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언할 수 없는(Indescribable)
사진전 소식
지인에게서 날아든 고급 정보, ‘스미소니언 사진展(LOOK SMITHSONIAN)’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관련 사이트 검색에 들어가는 순간, 몸이 즉각 반응하기 시작했다.
동공의 비정상적 확대, 불규칙한 들숨과 날숨, 큰 폭으로 진동하는 가슴 두근거림, 그에 따른 손끝의 작고 가는 떨림까지.
스미소니언의 첫 번째 해외기획전!
‘스미소니언 매거진 포토 콘테스트’ 역대 수상작들(140여점)이 한 자리에. 유일무이한 기회!
의미 있는 순간들이 전해주는 따뜻한 통찰!
관람일정을 잡고 예약을 한 순간, 그 이름도 참 ‘병신스러웠던’ 한 해를 ‘형언할 수 없는’ 사진전을 관람하며 최대한 우아하게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금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망년회 자리에서도, 지인들과 영화 관람을 하다가도, 오랜 벗과의 폭풍 수다 속에서도 언뜻언뜻 뇌리를 치고 지나가는 ‘사진전’에 대한 기대 때문에 관람 당일, 서둘러 길을 나섰다.
관점, 목적, 이유 & 방법
일반적으로 타인의 사진을 보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떤 관점에서, 어떤 목적으로, 무슨 이유로’ 이 사진을 찍었을까, 였다.
스미소니언 사진전을 관람하면서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한 것은, “어떻게” 였다.
저 위대한 한 순간 한 컷을 위해, 사진을 찍는 이는 최소 몇 시간부터 최대 몇 년, 아니 평생의 시간을 다 던졌겠다 싶을 때 밀려오는 극한의 경외감과 극치의 설렘으로 내 몸은 전율하고 있었다.
한 장의 사진 속에 투영된 많은 것들, 즉 사진 찍는 이의 시간과 그가 머문 공간,
그가 겪은 흔치 않은 경험과 그에 상응하는 감동, 그가 맞닿은 고통과 절망,
그가 느꼈을 아쉬움과 미련, 그가 놓을 수 없었던 집착과 인내,
그를 힘들게 한 인간적 고뇌와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올 때의 ‘가슴 뻐근함.’
전시장 입구에서 출구까지 약 두 시간의 여정은, 뭐랄까.
걸어서 지구 한 바퀴를 여행하며 곳곳에서 아름다움의 절정을 경험한 후,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의 감동으로 온몸이 흠뻑 젖어드는 상태, 그것과 같았다.
어떤 단어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수준을 넘어선, 최고의 순간을 찍은 사진들을 보며 말문이 막히고 기가 찬, 그래서 어안이 벙벙한 그런 느낌.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질투심 혹은 진한 부러움 비슷한 감정이 내 몸 어딘가에서 퐁퐁 솟는 느낌도 함께.
이들은 애초에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으려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던 걸까, 또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몹시도 궁금해졌다.
사진의 처음과 끝이, 그 가운데 엮인 모든 스토리가 정말 궁금했다.
흡사, 사랑에 빠진 느낌이랄까.
어떤 이에게 마음이 가고, 그 사람과의 물리적·감정적인 거리가 조금씩 좁혀져 갈 때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어지는 마음. 나아가, 그가 태어난 날부터 우리가 만나기 전날까지 그의 역사가, 그의 full story가 세세하게 궁금해지는 것처럼.
한 장의 사진에 얽힌, 그 사진만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싶었고, 전부 듣고 싶었다. 상상을 해서라도 그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맞춰보고 싶은 욕심이 들 정도로.
인생 컷
이번 사진전에서 특별히 내 눈을 사로잡은 몇몇 사진은, 우선 사진전 메인 포토로 처음 만난 '금환일식.'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지구 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풍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달 한가운데 사진 찍는 이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아 사진작가가 자신을 달 안에 투영한 듯한 오묘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다른 하나는 고양이의 눈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시각(Another Vision).'
이번 사진전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맑게 솟은 고양이의 동그란 눈망울, 그 시선 너머에 있을 그 무엇, 그리고 녀석의 머릿속 생각을 상상해 보는 시간이 흥미로우면서도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나의 별, 한나.'
"그 누구도 찍을 수 없는 무언가를 '엄마'는 찍을 수 있다(As a mother I could capture things no one else could)"라는 멘트 아래 전시된 작품.
이 세상 대부분의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보물을 떠올리며 미소지을 게 예상되어 흐뭇한 눈길로 바라본 사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 헬렌 켈러
프레임 재설정
진실로 아름다웠고 또 경이로웠기에, 사진을 보는 내내 너무나도 행복했다.
‘넋 놓고 본다’는 건 진정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리라.
사람과 동식물,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사랑을 듬뿍 담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해 준 사진전.
세상을 조감하는 프레임을, 내 안의 렌즈를 조금 더 넓게,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해 준 고마운 사진전.
올해 마지막 소중한 기억 하나를 여기, 이 곳에 추가하며 2016년을 알차게 마무리하다.
바라보고 감탄하면서,
그곳에 잠시 서 있고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I stood there for a while,
contemplating and admiring.
I wanted to remember that moment forever.
- Candy F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