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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Dec 19. 2016

부여, 백마강에서 #1

백제의 흔적을 찾아

Prologue     

자박 자박 자박..

작은 돌이 깔린 흙길을 걷는다.    

 

어느덧 겨울.

어느덧 또 1년.     


내 인생에서 ‘잃어버린 10년’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 속, ‘어떤 이끌림’으로 다다른 곳, 부여와 공주.    

 

올해 마지막 여행은 이 곳에서 마무리.


너덜너덜, 해진 내 마음을 주워 담아 오물오물 깁고,

덕지덕지 붙어있는 쓸데없는 기억들과 나쁜 기운들을 떨쳐내고,

지난 시간, 나의 잘못된 선택도 지우고 버리면서 최대한 가볍게 가볍게.     


여행을 통해 사라진 왕국의 흔적을 따라 상상 속 그들의 삶을 그려보듯, 잊고 살았던 ‘나’라는 사람도 다시 찾고 싶었다. 무엇을 위해 살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또 어떻게 살아낼지, 커다란 그림 하나 그려보고 싶었다.      


부여 백제문화단지     


한성기(BC18~AD475), 웅진기(AD475~538) 사비기(AD538~660)로 나뉘는 백제의 역사.


가물가물한 기억을 불러내고, 자료와 문헌을 찾아보면서 다시금 공부하는 맛이 쏠쏠했다.


201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유적에는 부여의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나성, 공주의 공산성송산리 고분군, 익산의 왕궁리유적미륵사지가 포함된다.     


1박 2일 동안, 부여에서 공주로 이동하면서 주요 유적지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1) 부여 : 백제문화단지(백제역사문화관, 사비성, 능사, 고분공원, 위례성, 생활문화마을) - 부소산성 고란사, 백화정, 낙화암 - 백마강

(2) 공주 :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 - 공주 한옥마을 - 석장리박물관 - 공산성

서울에서 2시간여를 달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백제문화단지.’     


1994년부터 2010년까지 17년에 걸쳐, 삼국시대 백제왕궁을 재현했다고 한다.             

백제문화단지 조감도

먼저 입구에 위치한 '백제역사문화관'에 들러 백제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리뷰부터 시작했다.    


위례성(한성), 웅진성(공주), 사비성(부여)으로 이어지는 백제 역사의 큰 줄기 아래, 일본, 중국과 활발한 국제 교류를 통해 종교, 건축, 예술 등에서 문화대국을 이루어낸 백제. 그 흥망성쇠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륵사지 9층목탑 재현
사비천도 행렬 모형

백제역사문화관 관람 후, 처음 발길이 닿은 사비궁.

사비궁 & 능사 앞 5층 목탑

사비궁은 하앙(下昻)식 주심포 양식으로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백제의 대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 하앙식 구조 : 하앙(下昻)은 지붕을 받치는 구조물. 즉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고 이를 지렛대로 활용하여 일반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 중국이나 일본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목조건축에 주로 사용


'천정전(天政殿)'에서는 왕의 즉위 의례, 신년 행사, 외국 사신 맞이 등 주요 행사가 거행되었다고 한다.       

임금님이 머물렀던 사비궁 천정전(天政殿). 천정전으로 이어지는 바닥엔 연꽃무늬 돌이 깔려있다.


능산리 사지 유적을 1:1로 재현한 능사(陵寺)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백제 왕실 사찰로, 왕릉의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능사’로 칭하였다고 한다. 능사 앞 5층 목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곳.     

능사 & 5층목탑


이 목탑의 각 층 모서리마다 귀걸이처럼 달려 있는 ‘풍경.’

 

바람결에 울리는 맑고 청아한 소리에 취해 그 자리에서 한참을 머무른 오후.

 

바람 & 풍경

능사 뒷길에는 사비시대 대표적인 고분 형태를 보여주는 '고분공원'이 위치해 있다.


사비시대 귀족계층의 무덤으로, 석실분 3기(은산면 출토), 4기(규암면 출토) 등 7기가 이곳에 이전 복원되었다.

올록볼록 엠보싱 같은 고분

백제시대 계층별(군관, 귀족, 중인, 서민) 주거유형을 재현한 '생활문화마을' 내에 위치한 위례성은 백제 한성시기(BC18~AD475) 도읍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왕이 터전을 잡은 왕궁과 백제 개국공신 ‘마려’의 집도 재현하여 당시 지배층의 주거환경을 살펴볼 수 있다.

위례성 입구
위례성 내 움집과 망루
멀리 보이는 제향루(전망대)


 낙화암     

2시간 정도 백제문화단지를 찬찬히 둘러본 후, 부소산성 인근 구드레 나루터에서 백마강을 따라 낙화암까지 가보기로 결정.      

구드레 나루터로 들어오는 황포돗배(돛을 펴진 않았다)
이 배를 타고 고란사로 이동
넘어가는 햇살에 눈이 부셨던, 백마강 푸른 물빛

배를 타고 고란사까지는 10분 정도 소요. 마지막 배였기 때문에 남아있는 약 30분 동안 고란사, 낙화암과 백화정까지 둘러봐야 해서 가파른 산길을 뛰어올라갔다가 뛰어내려오는 '팔자에 없는 기염'을 토한 늦은 오후.


고란사’는 부소산 절벽 중턱에 지어진 절로, 고란 약수와 고란초라는 꽃으로 유명하다. 절벽 바로 아래 ‘우암 송시열’이 쓴 ‘洛花巖’이라는 붉은 글자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

고란사. 뒤쪽으로 돌아가면 고란 약수터가 있다
백화정(1929년)
백화정 & 낙화암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 그 위를 가로지르는 황포돗배
우암 송시열이 쓴 붉은 글씨, '낙화암(落花岩)'
스쳐 지나가다. 백마강 위에서


 백마강 일몰     

4대 강의 하나로 비단결 강물이 흐른다 하여 ‘금강(錦江)’이라 부르는 이 강이 부여에 이르면, ‘백마강’이라 불린다.     


낙화암에서 구드레 나루터로 돌아오는 길.

잔잔한 백마강 물길을 가로질러, 넋 놓고 바라본 해지는 풍경.

백마강의 노을

온통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백마강을 보니, 도저히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황포돛배 & Sunset

배에서 내린 후, 해가 넘어갈 때까지 한참 동안 백마강변을 서성였다.     

지는 해를 꽃으로 받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
나뭇가지에 해를 걸다
놓.아.주.다.




겨울 햇살 아래,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은 하루.

생각보다 춥지 않아 ‘다행이다,’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수십 번은 외친 듯.

종아리가 퍽퍽해도, 손끝과 코끝이 시려도 괜찮았다.

나는 정말, 괜찮았다.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 부여에서의 마지막 행선지인 정림사지 5층 석탑을 찾아갔다. 내심 야경을 기대하고 갔으나 20분 차이로 이미 문을 닫은 상태라, 멀리서 뒤꿈치를 들고 서서 조명 없는 석탑만 슬쩍 눈에 담았다.

담장 너머 정림사지 5층석탑

아쉬운 마음을 살포시 안고 이번 여행의 두 번째 방문지, 사비천도 이전의 도읍지였던 '웅진백제' 공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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