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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May 23. 2016

소주 한 잔

물 흐르듯, 술 넘어가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인생 조금 살아보니, 누구나 말 못 할 고민 하나, 걱정거리 하나쯤은 갖고 있단 걸 알았다.

     

죽을 때까지 가슴에 꼭꼭 묻고 갈지, 아니면 소주 한 잔 걸치며 툭툭 털어버리든지, 그건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때론 나도 모르게,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그동안 묻어두었던 아픔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 밖으로 툭~ 터져 나와 버리는 경우가 있다.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따뜻한 눈빛에서, 다 이해할 수 있다는 편안한 표정에서 내 마음의 빗장이 서서히 풀려, 부끄러워 말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 잊고 싶었던 나쁜 기억을 차분하게, 조곤조곤 얘기하며 스스로 정리하게 되는 그런 경우.      


그럴 때 내 앞에 있는 ‘친구사람어른’이 참 고맙다.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켜켜이 쌓이다 못해 얽혀버린 먼지덩어리들이 하나씩 풀려가는 느낌이니까.

내 숨통이, 조금씩 트여가는 느낌이니까.

         

벚꽃이 질 무렵, 문자 하나를 받았다.

‘소주 한 잔 할래?’라는 제목의 조금 긴 글.

소주 한 잔이 그냥 소주 한 잔이 아니라, 힘들고 외로운 어른들의 일상 속,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필요하기에, ‘소주 한 잔 할래?’라는 말로 대신한다는 그런 내용.      


진정 그랬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어른들은 나이가 들면서 속 얘기를 꺼내는 걸 두려워하게 된다.

“이 나이에, 어른인 내가, 남에게 약한 모습을? 이건 아니지” 그런다.


그런데 그런 계산없이 순수하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또 다가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단 걸 알았다. 관계의 물꼬가 트이는 방법은 다양하니까.   

        

앞으로 더 나이가 들어도, 그래서 체면치레하느라 친구 사귀기가 조금 더 어려워지더라도, 따뜻한 눈빛으로 타인의 아픔을 읽고, 마음으로 공감하고, 가슴으로 이해하는 소통의 베이스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늦은 밤, 조금 열어 둔 창문 사이로 비향기 가득 품은 봄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 뒤엔 후끈한 여름바람이 기다리고 있겠지.      


계절이 바뀌면서 바람의 향기와 온도가 달라지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듯, 나를 스쳐가는 인연 모두가 그렇게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오고 흘러갔으면 좋겠다.

     

잠깐 머물든, 오래 머물다 가든, 미련을 남기지 않는 관계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소복하게, 함께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사진출처@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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