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팔뚝 살이 안 빠져요" 질문에 요가 원장님의 '명답변'
요가를 시작한 건 2년 전이다. 정확히는 1년을 했고 10개월은 쉬었으며 다시 시작한 건 두 달 전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요가 하는 사람의 사진에는 미소가 그윽하고 두 다리를 쫙 찢고도 편안한 얼굴에 인류애가 가득 담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니 요가를 안 해본 사람은 이 운동이 편안하고 우아하다고 짐짓 오해할 수도 있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월과 금은 스트레칭 위주라 상대적으로 덜 힘들지만 화, 수, 목은 태릉선수촌 저리 가라다. 너무 힘들 때면 돈 내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공포영화를 볼 때와 같은 심정)
글쎄... 내 경험에만 비추어보면 요가는 (중략) 도무지 쉴 새가 없고, 역동적일 뿐만 아니라 (더 정확히는) 인정사정이 없다.(중략) 그러니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은 점은 빡세다는 거다. 아주 아주 빡세다. 따라서 요가를 마치고 나면 하루는 효도르에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고, 하루는 효도르에게 안마받은 기분이 든다.(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p41-42)
양손을 머리 위로 쭉 뻗어 합장, 이어 허리를 숙여서 배가 허벅지에 닿게 숙인다. 다시 양발을 뒤로 쭉 뻗어 ‘푸시업’을 하고, 이어 견 자세로 10회 카운트. 계속해서 양발을 앞으로 점프해서 몸을 숙이고 배를 다시 허벅지에 붙인 후, 다시 허벅지와 엉덩이에 힘을 빡 쓰면서 일어나 두 손 머리 위로 쭉 뻗어 합장. 이게 ‘아쉬탕가’ 요가라 불리는 가장 쉬운 1단계다.
이 과정을 쉴 틈 없이 반복한다. 동작을 따라가다 보면 무념무상이 되고 온갖 시름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강도가 높은 2단계가 반복되면서 운동은 점점 고문 수준이 되어간다. 팔을 등 뒤로 합장하고 몸을 앞으로 숙여 배를 오른쪽 허벅지에 한번 붙였다 일어난 후 왼쪽 허벅지에 또다시 붙이고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돈다. 지방이 타기도 전에 슬슬 영혼부터 타기 시작한다. 연이어 김연아나 가능할 것 같은 3단계 고난도 동작들이 이어지면 이때는 ‘꼭’ 정신 줄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욕이 튀어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늘 쫓아가기 바쁘고 오른쪽 다린 지 왼쪽 다린 지 대단히 헷갈리고, 무엇보다도 아프다. 온몸이 다. 숨 쉬는 것도 어렵다. 그러니 손을 뻗고 고개를 들고 간신히 균형을 잡는 사이, 적금 만기일이나 보험 납부액 따위를 떠올릴 여유는 없다. 최소한의 것만 받아들이고 사고한다. 겨우 매트만큼의 세게다.(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p19)
이쯤 되면 찜질방에서 미역국을 먹어도 땀이 나지 않는 나도 두피에서 장마철 댐 방류하듯 흘러넘치는 땀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이럴 때 쓰려고 헤어밴드를 사 두었건만 맨날 잊고 집에 두고 나온다. 어떤 날은 절대 안 잊어버리려고 손목에 감고 있다가 요가 갈 시간에 요가 복 갈아입느라 잠깐 빼놓고선 또 잊어버리고 그냥 간다. 내 아들 수학 점수가 60점인 건 그 아이 잘못이 아니다. 아들, 미안. 근데 살다 보면 잊어버리는 게 축복일 때도 있다는 게 또 애써 장점.
수업 시작 30분 전에 도착, 요가원에서 준비한 요기티를 마시며 요기니(같이 요가하는 동료를 일컫는 말)들과 잠시 말을 섞는다. 한 요기니가 묻는다. “원장님, 팔뚝 살이 안 빠져요. 어떻게 해야 해요?” 원장님은 동작 몇 가지를 보여주며 집에서도 꾸준히 반복하라고 말한다. 또 다른 요기니, “허벅지는요?” 원장님은 또 다른 자세를 보여준다. 그 옆 요기니, “저는 옆구리요.” 원장님 왈 “회원님들, 그냥 꾸준히 나오세요. 정육점도 아니고 부위별로 그 부위만 딱 빼기는 여려 워요,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셔야죠.” 나는 마시던 요기티를 뿜을 뻔했다.
