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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Jul 28. 2016

왜 좋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날까

떠나는 자, 남는 자, 버티는 자

4년 전 교육부서에서 일할 때 동고동락했던 당시 팀장님께서 퇴사를 결정하셨다. 올해로 만21년을 근무하셨는데, 나이 50이 되기 전에 명예롭게, 폼나게 떠나고 싶어 내린 결정이라고 하셨다. 당분간 친구분의 농장일을 도우면서 귀농을 준비하실거라면서. 

    

오늘,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소회를 풀어놓으실 동안, 난 그저 앞에 있는 짬뽕만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질 않았다.  

    

내가 팀장님께 한 말이라고는 고작, “아, 진짜.. 팀장님.. 아니 왜, 지금..”

울컥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무슨 말이라도, 뭔가 좋은 어떤 말이라도 해드리고 싶었지만, 딱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예전부터 언뜻언뜻 귀농하겠다고 말씀하시긴 했어도, 그게 ‘지금’일 줄은 몰랐기에, 갑작스런 결정이라고 느껴지는 데서 오는 당황스러움, 이젠 자주 뵐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이 조직에 나만 덩그러니 버려진 듯한 느낌에서 오는 서러움 등 여러 감정이 뒤엉켜 머릿속도, 마음속도 복잡하기만 했다.

     

2010년 12월, 입사하자마자 혼자서 야근을 하고 있던 내게, 옆 팀의 팀장이셨던 그분은 “아니, 왜 첫날부터 야근을 해요?”하시면서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주셨다.      


우리 팀원들 얼굴과 이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그 날, 낯설음으로 잔뜩 긴장한 채 저녁도 거르고 일하던 내게 팀장님이 베푸신 작은 친절은 이 조직에서 내가 적응해 가는 내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2012년엔 드디어 팀장님과 함께 일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지만, 팀미션, 개인미션을 수행하느라 팀장님도 팀원들도 모두 엄청 고생을 했었다. 그 이후 각각 다른 부서에서 일하면서도 정기적으로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직장생활의 회포를 풀곤 했다.  

   

따뜻한 조언도, 스트레이트로 직언도 종종 날리시던 팀장님을 인간적으로 참 좋아했고 마음으로도 존경했다.     

이 조직에서 ‘가뭄에 콩 나듯,’ 내가 믿고 의지하는 분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퇴사 소식은 어제 오후부터 오늘까지, 지금까지도 계속 내 가슴 한가운데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다. 

    

지난 봄, 벚꽃이 날리던 날, 같은 팀원이었던 동료와 팀장님,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막걸리 한 잔, 아니 여러 잔을 걸친 후 인근 여의도 공원에서 밤산책을 했었다.

      

커피 한 잔씩 들고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흙냄새, 풀냄새, 꽃내음 속에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며 걷던 시간들, 그 좋았던 시간들이 이젠 영원히 안녕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코끝이 찡해져 온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왜, 좋은 사람들이 떠날까?

떠나도 될 사람들은 똬리를 틀고 앉아 등 떠밀어 내쳐질 때까지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고자 저리 애쓰는데, 왜 좋은 사람들은 미련없이 털어버리고 떠나는 걸까?     


대개의 경우, 권모술수와 갖은 계략으로 남을 짓밟고 윗자리까지 오르신 분들이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란 말을 자주 애용한다. 2012년 희망퇴직 때도 그러했다.

좋은 분들이 떠났다. 안타깝게도.     


문득,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궁금해졌다. 

지금 난, 팀장님이 떠나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저 그런 남은 자’가 되었다.     

앞으로는, 어느 정도 버틴 후에 떠나는 자가 될 지, 아니면, 특별히 주목받지는 못해도 부서 내에서 꾸준하게 활용성이 있는 ‘소리없이 강한 자’로 살아남을지, 그건 내 선택에 달린 거겠지.     


누구나가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이를 위해 준비를 하고자 하며, 준비가 되었을 때 멋있게, 당당한 모습으로 떠나기를 희망한다.      


팀장님은 이렇게 결정을 내리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하셨다.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하시면서.     


내가 팀장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정말, 치열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지금부터.          

그 밤, 함께 거닐면서 바라본 풍경과 닮았다. 
(사진은 앤디님 친구분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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