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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Dec 20. 2016

공주, 공산성에서 #2

백제의 향기를 따라

부여에서 공주로     

공주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건 저녁 6시경.

방에 들어오니 긴장이 사르르 풀리는 느낌. 따뜻한 온기에 몸이 녹는 이 느낌이 참 좋다.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 후 산책 겸 근처 ‘중동성당’을 둘러보았다.

늦은 시간이라 성당문은 닫혀 있었지만 주변 골목길을 어슬렁어슬렁, 천천히 돌아다녔다.

공주 중동성당

낯선 공기 속 이 느긋함, 이 고즈넉함, 이 평온함.

이 느낌도, 참 좋다.

    

따끈한 방에서 하룻밤 묵은 후, 이튿날 아침 토스트 한 조각 입에 물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송산리 고분군 & 무령왕릉


첫 방문지는 송산리 고분군과 무령왕릉.

송산리 고분군은 웅진시기 백제왕릉군으로, 7기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다. 1~5호분은 굴 모양의 돌로 쌓은 무덤(석실분)이고, 무령왕릉과 6호분은 터널형 벽돌로 쌓은 무덤(전축분)이다.


특히 1971년에 발견된 무령왕(25대) 부부의 무덤인 무령왕릉에서는 무려 4,6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고, 이 중에서 12종 17점이 국보로 지정되는 등 백제사 연구의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 고분들은 보존상의 이유로 영구 폐쇄되었기에, 모형전시관에서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형전시관으로 들어가는 길. 실제 고분으로 들어가는 느낌!

역사교과서에서 봤던 익숙한 그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무령왕릉 & 6호분 모형왕릉실

무령왕릉의 발견은 고대왕국 백제의 존재를 입증하고, 인근 '공산성'이 백제의 왕성이자 웅진시기 왕궁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기에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한다.

사신도 중 서쪽 '백호'

모형전시관에서 나와 고분군 쪽으로 걸어가면 솔숲에 둘러싸여 봉긋 솟은 무령왕릉을 만날 수 있다.

송산리 고분군(볼록 솟아 머리처럼 보이는 무덤이 무령왕릉)

이른 아침, 고분군 주변은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고즈넉함은 물론, 솔숲의 향기가 내 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나를 향긋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랄까.


이 곳에 산다면, 한 손에 따뜻한 모닝커피를 들고 천천히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머릿속으로 글감도 떠올리면서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공주 한옥마을

송산리 고분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주 한옥마을.

애초에 숙박시설로 지어졌기에, 가족단위로 이 곳을 많이 찾는 듯했다.

조용하고 깔끔한 분위기라서 쉬어가기 좋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갖추고 있어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면 다시 와도 좋을 것 같았다.

고즈넉한 한옥마을, 길을 따라


"어허, 자네 왔는가~"
머무르고픈, 한옥


석장리 박물관


송산리 고분군, 석장리 박물관, 공산성을 통합관람표로 끊었기에 두 번째로 들른 석장리 박물관.

금강 인근에서 발굴된 구석기 유적지를 그대로 보존하고 발굴 당시 자료를 모아 두어, 먼 옛날 우리 조상의 모습과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곳.

금강에 인접한 석장리 박물관(야외)
구석기 시대 주거지 재현

코 끝 싸한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박물관 쪽으로 걸어가다 우연히 만난 분.

그 자리에서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배꼽 빠질 뻔했다.

이 아저씨, 아니 오빠는 금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


     공산성     

시린 강바람을 맞으며 석장리 박물관에서 유쾌한 시간을 보낸 후, 공산성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중국과 일본 등 외국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해상왕국으로 명성을 날린 백제.

하지만 고구려의 대대적인 침략(AD475)으로 위례성(한성)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천도하게 되면서 공산성이 백제의 도성이 된다.              

공산성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에 보이는 금서루

공산성 금서루에 올라 우측 성벽을 따라 걸어갔다.      

하나씩 보이는 진남루, 동문루, 연지와 만하루, 영동루, 공북루 등 문루 건축물과 임류각, 광복루, 쌍수정 등 정자 건축물을 만났다.


