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심리전, 카톡 프사는 그냥 사진이 아니다.
인터넷 채팅으로 9개월을 보낸 남녀가 드디어 만났다. 남자는 2600킬로를 날아가 꿈에도 그리던 여자를 만났는데 경찰에 채포 되고 말았다. 이유인즉, 그녀의 얼굴이 프로필 사진과 달라도 너무 달라 격분한 그가 그녀를 폭행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뉴스에 나온 사진을 보니 동일인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때리기까지야. 비행기 값이 아까워서이었을까. 하지만 장장 9개월을 대화하면서 그녀의 내면은 보이지 않았나 보다.
여자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 나이별 특징이 있다. 10대들은 손 브이를 얼굴 부위 어디쯤에 대고 입을 오리주둥이처럼 쭈욱 내밀고 있다. 귀엽다. 20대는 예쁜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무심한 듯 핸드폰을 보고 있다. 알고 보면 설정 샷. 30대는 주로 아기 사진이다. 사랑스럽게 아이를 바라보거나 가족사진(역시 설정). 40대부터는 두 부류로 나뉜다. 여전히 외모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자기 사진, 세월의 역변을 온몸으로 맞은 사람은 이때부터 프사가 꽃으로 간다. 50대 이후는 주로 자연이다. 자신의 변화한 모습을 도저히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음이다. 이 언저리에 있는 나도 요즘 친구들과 단체사진을 찍으면 무섭다. 얼굴 반은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집단을 쓰고 있어 곤충(잠자리) 같다.
남자는 보다 간단하다. 30대까지 두부류다. 여자 친구 있는 사람은 여친 사진, 없는 사람은 예쁜 여자 사진. 얼마 전 50대 남자의 프사에 장쯔이가 있는 걸 봤다. 그의 로망인가 보다. 다행이다. 아이유였다면 노망이었을 테니. 카사노바들은 여친이 있어도 절대 올리지 않는다. 다다익선이 선인 부류다. 이런 사람 조심. 50대 이상 남자는 대부분 프사가 없거나 대자연이다. 그 위에 최근에 감명받은 글귀가 있다. 남녀불문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개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은 애완동물이 그들의 프사를 대신한다.
나는 사진 좀 찍는 여자다. 주변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은 다 내 손끝에서 나온다. 몇 년 전, 사진 수업에 참가한 나는 교수님으로부터 ‘잘 찍는 것보다 어떻게 포토샵을 하느냐’가 사진의 관건이란 말을 들었다. 사진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사진과 같이 장르파괴가 이뤄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대충 가로세로줄만 맞춰서 찍은 다음 포토샵에 예술혼을 불태운다. 성형외과 의사가 수술을 집도하는 마음으로 티 안 나게 정교함이 관건이다.
얼마 전 친구가 모임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을 프사로 쓰고 싶다며 보정을 해달라고 사진을 보내왔다. 50대 여자들이 카페에 앉아 있었다. 관리들을 잘했는지 미모가 상당하다. 문제는 눈가 주름과 피부 늘어짐. 나름대로 열심히 펴고 지우고 락스 물에 담갔다 뺀 것처럼 하얗게 표백해서 보냈다. 원판보다는 훨씬 좋으나 눈가 주름이 아직 남았단다. 참 양심도 없다. 50대를 40대 초반처럼 보이게 하면 됐지 20대로 만들어 달라니. 그들의 딸들처럼 보이게 보정을 해서 다시 보냈더니 좋다고 난리다.
어떤 친구는 키가 150인데 174처럼 만들어 달라고 한다. 무작정 늘리는 것보다 애초에 핸드폰으로 찍을 때 각도가 중요하다. 땅바닥이 최소, 하늘 쪽이 많이, 그리고 피사체의 위치는 발끝이 바닥에서 0.5센티 정도 위에 나오게 각도를 맞춘다. 찍는 사람은 들고 있는 핸드폰 위쪽을 자기 몸 쪽으로 30도 정도 기울여 찍는 게 포인트다. 키가 10센티는 더 크게 나오며 이렇게 찍어야 무작정 다리만 늘리는 것보다 균형미가 있다. 눈도 너무 키우면 예쁘기는커녕 무섭다. 얼굴형도 지나치게 깎아 버리면 얼굴이 찌그러진다. 자신의 고유성을 잃지 않은 선에서 적당히 합시다. 나도 재능기부 차원에서 하긴 하지만 요구가 과할 땐 힘들다.
비혼인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 백만 년 만에 찾아온 사랑이라 모든 게 새롭고 낯설다. 49살의 연애도 19살의 연애와 다를 바가 없다. 만난 지 5개월이 되자 슬슬 갈등이 생긴다. 크게 다툰 것도 아닌데 하루 이틀 연락이 없는 게 발단이 되어 이게 신경전으로 발전한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건 왠지 자존심 상하고 기다리자니 속 터지고. 친구는 이러다 이별이 올 거 같다며 눈물을 보인다. 이별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고 서로 너덜너덜해져야 비로소 가능한 것. 이렇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프고 찡하다면 이별은 아직 멀리 있다.
