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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Jul 09. 2016

피투성이라도 살아!

홀로 유언장 앞에 서다

늦은 밤, 

탁자 위에 유언장을 꺼내 놓고 생각에 잠긴다.

무슨 유언장인가 싶겠지만 올해 3월, 파키스탄 출장을 앞두고 미리 써두었던 것. 


그때 당시, 이슬라마바드에서 개최되는 국제회의를 코앞에 두고 어린이공원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었다.     

목숨을 걸고 해외출장에 나서는 '전사의 컨셉'으로 출국을 준비하던 난, 혹시 모를 나의 예기치 않은 소멸로 인해 남아있는 가족들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몇 자 끼적여둘 생각을 했었다.     


아직도 서명란이 비어 있는 내 유언장.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먼저 가서 미안합니다”로 간단히 정리가 가능한, 심플한 내 유언장.     


결국, 출국 이틀 전에 주최 측의 결정으로 국제회의가 취소되었고, 내 유언장은 한동안 책상 위 한편에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그런데, 안과 밖이 매우 시끄러웠던 요즘의 나에게 요놈이 말을 걸어왔다.     


“잘, 살고 있니?”     


한순간, 지난 시간들이 후루룩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끊임없이 내 존재가치를 증명해가며 살아온 시간들, 누구에게든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애썼던 시간들이.


내 상처의 근원은 “Nothing"이라는 말, 그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내 존재가치를 그저 단 한마디,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로 정리당했을 때.


무방비 상태에서 퍽치기를 당한 듯 정신은 아득해지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손가락 마디 끝 하나하나가 저릿하다 못해 아려왔었다.     


뛰고 있는 내 심장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와 이제 그만 멈춰버렸으면 싶었다가, 내 몸의 뼈와 살이 부서져 가루가 되는 느낌이 드는 순간, 그렇게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빈껍데기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라, 살아라, 그래도 살아내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요놈의 유언장이.

     

그 누구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니까, 내가 바라니까, 나는 나 자신에게 “Everything"이니까, 살아서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걸 하면서 다시 행복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비록 내 상처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내가 나를 everything으로 생각하는 한, 어떻게든 살아내다보면 

“있는 그대로의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로, “너와 같은 시공간에 있어 다행”이란 말로, 치유받는 순간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면, 이승에 그 어떤 여한도 남지 않도록 그렇게 깨끗하게 살다갈 수 있으리라 기대도 하면서.

     

그렇게, 살. 아. 내. 기.로. 했다.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하지 (사진출처@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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