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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Aug 21. 2016

당진, 시간을 걷는 곳 #2

당신 곁을 따라, 시간과 함께


숲 속, 해돋이


이튿날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자동으로 일어나 방문을 열고 해맞이 준비를 했다.  

   

안개 자욱한 산 속에서의 해돋이.

이번 여행에서는 일몰도, 일출도 구름에 가린 탓에 그 말간 햇님 얼굴 한번 보기가 참 힘들었지만, 덕분에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구름의 모습은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바다를 보러 떠나왔던 내가, 하늘과 구름 모습에 넋 놓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     


여행의 맛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사전 계획과 상관없이, 직접 만나는 자연은 늘 새롭고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오감으로 깨닫게 되는 것.     


동틀녘. 산새소리, 풀벌레소리, 닭울음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다.

  

낮게 깔린 구름, 아침 안개 속 해맞이


    머뭄터의 이른 아침     

깊은 산 속, 산새소리와 풀벌레소리로 귀가 즐겁다.    

  

살아있어서, 바라 볼 수 있어서, 숨 쉬고 느낄 수 있어서, 순간순간이 참으로 감사했던 시간.

잔잔함과 여유, 평온함의 시간.     


툇마루에 아침햇살이 넘실거릴 때,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가 이 곳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한옥민박집, ‘진경원’
뜰 안에 사과나무
툇마루에, 테라스가 함께 있는 방에서


넓디넓은 잔디밭과 사과, 배, 앵두 등 각종 유실수, 들꽃, 그리고 각자 이름표를 걸고 있는 나무들, 특히 신부님과 순교자들의 이름이 적힌 소나무들이 무척 인상 깊었던 곳. 

    

마음씨 좋은 주인어르신의 삶의 철학이 곳곳에 배여 있어, 사람냄새 진하게 났던 나의 1일 머뭄터. 

    

다음엔 꼭! 한옥을 좋아하는 울 엄마를 모시고 와야겠다, 싶었던 곳.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당진 방문기념 소나무


  눈썹같이 고운, 아미 미술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만난 미술관.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아담하고 소박하고, 거기다 예쁘기도 한 미술관.

담쟁이 덩굴도 예술적으로 덮인 듯,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던 곳.     


하양과 초록의 조화


전시된 그림도 좋았지만, 특히 창문을 필터 삼아 들어오는 바람에 살짝 살짝 날리는 모빌의 자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게 꼭 내 모습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흔들려도 한 군데 강하게 뿌리를 박고 있음이 일관되어 보이기도 하는.

 

새들의 잔칫날인 듯
어디로 통하는 문일까
돌아오는 길, 서해대교 위에서


Epilogue

당진여행 내내, 시간이 내 곁에 머무는 듯했던, 독특한 느낌 속에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혼자 있으나 혼자는 아니며, 주변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숨 쉬고 있음을 세밀하게 느낄 수 있는, 익숙하지 않은 4차원의 세계같은, 그런 느낌.     


그 곳에서 난,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조금씩 눈이 트이고 귀가 열리고 무딘 감각이 살아나서, 차츰 마음이 평온을 찾아 가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문득, 이 잔잔한 파장을 만나라고, 위에 계신 그 분께서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하신 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삶의 의지란 걸 툭! 하고 던져주는 게 아니라, 파도처럼 일렁이는 내 안의 파장을 고이 잠재워 스스로 가야할 길을 탐지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표적을 남겨 주신다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살아있어야, 그것도 ‘잘’ 살아있어야, 내게 오는 아름다운 인연들과의 훗날도 기약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순간들.

    

시간의 길을 따라, 

나는 그렇게 걷고, 또 걷고 있었다.

당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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