그 사람도 분명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 중일 거다. 그러니 뭔가 의미심장한 글을 프사로 올려보라고 내 얕은 지식으로 조언했다. 친구는 이거 어떠냐고 사진을 내밀었다. ‘이런 병신을 왜 좋아했지?’(feat, 음료 뿜음) 심정은 너무나 이해가 갔다. 구구절절 사랑과 이별의 통찰이 기가 막힌 뜻밖의 대중가요가 있었으니 ‘사랑만은 않겠어요.’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당신만을 만나지나 말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 그 추억이 또다시 온다 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
우리는 웃느라 눈물을 또 흘렸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울고, 장마라서 하늘도 운다. 프로파일러도 울고 갈 고도의 심리전. 프사는 단순한 프로필 사진이 아니다.
인간관계에도 생로병사가 있나 보다. 오랫동안 자석처럼 붙어 지내던 친구와 사소한 오해들이 쌓여 병이 들더니 연락이 끊어졌다. 벌써 우리 사이에 2년도 넘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배우는 것도 많아서 늘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쁜 친구였다. 비가 내리는 밤, 센티해진 나는 뒹굴 거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우연히 그녀의 프사를 봤다. 아이들 사진을 몇 장 넘기자 우리가 같이 찍었던 사진이 있었다.
뭔가 가슴이 뭉클했다. 생각해보면 이유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기분이 나빴던 기억만 덩그러니 있을 뿐인데, 십 년을 같이 한 친구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슬픔이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그녀에게 톡을 보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서로 맘이 편해지면 얼굴을 보기로 하고 대화는 끝이 났다. 우리가 같이 찍었던 그 사진 한 장이 그녀에 대한 나쁜 감정을 다 지워버릴 만큼 힘이 셌다. 그건 그녀가 아직도 ‘우리’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이 후로도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바뀌었다.
어제 또 다른 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얼굴이 상기된 그녀는 “야휴, 진짜 인관관계도 유통기한이 있나 봐” 15년을 잘 지내온 친구가 요즘 사사건건 딴죽을 건다며 화가 잔뜩 났다. 막 화를 내고 서운한 감정을 쏟아내더니 갑자기 “내가 그런다고 걔랑 연락을 끊고 그럴 맘은 1도 없어.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이러지만 그동안 함께한 좋은 시간들이 있는데, 그리고 장점이 많은 아이야. 술 한 잔 하자고 전화해서 풀긴 풀 건데 속이 상해서 말한 거뿐이야.”
뒤통수가 띵했다. 아, 나는 친구라고 참기만 하느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맘의 병이 깊어지고 결국에는 관계가 끊어졌구나. 친구를 뒤에서 욕한다는 건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누어서 침 뱉기라 생각했다. 그래서 서운한 일이 있어도 쌓아두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건 좀처럼 잊히는 게 아니라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점점 쌓여만 갔다. 털어버리는 법을 몰랐다. 이렇게 털어버리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져서 다시 관계가 회복될 시간과 감정의 여유가 생길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매번 이별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며칠 전 내가 찍어준 사진 잘 나왔는데 왜 프사를 바꾸지 않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요새 걔랑 서로 맘이 불편한 관계인데 나만 놀러 다니면서 예쁜 사진 올려놓으면 걔가 속상할 수도 있잖아. 나중에 걔랑 풀고 올릴 거야.” 이 세심함. 나는 진짜 좋은 친구를 가졌구나. 나더러 혹시 우리 관계도 언젠가 수명을 다해 서로 이런 때가 오더라도 서로를 향한 기본적인 마음만은 잊지 말자고 한다. 이런 다짐은 주로 연인들이나 하는 건데. 중년의 아줌마 둘이 이런 다짐이라니.
친구가 돌아간 후 요가 매트를 베란다에 깔고 앉아 창밖을 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한참 멍 때리다가 휴대전화를 들어 그동안 소원해진 친구들의 프사를 들여다보았다. 영원할 것 같던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이제는 연락조차 뜸한 남이 되어버린 인연들. 유한한 인생에 무한한 관계를 기대한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걸 시시각각 인지한다면 아웅다웅하는 마음이 좀 잦아질까. 스쳐간 인연들을 클릭하다가 한 곳에 눈이 머문다. 한때는 소울 메이트라고 생각했던 친구인데 어쩌다 끊어진 친구. 배경 사진에 내가 그린 그림을 찍은 사진이 있다. 이걸 여태 걸어두다니. 게을러서 안 바꾸는 친구는 아닌데.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건 내가 아직 잊힌 존재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문득 어제 본 영화‘제목’이 떠오른다.(영화 내용과는 무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