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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Jul 31. 2016

바람이 머무는 경주에서

내 기억이, 추억이, 인연이 머물다

느티나무 아래


경주 봉황대.

 

무덤 위에 느티나무가 자란 곳에, 2016년 7월의 추억 하나를 심다.

이 작은 씨앗이 커다란 인연의 나무가 되길 기원하면서.




즉흥적인 마음에서 시작된 여름 경주 여행이 이 정도로 가슴 벅찬 행복감으로 남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높은 기온과 습도만큼이나 내 마음 또한 한껏 ‘feel'을 받았던 그 밤, 그 시간들이, 여간해서는 쉽게 잊힐 것 같진 않다.     


음악, 노래, 행복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 속 경주.

내리쬐는 햇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릉원부터 첨성대, 경주박물관, 그리고 마지막 코스인 안압지까지 걸어서 한 바퀴.

뜨거운 태양 아래, 따박따박 걷다

땀이 흘러내리고 습한 공기 탓에 숨이 턱턱 막혔지만, 함께 걸어가는 지인들과의 즐거운 수다와 함박웃음은 그런 더위를 충분히 날리고도 남을 만큼, 적재적소에서 시원한 냉수가 되어주었다.


경주박물관에서 나와 저녁식사를 한 후, 아름다운 안압지의 야경을 기대하며 조명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그곳에 도착. 


작은 돌 위에 앉아 우리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즈음, 불 하나가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들리던 작은 함성들.

그리고 어느새 안압지 위로 내린 어둠. 

노오란 조명 덕에 안압지의 자태가 아름답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명이 들어올 때까지 땀 식히며 기다리던,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은 뒤, 습한 저녁공기가 내려앉다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을 피해 조금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이동한 후, 우리들만의 안압지를 기억에 담았다. 


여름밤, 

우쿨렐레 연주, 

추억을 노래하는 우리.


시간이 흘러가던 그곳에, '행복'이라는 녀석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땀으로 범벅된, 조금은 지친 몸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밤.

수박화채, 꿀막걸리로 몸속 수분을 충분히 보충한 뒤 그곳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과 함께 인근 봉황대로 이동, 그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습기 가득 머금은 밤바람을 맞으며 울리는 기타 선율, 그리고 노랫소리.

순간, 지난 시간들이 후루룩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 이외의 많은 것에 내 에너지를 골고루 할당하며 살아온 시간들.

내가 ‘화수분’이 아님을, 나 또한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있음을 인정하길 거부하며 살아온 시간들.

턱 밑까지 숨이 차올라도, 그저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온 시간들.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기타 선율에, 우쿨렐레 선율에, 노랫소리를 따라, 나 자신을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는지.

언제 이렇게 마음 편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분초를 아껴가며 즐겼는지.

언제 이렇게 모든 걱정과 고민거리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노래부를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만, 그 순간, 그 공간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노래 속에 온전히 젖어있던 그 밤, 나는 아주 오랜만에 가면을 벗은 ‘민낯의 나’와 조우할 수 있어 반가웠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가 나를 위한 시간을 내고, 스스로를 돌보며 자신을 그냥 놓아주었던 시간이어서 무한한 해방감이 들었다.     


그 자리,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 진정 행복했다.     


그 행복의 시작이, 이 곳 브런치에서 맺어진 인연들과 함께였기에, 이 여름 경주의 기억은 내게 ‘기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에 감사함을 듬뿍듬뿍 담아, 여행길을 함께 해 주신 사랑하는 나의 지인들께 ‘무한 송신.’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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