30분 단거리 코스로 보고 가야지 했던 게 2시간 남짓 공산성을 동서남북으로 거의 다 돌아보는, '나답지 않은 기특한 짓'을 한 오후.

만하루 & 연지(역피라미드 모양의 인공연못)
연지, 물이 얼었다

부족한 폐활량 탓에 한 걸음씩 천천히, 쉬고 또 쉬면서 올라가던 산성길.

한발 한발, 오르고 또 오르다

문득 걸음을 멈추니, 탁 트인 시야에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푸른 하늘이 그대로 금강에 투영되는 모습이 장관.

12월의 햇살, 시리지만 상쾌한 공기, 푸른 하늘과 금강이 조화롭게 펼쳐진 곳에 한참을 머무르다.

하늘이 강에 살.포.시. 내려온 듯

능선을 따라 조금 더 가다 보면, 동성왕 때(AD500) 왕궁 동쪽에 지은 누각인 임류각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은 왕과 신하들의 연희 장소로 쓰였다.

임류각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석성이 끝나는 무렵, 남아있는 백제 토성길을 만나게 된다.

백제 토성길

공산성이라는 이름 또한 백제시대에 웅진성, 고려시대 초에는 공산성,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다르게 불렸다.


백제 멸망 직후 이 곳 공산성에서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조선 후기 이괄의 난(1624년)이 발생하였을 때 인조가 이 성으로 피난하였다고 한다. 

백제 토성길 따라 내려오는 길, 공주 시내 전경은 덤
아담한, 공주시

태생적으로 산 타는 걸 싫어하는 내가, 굽 있는 부츠를 신고 공산성을 거의 다 둘러보는 '기적'이 일어난 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디디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내 귀를 즐겁게 해 준 새소리, 낙엽과 풀, 흙냄새, 그리고 아름다운 금강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직도 맑고 청아한 새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내 영혼과 육신의 먼지가 하나씩 씻겨나가는 깔끔한 경험을 안겨준, 고마운 공주.


   Epilogue     


이번 공주·부여여행의 마무리는 아담한 한옥 카페, ‘루치아의 뜰’에서.  

제민천 골목길을 살짝 헤매다 구글 지도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찾아가, 뿌듯한 마음 한가득 안고 들어선 곳. 

‘루치아의 뜰’ 구석구석. 아기자기함이 빼곡빼곡~

원래는 어느 부부가 함께 정성으로 지어 올린 한옥이었는데, 두 분이 일찍 세상을 여의고 거의 폐가로 있던 곳을 세례명이 ‘루치아’인 주인장께서 인수하여 카페로 개조하였다 한다.     

차 향기나는 공간

자그마하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민 이 곳에서, 따뜻한 차 향기를 따라 문득 꾸게 된 작은 ‘꿈’ 하나.

    

여행을 하다 시골 어딘가, 이유 없이 발길이 머물고 정이 가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 터를 잡고 작은 집 하나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     


높은 천정 끝엔 하늘과 별을 볼 수 있는 작은 창을 내고, 다락방은 서재로 꾸며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꿈.      


앞뒤 조그마한 텃밭엔 상추, 고추, 오이, 깻잎 등 일용할 채소를 심고, 돌담 안쪽으론 사과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앵두나무 등 유실수를 심어 두고 일 년 내내 가꾸고 수확하며 소박하게 사는 삶.   

  

사랑하는 지인들이 찾아오면 머물 수 있는 공간도 자그마하게 갖춰 놓고, 혹시 나랑 비슷한 이들이 지나가다 문득 머물고자 찾아오면 방 하나 내어줄 수 있는 그런 따스하고 아담한 공간.

 

그 공간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것으로도 삶의 일부분이 조금이라도 충만해질 수 있는 그런 곳.

따뜻한 느낌의 시간과 공간

그저 꿈으로 그칠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흩어져있던 인생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 가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삶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조금씩 조금씩,

한 단계 또 한 단계,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뒷걸음치지 않고.


공주 제민천 반죽교_노란하트는 '숨쉬는 숲'(프랑스 작가 Patrick Demazeau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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