나는 161/46킬로그램이다. 얼핏 걸 그룹 몸매를 떠 올리면 큰 오산이다. 내 몸은 근육이 없고 뼈와 지방으로만 이뤄져서 그냥 마른 아줌마 몸이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근육이 잘 붙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근육이 잘 붙을 런지 다음 순서로 물어보려다 그냥 웃고 말았다. 안 그래도 친구가 별로 없어 외로운데 괜히 말 꺼냈다가 왕따가 되는 수가 있다. 근육은 없는데 쫌만 운동을 심하게 하면 근육통은 엄청 온다. 이거 혹시 ‘지방 통’인가. 요가를 다시 시작하면서 진통제는 내게‘ 만나면 좋은 친구’다. 자주 만난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그토록 몸매 가꾸기에 열을 올리는 걸까. 연예뉴스를 볼 때마다 ‘명품몸매’, ‘특급 몸매’, ‘끝판왕 몸매’ 같은 수식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여성의 몸이 볼거리로 간단히 소비되는데 수치심을 느꼈다.(그렇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그러나 동시에 내 다리가 설현만큼 길지 않아서 허리가 충분히 잘록하지 않아서 가슴에 골이란 게 보이지 않아서 절망했다. 좋은 몸과 나쁜 몸을 나누는 고정관념이 의식에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었다.(그렇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그러니 요가를 시작했다고 해서 단박에 달라질 리 없다. 난 여전히 내 몸매가 아쉽고(조금만 더 컸으면, 작았으면, 길었으면) 주변의 시선과 평가가 두렵다. 그러나 요가를 하다 보면 결국 이것이 내 몸, 나 자신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평소엔 절대 쓰지 않을 근육들을 늘리고 비틀고 잡아당기면서 내 몸의 실체가 짙은 선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p33-34)
동작이 바뀔 때마다 요가 선생님은 이 동작은 어디에 무게중심을 둬야 하는지, 숨을 들이마실 때는 어디에 힘을 주고, 숨을 내뱉을 때는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어디에 특히 효과가 있는지 등을 일일이 설명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자세를 유지하느라 다리가 후들거리고 이를 너무 악 물어 턱관절이 뻐근해질 때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잡념과 동시에 자세가 흐트러지고 무게중심을 잃어 비틀한다. 도대체 이 어려운 동작들을 왜 만들었을까.
흥미로운 질문에 대답은 이렇다. “그저 앉아서 명상하는 것으론 마음의 폭주를 멈추기 어렵기 때문이죠.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 대신 몸의 실감을 통해 더 쉽게 자신과 마주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아사나(동작)들이 생겨난 거예요.” 그러니까 몸은 마음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에둘러 가지 않고 헤매지 않고 자신을 곧장 만나기 위해 호흡하고 몸을 움직인다. 이것이 거창할 것 없는 요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나를 만나러 가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다.(p203)
어려운 동작들이 마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니. 하긴 중심을 잡느라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 순전히 내 몸에 집중하게 된다. 통증의 지점을 느끼고, 바라보고, 호흡하고 펼쳐낸다.
날이 더워도 너무 덥다. 그래서 늘 ‘오늘은 갈까 말까’ 망설이는 날이 많다. 금요일 밤, 5일을 꼬박 수련하고 샤워를 마친 후 침대에 눕는 순간, “아이고 죽겠다.”소리와 함께 묘한 성취감이 밀려온다. 일종의 극기 훈련을 성공리에 마친 것처럼. 노고단에서 천왕봉 종주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까지는 아니지만 사소한 것에 너그러워지는 마음을 본다.
지방 통(?)이 몰려와 진통제를 꿀떡 삼킬지라도 아픈 몸이 싫지 않다. 50여 년 움츠려있던 내 몸이, 내 마음이 늘어나느라, 제자리를 찾느라, 펴지느라 애쓰는 몸부림일 테니 말이다. 머릿속을 가득히 채웠던 상념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며 흘린 땀만큼 내 맘의 찌꺼기들도 빠져나갔기를 바라본다. 잠들기 전, 눈을 내리고 코끝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천천히 숨 고르기를 한다. 인 헤일(숨을 들이마시고), 엑스 헤일( 내 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