무게중심을 살짝 옮길 수 있는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이 책은 단지 비혼 여성만을 위한 글이 아니다. 비혼 여성의 눈을 매개로 바라본 세상을 통해 나도 알지 못한 사이에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당연시하던 말과 행동들에 대해 의심하게 한다. 또, 가슴이 따뜻하게 만든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리고 상처받은 작가에게 작가의 어머니가 남겼다는 다정한 쪽지에 나도 눈물을 쏟았다.    

 

“네 마음을 아껴줘, 힘내.”

나는 그 말에 울컥했다가 엄마가 크게 쓴 ‘힘내’라는 글자를 보고 웃어버렸다. 얼마나 강조하고 싶었으면 글자 포인트를 키우고 따옴표까지 붙였을까. (P52)     


내가 그를 열렬히 응원하는 이유가 그가 나의 로망의 삶을 살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어느 날, 그가 카페에서 무심히 던진 한마디 때문이다. 사회가 더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지금, 앞으로 살아갈 세대에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 주려면 지금 당장 내가 욕을 먹더라도 편견을 깰 수 있는 글, ‘당연히’라고 여겨졌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에 저항하는 의미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했다. 말잇못. (말을 잇지 못함)이 책에는 연재글 뿐 아니라 연재에 담지 않았던 내밀하고도 유머 넘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날이 더워지고 있다. 이렇게 더운 날, 에어컨 아래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분명 입가에 미소가 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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